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통법 역설의 시대가 도래했다. 단말기 보조금 차별을 규제하기 위한 단통법으로 인하여 소비자들의 휴대폰 구입 비용은 도리어 올라가고야 말았다. 10월 1일은 시장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확인하는 날이 되었다.
이는 전문가들이 계속 우려하던 바이다. 많게는 50만원~70만원 가량의 보조금이 나오던 기간을 이용해 휴대폰을 구매했던 소비자의 입장에서 이제는 단통법으로 인해 도리어 휴대폰을 훨씬 비싸게 사야 하는 불만이 나오게 되었다.
단통법 시행 이후 소비자들의 위약금 부담이 늘어나는 것도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 앞으로는 높은 요금제에서 낮은 요금제로 바꿔도 위약금을 낼 수 있다.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분통 터지는 일이다.
모두를 패배자로 만드는 정부의 어설픈 평등주의
사실 이러한 단말기 보조금 논란은 정부가 애초부터 단말기 통신시장에 어설픈 평등주의를 적용함으로써 발생된 것이다. 어느 제품이든 시기와 장소에 따라 누군가는 싸게 사고, 누군가는 비싸게 사기 마련이다.
이에 대해서 불공평하다고 여기고 바로잡으려 한다면 시장의 기존 메커니즘 이면에 있는 보이지 않는 역효과를 고려하지 못해, 이번과 같은 결과가 도출된다. 결국은 모두가 비싸게 사게 된다.
지금은 사회주의, 국가주의의 시대가 아니지만, 단통법은 누구나 동일한 조건의 스마트폰을 구매해야 한다는 멍청한 생각으로부터 출발한 사회주의식 발상이나 다름 없다. 시장의 자생적인 질서를 무시하고 인위적으로 설계하려는 공무원들의 어리석은 작품인 것이다.
단통법 시행 5개월 전, 미래창조과학부 공무원들을 위시한 정부 관료들의 단통법 시행 조치에 대해서 통렬하게 분석했던 토론회가 있었다. 컨슈머워치가 주최하여 5월 12일 국회 의원회관 제 2간담회실에서 열린 <단말기 보조금 해법 모색> 정책토론회이다. 그 자리에서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정부 단통법의 의의와 한계에 대해서 현재의 모습을 정확히 예측했다.
다음은 이 교수의 발제문 원문이다.
I. 보조금 지급이 시장왜곡과 과소비 조장이라는 논리의 허구성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창부)는 단통법 시행으로 인한 단말기 보조금 규제의 명분으로, 보조금 지급이 시장을 왜곡시키고 과소비를 조장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소수(신규가입자)에게 지급하는 보조금이 소비자 후생을 왜곡한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시장에서 거래되는 거의 모든 상품은 동일한 가격으로 거래되지 않는다. 통신관련 기기나 서비스라도 다를 특별한 이유는 없는 것이다.
자동차는 잦은 할인프로모션 행사를 벌인다. 주택의 경우도 미분양 아파트를 대폭 할인함으로써 미분양 재고를 소비자에게 판매한다. 아파트의 할인 폭은 억대에 이른다. 마트에서 생선 등의 신선 식품에 대하여 매장 문을 닫는 마감시간에 대폭 할인하기도 한다. 백화점, 할인점, 아웃렛 등 다양한 형태의 매장에서 의류는 수차에 걸친 할인과 유통망에 따른 큰 가격차를 보인다.
미창부는 두 번째 이유로, 단말기 교체가 빠른 이용자와 느린 이용자 간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형평성은 정부가 정의할 수 없다. 단말기 교체주기에 대한 형평성을 논하는 것은 계절이 바뀌었다고 매년 옷을 사는 사람과 유행에 무관하게 옷을 입는 사람 사이에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와 동일한 억지 논리이다.
미창부는 세 번째로 통신시장 과소비가 문제 있다는 식의 주장을 펼친다.
하지만 과소비라는 개념에 대한 경제학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창부는 과소비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있는가. 사실 사업자들이 매출 금액이 큰 고객에게 큰 할인을 주는 행위는 지극히 정상적인 영업행위이다.
통신비는 과거의 전화비와 크게 다르다. 스마트폰 이용에 따른 통신비는 식품비, 의류비, 문화비, 교통비, 교육비 등의 절감이나 효율성을 위한 종합 투자로 보아야 한다. 가령 택시를 탈 수도 있지만 걸어다니며 구글맵을 통해 길을 찾고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다. Carhire.com/Airbnb과 같은 앱을 이용해서 해외를 넘나들며 연간 통신비의 몇 배가 넘는 통신요금 절감이 가능하다. 네비게이션, TV, Radio, Mp3 Player, 사진기, Notebook, 가정용전화기 등의 소비를 대체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각 개인들이 이용하는 통신요금제가 그들에게 “불필요한” 고가 요금제인지에 대한 판단은 정부가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월 통신 수요는 언제나 확률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속성을 갖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수신자 요금 부담을 면제하는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기본량이 적은 요금제를 선택한 후, 기본량을 넘기면 기본량이 높은 요금제보다 더 높은 요금을 지불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소비자는 예측 불가능한 가계 운영을 꺼린다는 점에서, 통신비 소비에서 불확실성을 기피하는 경향을 지닌다. 따라서 기본량을 다 소비 못하는 것이 비이성적인 소비라고 판단 내리기 힘들다.
미창부는 네 번째로 빈번한 단말기 교체로 자원 낭비가 심화되며, 동시에 소비자 부담이 증가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그런데 이는 외국과의 단순 비교가 불가능하다. 통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이 한국과 다는 나라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통신서비스의 가치가 한국과 비슷한 나라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의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에서 핸드폰은 무용지물이다. 통신기간망의 품질이 낮아 많은 인터넷 서비스 활용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잦은 단말기 교체의 근본적 이유는 단말기 보조금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USIM 호환성 등 특정 통신사 단말기 구매 없이 업체 이동을 자유롭게 하는 제도가 정착한지 오래이다. 게다가 한국 휴대폰 시장은 기술 및 디자인 트렌드가 전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변해가는 곳이다. 단말기의 잦은 교체는 시장의 혁신과 소비자 트렌드에 부합하는 당연한 모습이다.
물론 스마트폰을 도입한 이후 통신비가 증가하긴 했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스마트폰은 전화기가 아닌 종합 디지털 융합기계로 그 쓰임새가 매우 넓어졌다. 가계비 지출에서 통신비가 증가했다는 것은 지극히 단순한 논리이다.
II. 보조금 지급 규제가 이동통신시장의 건전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의 허구성
미창부는 보조금 지급을 규제하는 것이 이동통신시장의 건전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미창부는 그 근거로 지금까지의 보조금 인하가 소모적으로 이루어져서 가격인하 및 신규 투자여력이 상된다는 논리를 편다.
하지만 기업의 경쟁을 소모적이라는 판단하는 나라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규제논리이다. 게다가 단말기 보조금 할인과 요금할인 중에 어는 것을 선택하는 지는 정부가 아니라 소비자의 몫이다.
내구제의 소비는 총소유비용(Total Cost of Ownership)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단말기를 비싸게 주고 사는 낮은 요금제를 쓰는 것이 단말기 높은 가격에 사고 비싼 요금제를 쓰는 것 보다 좋을 이유가 없다.
면도날, 프린터, 게임기 등 많은 제품이 소비자의 Platform 할인을 통해 고객을 유인하고 파생상품(소모품)에서 돈을 버는데, 이는 소비자가 이러한 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보조금 할인은 현재의 투자금액에 대한 할인이고, 요금할인은 미래에 일어나며 고객이 낮게 가치를 할인해서 평가하는 것은 당연하고 합리적인 일이다.
알뜰폰/중저가 기기 소비를 진작시키고자 한다는 미창부의 논리도 허구이긴 마찬가지이다. 기업이 혁신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경우에 대하여, 정부 보호로 혁신이 일어나는 적은 없다.
중저가 기기 제조업체 혹은 후발업체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택회피는 가격만의 요인이 아니다. 디지털 기기는 아날로그 기기와 같은 내구성이 없어서 After Service 품질이 매우 중요한데, 가격이 아니라 AS까지 고려해서 소비자들은 신제품 구매를 결정하기 마련이다. 이는 일본업체가 디지털 기기에서 지난 수년간 삼성전자에 밀린 주된 이유 중에 하나이다.
품질과 가격으로 시장에서 여러 기업들이 도태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미창부의 논리는, 소비자들이 벤츠를 타고 싶은데 일정 인구는 꼭 자전거를 타야 건전한 생태계라는 억지논리에 불과하다.
III. 규제 실효성에 대한 검토
▲ 소비자단체 컨슈머워치 제작, <단말기 보조금 규제>를 반대하는 배너.
미창부의 단말기 보조금 규제는, 시장참여자들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으로서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이는 일부 혜택을 보는 소수와 손해를 인식하지 못하는 다수가 존재하는 다른 규제 케이스와도 동일한 양상을 띌 것이다.
과외금지, 월세 보조금제 및 징세제도, 대형마트 강제휴무제, 비정규직 보호법안 등 수많은 규제가 참여자의 이익에 반하기 때문에 정책 의도 달성에 실패한 이유와 동일하다.
단말기 할인이 시장 참여자들의 이해에 부합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제조사의 입장에서 스마트폰과 같은 High Tech 제품은 기본적으로 제품주기가 짧고 혁신경쟁이 치열해서 제품의 소비를 빨리 유도하여야 한다. 신제품 출시 전에 구제품을 소진하지 못하면 큰 손해인 것이다. 이는 마트에서 마감 시간에 생선, 고기 등의 신선식품을 대폭 할인해서 판매하는 경우와 동일하다.
통신사의 입장에서는 차별성이 적은 인프라 경쟁 보다는 가격 경쟁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통신사는 기본적으로 차별성이 적은 Commodity Infra 경쟁을 벌인다. 통신사업은 시설투자 비용은 크나 한계비용(Marginal Cost)이 매우 적은 사업으로 망외부성(Network Effect)이 큰 비즈니스이다. 이처럼 인프라 차원의 제품 차별성이 작으면 가격경쟁을 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연이어 언급했듯이 제조사와 통신사의 이해가 맞아서 할인(보조금) 비용을 나누어 부담하는 것이 합리적인 단말기 보조금 제도이며, 이는 두 사업자 간의 협상력에 따라 그 양상이 좌우된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단말기 보조금을 통해 초기투자 비용을 낮추는 것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High Tech 카테고리에 있는 스마트폰은 대부분의 소비자가 신제품을 선호한다. 전체 통신비 절감으로도 단말기 할인이 합리적이다. 어디서나 어떤 조건이나 동일한 할인은 시장에 존재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논리이다.
한편 모바일 인터넷 망에 대한 기업의 투자의지는 경쟁에 따라 펼쳐져야 하는 것이지, 이익금이나 정부의 의지에 따른 것이 아니다.
업계에서 주지하다시피 그간 새로운 망의 투자는 011번호에 대한 학습효과로 이루어졌다. 가격경쟁과 품질경쟁의 선택은 응당 기업의 몫이며, 가격경쟁으로 돈을 못 벌게 되면 기업들이 품질경쟁(신규투자)로 자연스레 전환한다. 가격경쟁의 유도는 가격 규제를 촉진하는 것으로 가능하지 보조금 규제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IV. 맺으며
단통법 시행에 따른 정부의 단말기 보조금 규제는 여러 가지 근거와 논리를 밝히고 있지만, 이는 경제학 책에도 부재하고, 외국에도 해당 사례가 전혀 없는 희귀한 경우이다.
정부가 언론에게 밝히는 보도자료 및 각종 발표 등에서 사용하고 있는 ‘불건전한’, ‘과소비’, ‘시장안정’(가격불변) 등의 단어는 관의 규제마인드가 만들어낸 인기영합적이고 정치적인 언어이다. 정부는 시장의 자유로운 경쟁을 옭아매는 과도한 규제로 불법 아닌 행위를 범죄화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단말기 보조금과 관련하여 ‘통신 대란’이라 불릴 아무런 이유가 없다. 품질경쟁이 불가능할 때 단기적으로 가격경쟁이 펼쳐짐은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지침 및 이를 충실히 따르는 언론의 자극적 보도가 반시장 규제의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
정부의 단통법 시행은 기업, 대리점, 다수 고객이 손해를 입는다는 점에서 사회적 후생의 증가를 가져 오지 않는다. 시장 참여자들의 혁신행위를 유도하는 방책으로서의 실효성도 없다. 단통법은 시장 참여자의 논리에 반하는 규제로, 시장이 규제 회피책을 고안할 것이다.
단통법 시행은 형평성의 문제를 오히려 야기할 것이다. 통신사에 비해 대리점들은 상당한 고통(비용)을 지불할 것이며, 외국계 제조사에 대한 국내 제조사의 역차별도 우려된다.
정부가 애초에 제시한대로 가격인하가 목적이면 가격과 품질경쟁을 유도하는 정책이 정답이다. 정부(통신위원회)는 시장참여자 3개는 경쟁시장이고 2개사면 독과점이라는 이상한 논리를 계속 고수하기 보다는 독과점 반경쟁행위에만 초점을 맞춘 합당한 규제를 펴야 할 것이다.
위 칼럼은 컨슈머워치가 주최하여 5월 12일 국회 의원회관 제 2간담회실에서 열린 <단말기 보조금 해법 모색> 정책토론회에서 발표된 내용을 김규태 미디어펜 연구원이 요약정리한 것입니다. 위 칼럼은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가 발제한 발표자료 원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