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북한의 ‘남한 때리기’가 전방위로 이뤄지고 있다.
지난 2018년 평창올림픽 때 남한을 방문했고, 정상회담 때마다 현장을 지켰던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담화를 낸 이후 대남정책을 총괄하는 통일전선부 담화가 이어지더니 8일 북한 선전매체가 총동원돼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날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면에 ‘우리의 최고존엄을 건드린 자들은 천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는 제목의 사진과 함께 대북 전단 살포를 규탄하는 평양 시내 군중집회를 소개했다.
북한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북미 선순환관계 전략을 “달나라 타령”이라고 조롱했다. 또 다른 선전매체인 ‘메아리’는 문 대통령의 평양 연설을 언급하며 남한정부를 비판했다.
이날 김여정 제1부부장의 담화를 나온지 나흘만에 북한은 처음으로 남북연락사무소 전화를 수신 거부했다. 2018년 남북 정상간 첫 회담의 결과물인 판문점선언에 따라 개성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한지 1년 9개월만에 불통 사태를 맞은 것이다.
북한의 이번 공세는 지난 4일 새벽 김여정 제1부부장이 탈북민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비난하는 것을 시작했다. 당시 개성공단의 완전 철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 등을 경고했다.
이어 통전부가 5일 밤11시 대변인 담화를 내고 김 제1부부장이 이와 관련한 첫 조치로 연락사무소의 '완전한 폐쇄' 등을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통전부는 “갈 데까지 가보자는 것이 우리의 결심”이라며 “접경지역에서 남측이 몹시 피로해할 일을 준비 중이다. 그 첫 단계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결단코 철폐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날까지도 남북 간 연락사무소 전화통화는 오전 개시통화와 오후 마감통화 두차례 이뤄졌지만 주말을 보낸 뒤 8일 오전 북한은 업무개시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북한 노동신문이 8일 전날(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13차 정치국 회의를 주재했다고 보도했다./평양 노동신문=뉴스1
이날 우리민족끼리는 “남조선 집권자는 ‘선순환 관계’ 타령을 쩍하면 부하들 앞에서, 인민들 앞에서, 국제사회 앞에서 듣기 싫을 정도로 외워댔다”며 “북남관계와 조미(북미)관계를 서로 보완하는 것이라고 그럴 듯하게 해석하는데, 지금까지 북남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사사건건 미국에 일러바치고 승인해주지 않으면 손들고 나 앉았다”고 비난했다.
이어 “만사람은 물론 자기 스스로도 이해 안되는 ‘선순환 관계’ 타령을 읊조리며 허구한 세월을 무료하게 보냈으니 그 타령이야말로 달나라에서나 통할 ‘달나라 타령’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
또 다른 대외선전 매체 메아리도 같은 날 “현 남조선 당국은 북남 관계에서 그 무엇을 해결할 만한 초보적인 능력과 의지도 없는 무지·무능 정권”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세 차례의 북남 수뇌 상봉, 군사 분야합의에 이어 그 누구도 감히 바랄 수 없었던 평양 시민들 앞에서의 연설이라는 특대형 환대까지 베풀어졌지만, 현실은 오랫동안 교착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이를 볼 때 북한의 남한 때리기는 탈북민 대북전단 문제로 시작됐지만 2019년 하노이회담 결렬 사유인 대북제재 해제를 돕지 못한 남한정부에 대한 비난이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김정은 위원장이 연초 예고했던 ‘새로운 길’에 대한 구상이 제대로 적중하지 못하면서 미국도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자 남한에 대한 화풀이 성격이 짙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또 북한이 올해 당 창건일인 10월10일을 앞두고 평양종합병원 완공 등 김 위원장이 제시한 성과 목표가 있는데 코로나19나 대북제재로 인해 성과가 미진할 경우를 대비해 내부결속을 도모하려는 차원도 있어 보인다. 김여정 담화 이후 북한 전역에서 대남 규탄시위와 논평이 이어지는 것도 이런 차원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처음 ‘김여정 담화’가 나오자마자 우리정부가 발 빠르게 대처하며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법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북한이 계획했던 대로 비판의 수위를 높여가며 남북 간 단절 수순을 밟으려고 하는 것을 볼 때 대화보다 압박과 도발 명분쌓기를 실행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편, 통일부는 이날 오후 북한은 오전과 달리 연락사무소 통화에 응했다고 밝혔다. 다만 북한은 이날 오전 통화에 응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남북은 이날 군 통신선도 정상적으로 운영했다. 하지만 북한이 또 다른 담화를 통해 입장을 바꾸지 않는 한 여전히 연락사무소 폐쇄를 시작으로 남북 간 접촉 수단을 폐지하는 수순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는 남아 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