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남북정상회담 때 남한 대기업 총수들에게 ‘냉면이 목구명으로 넘어가냐’고 핀잔 준 것으로 유명해진 북한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이 외무상으로 임명된 것과 관련해서는 그가 외교관 경력이 전무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전망이 나올 수 없었다.
더구나 2018년 남북고위급회담의 북측 대표를 맡았던 경력이 있는 리선권의 후임이 아직까지도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통일부장관의 카운터파트가 사라져 당분간 남북 고위급대화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대개 상대방에 내줄 것과 받을 것을 놓고 벌이는 협상이 잘 풀리지 않거나 기존 전략을 바꿔야 할 때 협상대표를 교체하기 마련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리선권 외무상 임명은 △비 출신 인사 △위상 하락 △후임자 오리무중이라는 세가지 측면에서 메시지를 남겼다고 볼 수 있다.
수년간 북한 외무성 관료들과 만나 대화를 이어온 이상수 안보개발정책연구소 한국센터장은 지난 11일 미디어펜과 만났을 때 ‘리선권 임명’과 관련해 “미국을 향해 더이상 협상에 흥미가 없다는 입장 보여주는 것 아니겠나”라고 평가했다.
한마디로 영어도 안 되는, 외교관 출신도 아닌 대남 전담기구 수장이던 사람을 외무상으로 임명한 것은 미국과의 대화 의지를 기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에서도 외무상은 남한을 제외한 비사회주의 국가들을 대상으로 외교를 전개하는 직책이다.
지난해 2월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렸지만 합의없이 결렬된 이후 북한이 내세운 ‘새로운 길’과 미국에 요구한 ‘새 계산법’에 대한 입장이 리선권 외무상 임명에 담겨 있어 보인다. 리선권 외무상 임명은 북한이 지난 연말 진행한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과로 발표됐고, 당시 전원회의 때 김정은 위원장의 발표 내용은 신년사로 대체됐다.
리선권 임명에 맞춰 북한은 외무상을 당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출하지 않아 엘리트위상을 급격하게 하락시켰다. 이전까지 외무상과 당 국제부장 모두 정치국 위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당 국제부장은 정치국 후보위원에 올랐지만 신임 외무상은 이마저에서도 탈락됐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그동안 미국과의 협상 경험이 없고 기본적으로 남북군사회담 전문가인 리선권을 외무상직에 임명한 것이 사실이라면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을 중단하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정면돌파하겠다는 김정은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북한이 리선권의 후임자를 발표하지 않아 통일부가 새해 발간한 ‘북한 권력기구도’에서 조평통 위원장 직위를 공석으로 처리한 것은 남북관계 전망마저 어둡게 만들고 있다.
리선권 외무상 임명이 처음 보도됐던 1월 중하순 즈음에는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부정과 긍정 두가지의 전망이 나왔다.
당시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남북관계를 잘 아는 인사가 미국을 견제하겠다는 입장 즉, ‘견미용남’을 기대해볼 수 있다”며 향후 북한이 남북협력사업에 호응해나올 수 있다는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반면, 정성장 센터장은 “리선권이 남북관계에 관여할 여지는 거의 없고, 장기간 군부의 이익을 대변해온 인물인 점을 감안할 때 향후 북한 외교에서도 핵보유국 지위를 강화하려는 군부 입장이 더욱 크게 반영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리선권의 외무상 임명으로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낮아보이고, 북한이 한국과 미국 모두를 향해 대화의 의지가 없음을 드러내고 있다는 해석이 합리적인 상황이다.
여기에 군부 출신인사의 북한 외무상 임명은 지난 연말부터 전문가 일각에서 제기되어온 향후 북한의 군축협상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분석에도 무게를 더해주고 있다.
이에 맞춰 미국도 대북 라인들을 줄줄이 이동시켜 대선에 ‘올인’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후순위로 밀어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의 승진으로 대북 ‘키맨’으로 부상했던 알렉스 웡 국무부 대북특별부대표 겸 박한 담당 부차관보가 대사급인 유엔 특별정무 차석대사로 이동했다.
마크 램버트 전 미국 국무부 대북특사가 지난달 초 대중 견제 역할을 위한 유엔 ‘다자간 연대 특사’로 임명된 데 이은 연쇄적인 유엔 이동으로 대북 핵심 라인이 연이어 공석이 된 것이다. 이에 따라 달라진 환경에 맞게 문재인정부의 외교‧안보‧대북 라인을 개편할 필요성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