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계약 체결 시점 대비 부채가 늘었다는 이유로 주 채권자 한국산업은행에 현 상태로는 인수 작업을 이어나갈 수 없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사진=연합뉴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국내 항공사들의 인수합병(M&A)이 좌초 위기에 놓이면서 항공업계 구조조정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계약 체결일 당시보다 부채가 급증했다며 채권단에 인수 협상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자고 요구했다. 또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 역시 250억원 수준의 체불임금을 놓고 답보상태다.
10일 항공업계와 건설업계에 따르면 HDC현대산업개발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가치를 훼손하는 제반 상황에 대한 재점검·재협의 차원에서 당사자 간 합의에 의해 거래를 해제할 수 있도록 한 기한의 연장에 공감한다는 의사를 채권단에 전달했다.
당초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꼭 성사시키겠다던 HDC현대산업개발이 이와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은 비용의 증가 탓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은 계약 체결일 당시와 비교하면 아시아나항공 부채비율이 1만6126% 급증했고, 자본 총계 또한 지난해 반기말과 비교하면 올해 1분기말까지 1조772억원이 감소해 자본잠식이 매우 심각하다는 입장이다.
아시아나항공 순손실은 현재까지 8000억원을 상회하며 산업은행으로부터 차입한 긴급운영자금 1조7000억원을 포함, 총 부채는 4조5000억원에 달한다. 당초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은 2조50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했으나 2조원 가량이 비게되며, 결과적으로는 우선 협상자인 이들이 더욱 비싸게 사게 되는 꼴이다.
우선 HDC현대산업개발은 인수 의지는 확실하다고 표명하기는 했으나 사실상 원점에서 전면 재시작하겠다는 뜻을 밝힌 만큼 아시아나항공 주 채권자 산업은행과의 치열한 신경전이 예상된다. 완전 처음부터 모든 것을 검토하겠다는 것이 인수 파기를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허희영 한국항공대학교 항공경영학부 경영대학 교수는 "HDC현대산업개발이 최종적으로 인수를 포기하게 되는 최악의 경우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을 온전히 떠안게 되는 그림이 그려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평가했다. 이 경우 산업은행 주도 하의 아시아나항공 대수술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도 쉽사리 발을 떼지 못하고 있다.
제주항공은 표면적으로는 해외 경쟁당국의 기업결합심사 승인이 나지 않아 주식매매계약{SPA)을 미뤘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항공업계는 이스타항공 직원 체불 임금 문제가 SPA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이스타항공은 반일불매운동과 코로나19로 경영상 어려움을 겪어왔지만 상황이 더 악화돼 국내선과 국제선 운항 모두 중단하는 사태를 겪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스타항공은 실적을 내지 못해 직원 급여도 제대로 주지 못하게 됐고, 결국 부기장 80여명 등 400여명에 대해 정리해고와 지상조업 자회사 이스타포트와의 계약 해지를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체불임금이 250억원에 달하게 됐는데, 이 문제를 두고 이스타항공과 대주주 이스타홀딩스는 인수 의사를 피력하는 제주항공이 책임지라며 나몰라라 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스타항공 인수가는 총 545억원. 이 중 제주항공은 인수 계약금으로 119억5000만원을 내준 상태다. 나머지 425억원은 SPA가 이뤄지는 시점에 동시 납부한다는 방침이나, 체불임금까지 제주항공이 해결할 경우 실제 인수가는 795억원 수준에 이르게 된다.
허희영 교수는 "체불임금을 제주항공이 처리하게 될 경우 기업 가치 훼손 논란이 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주주들이 배임문제를 거론해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한편 두 건의 항공업계 M&A가 완전 불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항공업계 구조조정이 뒤따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아시아나항공은 에어부산·에어서울과 묶여 매물로 나와있는데, 나머지 두 회사에 대한 분리매각·청산 가능성에 대한 언급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가기간산업안정자금 수혜대상 1호로 거론되는 대한항공이 경영 정상화 과정을 거쳐 에어부산을 사들여 업계 탑티어를 유지하지 않겠느냐는 말도 나온다.
또한 국내 LCC 맏형인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인수를 포기해 계약금 119억5000만원을 날리더라도 위상을 공고히 하고, 이스타항공은 도산처리 되는 등 자연스레 '업계 슬림화' 현상이 나타나지 않겠느냐는 예상도 가능하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