뉴스홈 경제 정치 연예 스포츠

'서청' 정신은 파시즘 아닌 통일 앞둔 21세기 뉴프런티어 정신

2014-10-03 11:26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해방 뒤 두 차례의 김일성 암살 서북청년회가 주도했다

   
▲ 조우석 미디어펜 논설위원
서북청년회(이하 서청)에 대한 엊그제 필자의 글에 생각했던 것 이상의 호응이 있어서 반갑고도 고마웠다. 최근 글 중 가장 직접적 반응이었는데, "몰랐던 사실을 알게 돼 고맙다"는 식이었다.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원장, 탈북자 이애란 박사 등이 대부분 그러했지만, 우파운동가 변희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서청에 대해 아는 게 없어 좌파매체가 난리를 칠 때 초기대응을 못했다"며 더 많은 정보를 달라고 주문했다. 뭔가 미진하다고 느끼던 참에 '서청2'를 쓰는 것은 그 때문이다. 현대사에 대한 지식정보가 온통 오염되고 타락해버린 상황에서 '진실의 유통량'을 늘리는 게 중요하다는 판단도 들었다.
 

서청이 공산 학정을 피해 38선을 넘은 청년들이 만든 단체들의 연합체로 서울 YMCA 강당에서 결성된 게 1946년 11월의 일이다. 명칭은 평안도-황해도를 서북(西北)지역으로 부르던 데에서 따왔는데, 그 전에 따로 활동하던 걸 통합했다. 지금도 서청하면 억센 주먹과, 의협(義俠)의 투쟁정신을 떠올리는 건 누구도 흉내 못낼 용맹성 때문이다.

좌파와의 싸움에서 다져진 "당하면 보복한다"는 서청 정신

때문에 서청은 해방공간에서 우파의 전투적 행동력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바로 떠올랐다. 회원 중에는 나홀로 월남자가 적지 않아 종로3가 호림장 등에서 합숙하면서 기동성을 높였고, 그게 끈끈한 동지애를 키웠다. "당하면 반드시 보복한다"는 독한 신념은 좌파와의 싸움 속에서 강화됐다.
 

그러나 초기 활동은 이북 실정 보고회 등 강연활동 위주였다. 45년 11월 터진 신의주반공학생의거, 이북에 진주한 소련군의 만행 등을 가장 빠르고 생생하게 서울시민들에게 전달했던 채널이 당시의 강연회였다. 이와 동시에 독자적으로 시도했던 임무가 북한 김일성 암살이었다.
 

암살 시도는 서청의 결성 이전에 한 번(1946년 3월1일 평양), 직후인 1947년 또 한 번 있었다. 첫 암살 시도에는 수류탄-권총으로 무장한 김재철, 김형집, 최기성, 이성열 등 네 명의 공작조를 평양역의 3.1절 행사장에 파견해 대중연설에 나설 김일성에 대한 저격을 노렸다.
 

안타깝게도 저격은 실패했다. 그 이유를 서청은 훈련부족 때문이었다고 자체 분석했지만 김일성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계기였던 것만은 분명하다.(이중 생존자 이성열은 반공투쟁 공로로 1990년 정부 훈장을 받았다.) 서청의 신출귀몰함을 알린 계기는 따로 있었는데, 그게 고정훈 귀순 공작이었다. 고정훈은 당시 소련군 사령관 슈티코프의 러시아어 통역관.

   
▲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윈회 간부이 10월2일 <서북청년회가 겪은 건국과 6.25>의 저자인 손진 선생의 댁을 찾아 상견례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손진 선생은 서청 재건을 승락했고, 11월 서청 재건 발대식에 참석할 것을 약속했다. 사진 왼쪽부터 서청재건 준비위원 이창우(전 한양대 교수), 준비위원장 배성관(육사 25기), 손진 선생, 재건준비위원회 대변인 정함철씨.

SBS-TV 드라마 '야인시대'가 서청을 다뤘으나 흥미본위로 그쳐

그런 고정훈을 설득하는 한편으로 일본에서 온 부인(요시다 시게코)을 평양에 밀파하는 등 공을 들였다. 공작 책임자는 문봉제(훗날 서청 2대 위원장)였다. 끝내 귀순한 고정훈이 하지 미군사령관의 수석통역관으로 신분을 바꿔 미소공위 회의장에 나타남으로써 세상을 놀라게 했다. 당시 남북한 심리전의 백미가 그것이었는데, 고정훈은 러시아어-영어에 모두 능통했다.
 

그런 서청이 백색테러 집단으로 알려진 계기는 남로당의 정치투쟁에 맞선 대(對)테러활동 때문이다. 그런 활동의 하나가 부산의 좌익 검사 저격이었고, 제주 4.3사건 진압 투입작전 등 수두룩하다. 안타깝게도 SBS-TV 드라마 '야인시대'가 서청을 일부 다뤘으나 흥미본위에 그치고 말았다. 좋다. 지금 시점에서 정말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서청이 활동하던 당시와, 지금의 대한민국은 너무도 닮은꼴이란 점을 기억해야 한다. 좌우익 이념 갈등, 소수의 좌파들이 설쳐대는 전체주의 광기의 사회 분위기, 상황 장악을 못한 채 허둥대는 중앙권력의 구조(당시의 미군정청과 지금의 박근혜 정부)까지 어쩌면 그렇게 똑 같은지 모른다.
 

"해방 직후 3년 간의 한국사회는 소름 끼칠 정도의 공포분위기였다. 온 나라가 좌익세상이 되는 것 같았다. 좌익들은 적화혁명을 한다고 살인, 방화,파괴를 일삼았다. 경찰서가 점령당하는 일이 허다했다. 그런데도 미군정은 중립정책, 좌우합작을 고수한다고, 좌익 활동을 방관했다."(39쪽)

해방의 혼란은 오늘의 혼란은 닮은꼴……서청 재건은 우연 아니다

<서북청년회가 겪은 건국과 6.25>를 쓴 손진(94) 선생의 증언대로 그런 해방공간의 혼란 속에서 서청의 활약은 우파의 단결에 결정적 요인이었다. 미군정기와 지금이 서로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그건 서청 같은 강력한 우파 행동단체가 있고, 없고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필자가 요즘 서청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이런 배경이었다.
 

지금 우리 상황을 보라. 유사시에 무기 들고 싸우자고 선동하는 통진당 RO의 이석기 무리, 총리 후보자 문창극의 낙마, 세월호의 진통, 이틈을 탄 좌익세력의 장난과 사회적 혼란…. 여기에 맞서는 보다 세련된 형태의 서청이 있다면 세상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던 차에 광화문의 노란 리본을 정리하겠다며 나선 우파 단체가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원회’를 표방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고, 또 반가웠다. "서청은 파시즘”이라고 악 쓰는 좌파의 협박에도 "죽기를 각오했다"는 서청 재건팀의 의연함이 그들을 다시 봤다. 서청의 등장은 결코 우연이 아닌데, 이왕 재건하는 기회에 그들이 통일 이후까지 힘을 발휘하길 나는 기대한다.
 

서청 정신은 전투적 자유민주주의를 상징하며, 그래서 한반도 뉴프런티어 정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건 기회주의적 웰빙에 빠진 우리가 잃어버렸던 큰 가치다. 역사 속의 서청에는 빛과 그늘이 함께 있겠지만, 그런 것도 잘 따져가면서 보다 지혜롭게 움직이고, 성장하길 기대한다.
 

그건 나만의 자의적 판단이 아니다. 손진 선생은 "합숙소에서 눈물을 머금고 합창할 때마다 용기를 얻었다"는 서청 단가(團歌)를 책에 소개했는데, 처연하면서도 힘과 기백이 살아있다. 노랫말은 "원수한테 밟힌 꽃봉이(북녘 동포)"를 구출하겠다는 늠름한 사나이 맹세를 이렇게 담고 있다.  /조우석 미디어펜 논설위원, 문화평론가

"우리는 서북청년군 조국을 찾는 용사로다
나아가 나아가 38선 넘어 매국노 쳐버리자
진주 같은 우리 서북(西北)이 지옥이 되어
모두 도탄에서 헤매고 있다

동지는 기다린다 어서 가자 서북에
등잔 밑에 우는 형제가 있다
원수한테 밝힌 꽃봉이 있다
동지는 기다린다 어서 가자 서북에"('서청 단가'노랫말)


 

 

 

 

종합 인기기사
© 미디어펜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