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호 프리덤팩토리 대표 |
첫째, 세계 초일류의 제조업 회사를 일구어낸 경영자라는 점이다.
두 번째는 장남이 아니었으며, 창업자인 아버지로부터 그룹 총수의 권한을 물려받는 것이 애초에 예정된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결국 그룹 총수로서 그 역할을 다하게 된다.
오늘은 제조업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한다.
우리나라의 평균 소득이 2만5천불인데, 지역별로는 8만불, 9만불의 소득을 올리는 지역이 있다. 바로 울산이다. 이에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울산에 위치한 현대자동차 및 조선업 등 각종 제조업의 산업 기반과 경쟁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에, 울산 지역의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는 수많은 근로자들은 세계 최고의 근로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다.
수출액을 기준으로 한 우리나라의 3대 제조업은 전자산업, 자동차산업, 석유산업이다. 오늘은 우리나라 3대 제조업의 주역, 3명에 대해서 나누려고 한다. 이건희, 정몽구, 최종현 3인이 바로 그들이다. 오늘은 글로벌 시장을 활용한 우리나라의 기업가들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둔 3인에 대하여 얘기하려 한다.
▲ 현대차 울산공장 |
가장 최근의 기준인 2013년 인터브랜드의 세계 100대 브랜드 기업 발표에, 우리나라 기업의 브랜드는 3개가 들어가 있다. 8위인 Samsung(삼성전자), 43위인 Hyundai(현대자동차), 93위인 Kia(기아자동차) 등으로 모두 제조업이다. 우리나라의 지난 수십년 간의 산업화를 이끌어 온 가장 큰 주역이 제조업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현대기아차가 지금의 위치에 이르기까지 그 주역이었던 정몽구 회장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드리고자 한다. 2013년 11월 26일 저녁 7시 남산 하얏트호텔에서 제네시스 신차발표회가 열렸다. 조명을 받으며 무대에 올라선 정몽구 회장은 기념사를 읽기 시작했다.
“현대차의 기술력이 집약된 새로운 제네스는 혹독한 성능 평가...”. 그는 제네시스를 발음하지 못해서 제네스라고 말했다. 기념사 내내 정몽구 회장은 제네시스가 아니라 제네스로 발음했다.
정몽구 회장(이하 정몽구)은 말을 참 못하는 사람이다. 써 준 것도 잘 못 읽는다고 한다. 그래서 1998년 정몽구가 왕자의 난을 거쳐 현대자동차의 경영권을 잡았을 때 사람들은 현대자동차가 곧 망할 거라고 얘기했다. 떠나려고 하던 회사 임원들도 많았다.
그랬던 그가 당시만 해도 3류에 불과하던 현대차를 어떻게 세계 제 4위의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냈을까.
정몽구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이병철 창업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아버지 정주영을 정말 무서워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버지 정주영(이하 정주영)은 아들들과 항상 함께 다니고 식사를 즐겼으며, 매일 새벽에 함께 식사를 마치고 부자가 모두 함께 현대사옥으로 걸어서 출근할 정도였다. 하지만 아들 정몽구는 아버지의 그림자도 못 밟은 세월이었다.
▲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
정주영이 사업가의 필수 덕목으로 생각했던 영어는 못하거니와, 머리가 좋지 않고 몸만 앞서는 사람이라는 평이 정주영이 정몽구를 바라보는 주된 시선이었다.
맏아들 정몽필이 사고로 죽은 이후로 맏아들이 된 정몽구에 대해서, 줄곧 정주영이 가지고 있던 생각은 “사업하려면 영어를 잘 해야 하니, 머리보다 몸이 먼저 나가는 몽구는 잡화상이나 시켜야지”라는 것이었다.
한양대 공과대학 공업경영학과를 1967년 졸업한 뒤, 정몽구는 정주영의 허락이 없어 현대 그룹에 정식으로 입사하지 못했다. 오히려 어머니가 회사 직원들에게 따로 부탁을 하여 아버지 몰래 회사에 입사하게 된다.
정몽구는 부품담당 영업과장으로 직장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고장난 차를 고쳐주는 AS서비스를 담당하는 당시 기준으로는 밑바닥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정몽구는 자동차를 고치는 AS업무로 시작하게 된다. 지금의 현대자동차 원효로서비스센터가 첫 직장이었다.
이후 10~15년이라는 인고의 시간이 흘러, 정몽구는 아버지로부터 컨테이너사업의 성공을 통해 처음으로 인정받게 된다. 복잡한 기계가 아니라 단순한 철제박스에 불과한 컨테이너를 제작하는 현대정공의 경영을 1977년 정몽구가 맡게 되었는데, 이후 현대정공이 수년간 성장한 끝에 세계 컨테이너 시장의 40%를 점하게 되면서 드디어 정주영으로부터 인정받게 된다.
이어 정몽구는 정주영에게 새로운 사업 제안을 하게 되어, 컨테이너를 만들던 회사 현대정공은 지프차를 만드는 회사로 변모하게 된다. 현대갤로퍼로 시작한 정몽구의 첫 사업은 쌍용 코란도가 장악하던 우리나라 시장을 양분하게 되어 주위로부터 경영능력을 더욱 인정받게 된다.
정몽구는 아버지 정주영에게 “말을 잘하지 못해도 경영은 잘 할 수 있는 것이었다”는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한국 기업계에서 정상의 위치를 구가하던 현대에게도 위기는 닥친다. 1992년 대선 패배 이후 고난의 시절이 바로 그것이다. 김영삼 후보가 당선되면서 경쟁자였던 정주영 회장은 그룹 경영의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고, 1995년부터 본격적인 2세 경영이 시동된다.
전자, 건설, 중공업 등 주요 부문은 형제들과 분리해서 경영하게 되었지만, 정몽구는 1996년 현대그룹 회장에 오른다. 이후 2000년 ‘왕자의 난’을 겪으면서 정몽구 회장은 현대그룹과 완전히 분리하여 현대차그룹의 회장으로 임하게 된다.
현대차는 1976년 포니자동차로 자동차산업에 뛰어들었지만, 정몽구가 현대차그룹으로 완전히 독립하던 2000년에 이르기까지 세계시장에서 혹평을 받던 브랜드였다. 데이비드 레터맨이 진행하는 레이트쇼에서 “우주선 계기판에 현대 로고를 붙이면 우주비행사들이 겁에 질려 지구로 당장 귀환할 거야”라는 농담이 미국 방송계에서 횡행할 정도였다.
▲ 현대차가 세계 자동차시장의 글로벌 강자로 부상하기 위해 품질과 서비스, 마케팅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정몽구회장의 우직스런 품질경영과 마케팅경영이 성공을 거두면서 연간 800만여대를 판매하는 글로벌 톱5안에 들어서게 됐다. 경제발전은 현대차처럼 끊임없이 발전하고 흥하려는 기업과 개인에 의해 발전해왔다. 현대차가 지난해말에 선보인 최첨단 제네시스 발표회에서 정몽구회장과 정홍원 국무총리 등 주요인사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
여기서 정몽구 회장의 과거 경험이 큰 빛을 발한다. 입사 초창기 AS센터에서 오래도록 근무했던 경력 말이다.
정몽구 회장은 현장 일선 구석구석에 임직원들과 함께 자주 방문했는데, 방문해서 불량품을 발견하거나 공정 문제나 제품의 하자를 조금이라도 발견하면 몇 마디 하지 않고 이렇게 짧게 언급했다고 한다.
“이것들을 당장 고쳐!”
그리고 정몽구 회장은 관련 임직원에게 해당 사항에 대해서 물어보고, 이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임직원 모두 그 자리에서 해고했다고 한다. 정몽구 회장의 모토는 “품질이 모든 것이다. 문제가 있는 것은 당장 해결하라!”였다. 이를 통하여 일종의 럭비공 인사라는 세간의 평을 듣기도 했지만, 정몽구 회장은 개의치 않았다. 오직 품질관리만을 바라보았다.
한편 정몽구 회장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다고 일컬어지는 한국금속노조(현대자동차노조)의 연이은 태업 및 파업에 대응하기 위하여 자동차의 모듈화를 꾀한다. 전 부품의 모듈화를 통해 노동에 대한 의존도를 최소한도로 낮추어 노조에 따른 생산성 차질의 문제를 최소화했다.
이러한 경영조치에 힘입어 현대차의 품질은 급속도로 향상된다. JD파워의 신차 100대당 품질 결함 기준을 의미하는 미국 신차품질지수(IQS) 추이에 따르면, 2001년 32위에 불과했던 현대차의 품질 순위는 2006년에는 3위에 이르게 된다. 정몽구 회장은 극적인 반전을 이루어낸 것이다.
▲ 정몽구 회장이 인도 공장을 방문해 신형 i20 차량 생산 라인을 둘러보고 관계자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
급기야 글로벌 생산거점으로 삼는 해외공장들이 성공적으로 안착하면서, 현대기아차 그룹의 연 생산능력은 800만대를 넘어섰으며, 2012년 업체별 판매대수를 기준으로 세계 5위에 올라서게 되었다. 현대기아차의 세계 자동차시장 점유율은 2007년 이후로도 꾸준히 상승하여 2012년에는 8.6%에 이른다.
시장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점에서 자동차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의 자동차 업계는 현재 전기자동차라는 새로운 트렌드로 바뀌어 나가고 있다. 내연기관으로서의 모터가 아니라 전기전자제품으로서의 엔진 구동력으로 자동차가 굴러가는 현재의 트렌드는, 구글을 위시한 IT기업들이 시장참여자로 들어와서 자동차시장이 더욱 가혹한 경쟁을 펼치는 장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필자는 정몽구 회장의 리더쉽으로 현대기아차가 전기자동차라는 자동차 업계 ‘창조적 파괴’의 주역으로 다시금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김정호의 프리덤팩토리, 이번 이야기는 프리덤팩토리와 자유와창의교육원이 함께 기획하여 제공하고 있는 강의시리즈, <대한민국 기업가열전>의 제 10강, “제조업 절정에 달하다”의 강연 일부를 김규태 미디어펜 연구원이 요약 정리한 것이다. <대한민국 기업가열전> 제 10강은 29일 여의도 전경련 컨퍼런스 센터 다이아몬드홀에서 열렸다.
‘자유와창의교육원’은 6월 26일(목) 시장경제교육의 진흥을 목적으로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에서 개원하였다. 자유와창의교육원은 우리 사회의 오피니언리더와 일반 시민들의 경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경제의 기본원리에서부터 한국경제발전사, 기업의 이해, CEO 특강 등 다양한 테마를 주제로 교육하고 있다. 시민주주 731명의 참여로 시작한 주식회사 형태의 민간씽크탱크 ‘프리덤팩토리’와 마찬가지로, 자유와창의교육원은 우리 헌법의 기본정신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본 가치로 삼고 있다. 그동안 전경련 차원의 교육이 군, 경찰, 교사, 공무원, 법조인, 언론인 등에 한정된 측면이 있었지만, 동 교육원 개원을 통해 기업체 임직원은 물론 일반시민, 대학생, 청소년까지 교육의 폭을 넓힐 계획이다. 교육 내용도 시장경제 원리, 한국경제 발전사, 기업의 이해, 창업가 열전, 경제현안 이슈 등이 공통 과목으로 구성되는데, 그동안 이렇게 시장경제와 관련된 내용을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곳이 없었다는 점에서 개원의 의미가 있다. 송병락 서울대 명예교수가 초대 원장을 맡았으며, 교수진도 다양한 분야에서 초빙했다. 이승훈 서울대 명예교수, 안재욱 경희대 교수를 비롯하여, 박재완 前기재부 장관,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 김현준 삼성 전무, 김명환 GS칼텍스 부사장 등이 주요 교수진으로 참여한다. 전현직 CEO들이 교수진으로 참여해 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이론과 실제가 접목되는 ‘살아있는 교육’을 진행할 계획이다. 자유와창의교육원의 첫 강의는 7월 7일(월) 시작한다. 김정호 프리덤팩토리 대표(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가 ‘대한민국 기업가열전’이라는 주제로 매주 월요일 저녁 7시부터 약 두 시간 동안 진행하며, 총 13주차로 구성되었다. 김 대표는, 1세대 기업가인 ‘인삼 상인 임상옥’부터 ‘이병철, 구인회, 정주영’ 등을 거쳐 ‘SM 이수만, YG 양현석, JYP 박진영’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기업가들의 파란만장한 스토리를 펼친다. 대학생 및 일반인 누구나 참여가능하며, 신청은 www.fki.or.kr에서 가능하다. 참가비는 학생 1천원, 일반인 5천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