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국새 '대군주보'(왼쪽)와 효종어보 [사진=문화재청 제공]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조선 국왕 권위를 상징하는 도장 두 점이 돌아왔다.
문화재청은 무단 해외 유출된 조선 후기 국새 '대군주보'(大君主寶)와 '효종어보'(孝宗御寶)를 재미교포 이대수(84) 씨로부터 지난해 12월 기증받아, 최근 한국에 들여왔다고 19일 밝혔다.
국새(國璽)는 국권을 나타내는 도장으로, 외교문서와 행정문서 등 공문서에 사용했으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어보(御寶)는 왕과 왕비 덕을 기리거나 사후 업적을 찬양하기 위해 만든 의례용 도장이다.
조선시대 국새와 어보는 모두 412점이 제작됐는데, 73점은 소재가 불분명하며, 해방 이후 지난해까지 7차례의 협상·기증·수사 공조 등을 통해 국새 6점과 어보 8점이 미국에서 환수됐다.
대군주보는 높이 7.9㎝, 길이 12.7㎝, 무게 4.1㎏으로, 은에 도금을 했으며 손잡이는 거북 모양이고, 서체는 구첩전(九疊篆·글자 획을 여러 번 구부려 쓴 전서체)이다.
제작 시기는 '고종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을 근거로 1882년으로 추정됐는데, 고종실록 1882년 5월 23일 기사에는 "교린(交隣)할 때 국서(國書)에 찍을 대군주보(大君主寶)와 대조선국 대군주보(大朝鮮國大君主寶) 국새를 조성하라고 명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사용 시기는 1882년부터 대한제국을 선포한 1897년까지로, 1883년 외국과 통상조약 업무를 담당하는 전권대신을 임명한 문서와 1894년 '갑오개혁' 이후 고종 명의로 반포된 법률·칙령 등에 사용한 예가 확인됐다.
조선시대 인장 전문가인 서준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조선은 본래 명과 청이 준 '조선국왕지인'(朝鮮國王之印) 국새를 썼으나, 고종은 '대군주보' 국새를 새로 제작할 것을 지시했다"며 "'보'(寶)는 천자만이 쓴다고 알려진 글자였다"고 설명했다.
또 "대군주보에는 개화기 정세 변화에 맞춰 중국을 향한 사대적 외교관계를 청산하고 독립된 주권국가로 나아가려는 생각이 반영됐을 것"이라며 "고종은 외교용 국새 6점을 만들었는데, 이번에 귀환한 대군주보를 제외한 5점은 행방이 묘연하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대군주보와 함께 돌아온 효종어보는 높이 8.4㎝, 길이 12.6㎝, 무게 4.0㎏로, 손잡이는 거북 모양이며, 금빛을 띤다.
영조가 1740년 제17대 임금 효종(재위 1649∼1659)에게 '명의정덕'(明義正德)이라는 존호를 올릴 때 이 효종어보를 만들었다.
효종어보는 1659년, 1740년, 1900년에 각각 제작됐는데, 1659년 어보는 사라졌고, 1900년 어보는 국립고궁박물관에 있다.
서 연구사는 "1739년 제작한 중종비 단경왕후 금보와 비교하면, 제작 기법과 글자 새김이 매우 유사하다"며 "18세기 중반 왕실문화 정수를 보여주는 유물"이라고 강조했다.
두 도장은 20일부터 다음 달 8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2층 '조선의 국왕'실에서 공개된다.'
유물 소유자였던 이대수 씨는 대군주보와 효종어보를 1990년대 후반에 경매를 통해 매입했고, 외국에 떠도는 국새와 어보가 대한민국 정부 재산이자 도난 문화재라는 사실을 알고, 기증을 결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번 환수는 기증이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행방불명 상태인 어보와 국새에 대한 기증을 통한 환수를 지속해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윤광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