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명장 밑에 약졸 없다'는 옛말이 있다. 지난 26일 막을 내린 2020년 AFC(아시아축구연맹) U-23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한국 23세 이하 축구대표팀을 보면 이 말이 딱 들어맞는다.
김학범 감독이 이끈 한국대표팀은 조별리그부터 사우디아라비아와 결승전까지 6경기를 치러 전승을 기록하며 우승했다. 김학범호는 도쿄올림픽 진출권을 따내 세계 최초의 9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을 성공시켰으며 AFC U-23 챔피언십 첫 우승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완벽하게 이뤄냈다.
AFC U-23 챔피언십 우승을 일군 김학범 감독이 28일 오전 귀국,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으로부터 축하 꽃다발을 받고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김학범 감독은 확실하게 '명장'이었다. 우승해서 명장이 아니라, 명장이었기에 우승을 이끌어냈다. 이미 프로팀 감독으로서 성남 일화를 K리그 정상에 올려놓았고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사령탑을 맡아 금메달을 따냈던 김 감독이다. 지도자 경력에 이번 대회 우승 타이틀을 하나 추가했을 뿐 이미 명장 반열에 올라있던 김 감독이다.
그렇다고 이번 한국 U-23 대표팀이 우승을 장담할 정도로 최상의 전력으로 꾸려졌다고 볼 수는 없었다. 유럽파는 정우영(프라이부르크) 한 명만 선발됐고, 김학범 감독이 원했던 이강인(발렌시아)이나 백승호(다름슈타트)는 소속팀 협조를 얻지 못해 합류하지 못했다. 23명의 대표팀 가운데 A매치를 경험한 선수는 이동경(울산) 한 명뿐이었다.
'연구파'로 유명한 김학범 감독은 이런 여건 속에서도 철저하게 대회 준비를 했다. 그리고 대회 들어 보여준 작전, 선수 기용, 조커 활용 등은 거의 완벽했다.
결과가 좋아서가 아니라, 우승이라는 결과까지 가는 과정이 좋아서 김학범 감독의 명장다운 면모는 더욱 빛났다.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중요한 대회에서 김학범 감독은 철저한 선발 로테이션을 실시했다. 매 경기마다 선발 출전 명단이 6~8명씩 대거 바뀌었다. 성적을 내려면 가장 믿을 만한 선수들을 선발 출전시키고 싶은 것이 대부분 감독의 마음이다.
그러나 김 감독은 한 경기 승패가 아니라 대회 전체를 보는 통찰력을 발휘했다. 무더운 곳(태국)에서 2~3일 휴식 후 계속 경기를 치르는 강행군이 이어졌다. 특정 선수를 혹사시키지 않고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김 감독은 상대팀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과감한 로테이션을 시도했다.
선수 한 명 한 명의 마음도 헤아렸다. 6경기를 치르면서 23명의 엔트리 가운데 단 2명을 제외한 21명이 출전 기회를 얻었다. 끝내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던 2명도 모두 후보 골키퍼였으며 필드 플레이어는 전원 한 경기 이상 뛰었다.
대표팀으로 선발되고도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고 벤치만 지키는 선수들이 많다. 하지만 김학범 감독은 선수들을 배려해 고루 기회를 줬다. 골키퍼의 경우 포지션 특성상 K리그 우승팀 전북 현대의 주전 수문장 송범근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골문을 맡길 수밖에 없었던 측면이 있다.
대회가 끝난 후 김학범 감독은 "우리 팀은 특출난 선수가 없다, 그래서 한 발짝 더 뛰고 희생하는 '원팀 정신'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우승의 원동력을 '원팀'으로 뭉친 희생정신 덕분이었다고 강조했다.
또한 김 감독은 "이번 대회를 치르면서 모든 선수에게 뛸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우리 선수들이 장차 A대표팀 선수로 성장할 수 있어서다"라며 젊은 선수들과 한국 축구의 미래까지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번 대회 성과 중 가장 값진 것을 묻는 질문에는 "아쉽게 경기에 나서지 못한 골키퍼 2명을 제외한 나머지 21명의 선수가 모두 그라운드에 나와 자기 임무를 충실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팀에 아무 문제 없이 녹아든 게 가장 값진 결과다. 선수들에 대한 믿음의 결과다"라고 답했다.
'원팀'으로 단합을 일궈내는 것, 선수들에게 믿음을 줘 그라운드에서 가진 기량을 모두 쏟아붓게 만드는 것. 지도자에게 이보다 더 필요한 지도력은 없다.
명장 김학범 감독의 지도 아래 선수들은 약졸 없이 한 명 한 명이 '강한 전사'가 됐다. 대회 중 인터뷰에서 선수들은 하나같이 김 감독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냈다. 조규성은 "저희를 생각하시는 마음이 크신 것 같다"고 했고, 오세훈은 "아버지 같은 분"이라고 했으며, 이동경은 "감독님에게 100점 드립니다"라고 얘기했다.
축구 등 스포츠에서만 김학범 감독과 같은 리더십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정치, 경제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명장'으로 불릴 만한 리더십이 요구된다. 팀(국가, 조직, 회사 등등) 구성원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박탈감이나 차별을 느끼지 않게 고루 기회를 주고, 원팀으로 뭉쳐 서로 희생해가며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도록 만들고, 다음 세대 걱정까지 하는… 우리 주위에 그런 '명장'이 누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미디어펜=석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