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북미대화의 교착 국면이 길어지는 가운데 북한이 유엔 군축회의에서 처음으로 핵‧미사일 시험 발사를 재개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
정부는 이와 무관하게 북한 개별관광을 필두로 남북 철도연결사업과 2032 하계올림픽 남북 공동개최 추진 등 ‘독자적’ 남북협력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21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군축회의에 참석한 주용철 주제네바 북한대표부 참사관은 그동안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를 중단해왔지만 미국의 태도가 변한 것이 없어서 이 같은 중단 조치를 해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탄핵 정국 속에서 대통령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상대로 비핵화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잡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주 참사관은 “미국과 신뢰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지난 2년 동안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하지 않았으나, 미국은 한국과 연합 군사 훈련을 시행하고 북한에 제재를 부과하는 것으로 응답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이어 “미국이 우리(북한)의 발전을 막고 체제를 압박하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는 것이 확실시됐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방이 존중하지 않는 약속에 더 이상 일방적으로 구속될 이유를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주 참사관은 미국에 대해 “가장 가혹하고 비인간적인 제재를 취하고 있다”며 “만약 미국이 우리를 향해 이 같은 가혹한 정책을 계속 지속할 경우 한반도의 비핵화는 없다”고 일갈했다.
그는 “미국이 일방적 요구를 강행하려 하고 제재를 계속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미국이 적대 정책을 포기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추구할 때까지 우리는 안보에 필요한 전략무기를 계속 개발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지난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연말 시한을 정해놓고 ‘새로운 길’을 언급한 이후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 재개에 관심이 모아졌다. 북한은 미국을 향해 ‘크리스마스 선물’도 언급했으나 지금까지 군사 도발은 없었다.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제시된 강령적 과업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한 청년전위들의 궐기대회가 1월 21일 김일성 경기장에서 진행되고 있다./평양 노동신문=뉴스1
북한이 미국을 겨냥해 국제사회에서 여론전에 나선 만큼 앞서 유엔 안전보장회의에서 대북제제 일부 해제를 주장하며 결의안 초안을 제출한 중국, 러시아를 등에 업고 대미 압박의 수위를 올릴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이달 초 신년사와 신년기자회견을 통해 새해 과감한 남북 교류협력사업 추진을 선언하고 ‘북한 개별관광’을 새해 역점사업으로 발표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정부는 국제여론전에도 전력을 집중했다.
이장근 주제네바 한국대표부 차석대사는 유엔 군축회의에서 북한보다 먼저 진행한 발언에서 “한국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이행하면서 동시에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수혁 주미대사도 같은 날 워싱턴DC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특파원 간담회에서 정부의 남북협력 사업과 관련해 “시급히 해야 하고 할 만하다고 하는 것이 남북 철도연결사업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의 큰 원칙은 국제 제재의 틀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로서 최대한 해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이 핵포기에 대한 의지를 보이지 않아 미국의 상응조치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북미 협상이 좌초될 위기에서 한국정부가 남북 교류협력사업에 드라이브를 거는 것에 대해 비판론도 일고 있다.
당장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개별관광 등 남북협력사업에 대해 지난 16일 “향후 제재를 촉발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려면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서 다루는 것이 낫다”며 견제에 나서면서 정부와 신경전을 벌이는 일도 벌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17일 기자들과 만나 “대사가 주재국 대통령의 발언을 언론에 공개적으로 언급한 부분은 대단히 부적절하다”며 “남북협력 관련 부분은 우리정부가 결정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대북정책은 대한민국의 주권에 해당하는 문제”라고 선을 그었고,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이 “대사가 무슨 조선 총독이냐”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미 국무부는 20일 “남북 협력은 반드시 비핵화에 대한 진전과 보조를 맞춰야 한다”고 밝혔다. 또 미 국무부는 “모든 유엔 회원국은 유엔 안보리 결의를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해리스 대사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신뢰한다”고 밝혔다.
개별관광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나 미국의 독자 대북 제재에 저촉되지 않는다. 다만 관광객이 반입 금지 물품인 전자기기 등을 소지하면 제재에 저촉될 수 있고, 육로 관광의 경우 군사분계선을 넘으려면 유엔군사령부 승인을 받아야 하므로 개별관광 때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검토한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북한 개별관광에 북한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지만 남북협력 사업을 논의할 한미 워킹그룹회의가 이르면 다음달 초 열릴 전망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23일 “한미가 신속히 워킹그룹회의를 연다는 목표로 일정 조율에 들어갔다”며 “다음주쯤이면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전했다.
한미 워킹그룹의 차석대표인 이동렬 외교부 평화외교기획단장이나 앨릭스 웡 국무부 부차관보가 상대국을 방문해 회의를 여는 방안이 유력하다. 한미는 회의에서 개별관광의 유형과 규모, 대북제재 저촉 사항 등을 검토하고 의견을 교환할 것으로 관측된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