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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실세 3인방 깜짝 방문 "진짜 선물 보따리 있었나"

2014-10-06 10:30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 박종운 미디어펜 논설위원
10월 4일 느닷없이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을 빙자하여 북한군의 총정치국장 황병서와 국가체육위원장 최룡해, 통일전선부장 김양건 등 세 명이 폐막식에 임박하여 통고하고 당일 인천에 왔다 갔다.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은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위원장의 생모 고영희가 각별히 신임했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군정(軍政)을 하고 있는 3대 세습독재체제인 북한에서는 제2인자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최룡해는 김일성의 측근인 최현의 아들로, 김정일 시대의 이영호 총참모장을 은퇴시키고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의 숙청에도 관여한 충성파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김양건은 오랫동안 통일전선부장으로 대남 적화 사업분야에서 일해 왔던 남북관계 전문가였다. 이번 아시안게임 폐막식을 빌미로 내려와서는 비록 김양건이 가장 연장자였지만, 그는 7살이나 어린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을 깍듯이 모셨다.

남북관계의 군사 외교적 측면에서 볼 때 이 세 사람은 명실상부한 최고위급 세 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일부 사람들은 북한 정권 2인자들의 단체 방문을 보고, 격을 따져서 대통령과의 만남 여부에 대해서 논하거나, 갑작스런 방문의 무례함에 대해서 따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필자의 머리엔 소설과 같은 엉뚱한 상상이 떠올랐다.

최근 3대 세습독재 김정은이 일시적으로(?) 유고상태다. 게다가 황병서 일행은 김정은의 전용기를 타고 왔다. 수령절대주의에 걸맞지 않게 이례적으로 경호원까지 대동하고 왔다. 김정은 유고의 진상을 대외적으로 공표하기 전에(그들은 김정은의 건강엔 전혀 이상이 없다고 했지만), 그들은 혹여 김양건을 앞세워 대외관계를 직접 만들기 위해서가 아닐까?

과거 고구려말에 연개소문이 죽자 연개소문의 세 아들이 각축을 벌였다. 그러다가 막내 동생인 연남산이 중형인 남건을 부추겨 함께 쿠데타를 일으켜 장형인 연남생을 몰아냈다. 길림으로 도망갔던 전 대막리지 연남생은 당나라 군대의 앞잡이가 되었고, 동생들은 당나라군대와 싸우다가 항복하거나 포로가 되었다. 수나라와 당나라의 여러 차례 공격도 잘 막아냈던 고구려가 내분으로 한 번에 망해버렸다. 나뭇가지를 묶어 놓으면 꺾기 어려우나 따로 떼어 놓으면 각각 부러지기 쉽듯이….

그래서 이런 역사를 잘 알고 있는 2인자급 세 명이 한꺼번에 온 이유가, 한편으로는 서로를 의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공동운명체적 행보를 걸어야만 위기 상황 속에서 질서 있고 안전한 퇴로를 확보할 수 있다고 본 것이 아닐까? 김양건을 통해 그 루트를 마련함으로써 후일을 모색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
 

2인자들 셋이 비록 당일치기로 왔다가지만, 무언의 메시지와 무언의 관계가 형성되었으니, 실제 그런 목적이 있었다면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것이 된다. 속내를 바로 내비치면 협상력만 약화되기 때문에, 실제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했지만…. 무언가 ‘반(反) 사실의 사실’이 일어난 것 같다.

   
▲ 정홍원 국무총리가 4일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을 찾은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오른쪽) 등 북한 고위대표단과 환담을 하고 있다.

사실 북한 정권은 지금 배급경제가 이미 파탄이 나 있는 상태다. 장마당 경제라는 초보적 시장경제가 배급경제를 거의 대체하고 있는 중이다. 외부 특히 대한민국과 중국으로부터의 원조는 이미 끊겨 있는 상태다. 군량미도 바닥이 나 있는 상태다. 외화벌이에 동원된 군 부대가 통째로 대한민국으로 탈북자로 들어오는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평양의 군정 귀족들이 자신들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서 세금을 거두는 것으로 상황을 타개하려고 하면, 자칫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

과거 2009년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화폐교환으로 인해 민심이 흉흉해지자,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물어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이었던 박남기를 총살한 적도 있었다. 북한의 국방위원회를 필두로 한 군정은 이 위험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자신들의 지위를 보장해 주는 곳이 있다면, 그들은 평화롭고 질서 있게 그 길을 택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지도자들의 마음먹기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한 예가 있다. 독일 통일 때의 사례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후, 동독에서는 1990년 새로운 선거를 통해 로타어 드 메지에르(Lothar de Maizière)를 국무총리로 선출하였다. 메지에르는 서독의 기독교민주당의 자매 정당인 동독 기독교민주당을 만들어서 선거에 승리하여 동독의 국무총리가 되었다. 그는 공산당 치하에서 민주정당의 경험이 없었기에 서독의 정당 기독교민주당을 복사한 것이다. 또한 그는 총리로서 국정경험도 없었기 때문에 서독과의 통일을 통해서 국정난국을 돌파하려고 했다.

이러한 마음을 먹은 드 메지에르가 있었기에 서독의 콜 국무총리가 통일 대업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독일어권에서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소독일주의로 각각 따로 갔듯이, 혹여 그가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해 갈 능력이 있었다면, 국제정세 등을 이유로 들어 통일을 반대하고, 통일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 나갔을 수도 있다.

지금 북한은 자체적인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로 보여진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최고 지도부가 드 메지에르와 같은 마음을 먹고 자신들에 대한 ‘안전보장 및 예우’를 조건으로 통일 총선거의 길을 열어줄 경우를 아예 배제할 수도 없다.

더구나 그들은 이번에 와서 국회의원이 된 임수경도 보고 갔다. 임수경을 만나보고 나서 자신들의 미래 안전보장에 대해 더 안심을 할 수도 있다. 과거 수많은 탈북자들이 임수경이 평양에 와서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대한민국에 대한 동경을 키우고, 또 북한의 매체들이 임수경의 서울 집을 취재하여 숙청당하지 않고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탈북에의 꿈을 키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번에 온 북한 2인자급들은 임수경이 아예 국회의원으로 예우(?)받고 있음에 크게 고무되어, 통일에의 길로 가도 자신들이 토사구팽당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예우를 받을 수 있다고 안심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이런 '소설과 같은 상상'이 혹여라도 사실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면, 과거 고려태조 왕건이 경순왕을 예우하고 사심관으로 임명하는 형식으로 통일을 이루었듯이, 그들에게 충분한 보장을 해주겠다고 약속하고 통일의 길을 앞당기는 방안도 쓸 수 있겠다. 북한동포들의 인권과 생활을 개선할 수 있다면, 그 비용이 들더라도 그리 아깝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니체가 말하는 천진난만한 어린애 같은 '초인(Übermensch),' 그러기에 더 더욱 위험천만한 김정은을, 연금은 했지만, 북한 내부의 충성파에 의한 반란을 우려하여 그 권위를 업고 가고자 예우 및 보장요구 대상에 끼어 넣을 경우조차도….

이것을 일러 통일학적 상상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이러한 상상력은 현재로서는 현실이 아닐 가능성이 더 많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일 가능성도 크다. 합리적으로 보면, 대개의 북한 전문가들이 말하듯이 여태까지처럼 난국을 돌파하기 위한 전술, 중국도 미국도 통하지 않아 통남전술을 쓰는 것일 수 있다. 심리전의 하나일 가능성도 크다.
 

그런 점에서 확실히 북한급변사태에 대한 대비차원에서 국방안보전선의 강화는 기본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이 통일학적 상상력은 김정은의 일시적 유고, 2인자들의 떼로 온 방문 등의 이상 현상으로 추측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시나리오 중 하나일 수는 있다. 따라서 그런 상황에도 대비하여 마음 자세를 가다듬는 것도 전혀 뜬금없는 짓은 아닐 것이다.

북한의 2인자들이 추후 남북고위급회담 등을 통해서 일정한 보장을 받고, 통일을 위한 자유 총선거의 길로 나선다면, 그것은 행운이다. 그 날이 오면 우리는 만델라 식으로 그들의 전비(前非)를 기록하고 기억은 하되, 기꺼이 용서를 하고 예우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공을 세워 죄를 씻는 일은 역사에 비일비재하다. /박종운 시민정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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