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배출권 거래제 도입이 6년차를 맞고 있다. 그동안 투기 관행 등으로 거래가격이 급등해 관련 기업들의 부담이 가중되면서 제도의 실효성 문제까지 지적되며 구조 혁신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산업계는 내년 탄소배출권 거래제 3차 계획 시행을 앞두고 전략 짜기에 분주하다. 유상할당 확대, 파생상품 도입 등 시장을 둘러싼 변수는 많기 때문이다. 정부가 '뉴딜 정책' 재원을 위해 탄소 감축 대상 기업들을 더욱 옥죄일 것이라는 우려도 다온다. 미디어펜은 '탄소거래 5년'을 통해 탄소배출권 거래제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개선안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주>
[미디어펜=권가림 기자]올해는 2015년 파리협정에 따라 각 국가에서 새로운 국가감축목표치를 UN에 제출하는 해다. 정부가 오는 2030년까지 목표로 잡은 탄소배출량은 5억3600만톤(tCO2e)이다.
환경부가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대상 611개 업체가 제출한 배출량 명세서를 분석한 결과 배출권거래제 시행 후 지난해 처음으로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가 이뤄졌다. 배출량은 △2015년 5억4270만톤 △2016년 5억5433만톤 △2017년 5억7195만톤 △2018년 6억150만톤으로 증가하다 지난해 5억8941만톤으로 감소했다.
2015년 1월 12일 부산시 남구 부산국제금융센터 내 한국거래소 본사에서 주식처럼 거래되는 시장이 개장했다. /사진=연합
줄여야 하는데…발전·철강 배출권 '과부족'
탄소배출권 거래제는 정부가 정유, 광업, 석유화학, 비철금속, 자동차, 반도체, 전기·전자, 기타 제조업 등 기업에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총량을 설정하면 기업은 자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및 배출권이 남은 기업과 거래를 통해 정부에서 정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는 제도다.
정부는 배출권 거래제 시행 시기를 1기(2015~2017년), 2기(2018~2020년), 3기(2021~2025년)로 나누고 각 기간이 끝날 때 기업이 배출권을 갖고 있지 않으면 부족분 만큼 시장 가격의 3배에 달하는 과징금을 물게 하고 있다.
탄소배출 양이 가장 많은 곳은 발전, 철강, 석화, 시멘트 순이다. 지난해 정유와 디스플레이는 각각 294만톤, 102만톤의 배출권이 남은 것으로 관측된다. 반면 발전과 철강은 각각 288만톤, 92만톤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탄소배출권 시행으로 가장 타격이 큰 업종은 철강이다. 지난해 철강에서는 전년보다 7.1% 증가한 1억1128만톤의 탄소를 배출했다. 조강 생산량이 증가한 데다 고로를 24시간 가동해야 하는 업종 특성 탓이다. 발전소들은 한국전력으로부터 80%의 배출권 지원금을 받아 타업종보다 부담이 비교적 덜하다. 디스플레이의 경우 최근 생산량 자체가 줄었고 일반 화석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아 배출권이 남은 것으로 분석된다.
제조업 코리아…'나홀로 뒷걸음' 우려
주요국은 자국 산업경쟁력이 약해지는 것을 우려해 국가 단위의 배출권거래제 시행을 꺼려하고 있다. 일본, 러시아, 미국, 중국 등 온실가스 배출 상위국은 배출권 거래 시장에 불참하거나 지역 단위로 참여 중이다.
우리나라처럼 제조업 중심의 일본은 기업에 직접적 규제를 가할 경우 산업계 피해가 우려돼 도쿄만 거래에 참여하고 기업 연합회를 중심으로 자발적 감축을 유도하고 있다. 미국은 9개 주 정부가 연간 4차례 배출권을 경매에 올리며 최저가(10달러)와 상한가(40달러)를 지정해 과도한 입찰 경쟁을 막고 있다.
우리나라 배출권 시장 구조와 비슷한 유럽은 탄소배출 기준치를 정해 이를 달성한 기업에게는 배출권을 전면 무상으로 지급하며 가격 안정화를 이어가고 있다. 유럽은 서비스 산업 중심이어서 배출권 거래제 적용이 쉬운 측면이 있다. 또 발전업종에 감축 부담을 더 주고 발전소는 비용을 전기요금으로 100% 전가하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중국도 베이징, 상하이 등 8개 지역에서 거래에 참여하고 있지만 올해부터 국가 단위로 참여할 계획이다. 다만 전 산업계가 아닌 발전부터 차차 시행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철강업계에서는 중국 철강업종이 탄소배출권 거래에 동참해 다른 국가와 공조, 합리적인 배출권 분배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철강시장에서의 경쟁력 약화를 방지하기 위해 중국도 탄소배출 목표를 공유하고 동등한 조건 아래 규제를 추진해야 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며 "중국 측에 탄소배출 등 데이터를 제 3자가 검증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지만 중국은 반대하고 있어 경쟁력을 나란히 가져가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린 뉴딜? 재정만능주의로 기업 옥죄면 안돼"
최근 코로나19로 4만원대를 웃돌던 가격이 3만원 초반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금융위기 당시에도 경기부양 효과로 배출량이 급증했한 바 있고 최근 공장들도 정상화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배출권 가격은 매수와 매도간 거래 불균형으로 비정상적으로 상승해 왔다. 2차 계획기간 2만1600원에서 시작한 가격은 지난해 12월 23일 4만900원으로 89.4% 급등했다. 올해 초에는 시장조성자 물량이 간헐적으로 공급되며 배출권 가격 변동 폭이 확대돼 거래 혼란을 야기했다. '유동성 부족' 탓이다. 배출권 잉여 기업들은 가격이 얼마나 더 뛸지 몰라 배출권을 팔지 않고 움켜쥐고 있고 보조금을 지원받는 발전소의 투기로 가격이 오르는 왜곡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그린 뉴딜' 보고의 총괄을 맡게된 환경부가 정책 재원을 걷기 위해 탄소배출권 대상 기업들에게 더욱 압박을 가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올해 하반기 철강·정유 등 주력 제조업은 코로나19 여파로 상황이 더 악화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내년에는 제3자 시장참여, 파생상품 도입, 유상할당 비중 확대라는 변수가 있어 산업계를 둘러싼 경영환경은 녹록치 않을 전망이다.
김태선 NAMU EnR 대표는 "3차 계획 기간에는 시장이 더욱 견고해져야 한다"며 "'실물인수도(만기시 결제를 실물 자산으로 직접 결제)'를 도입해 현물과 선물의 균형을 맞추고 시장 참여자들을 늘려 일부 업체들에 의해 시장이 좌지우지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종민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내년 배출권 유상을 확대하면 부담은 지금과 비교가 안 될 것"이라며 "배출권 거래제의 존폐까지도 흔들 수 있다. 제2차 계획 수준의 유상할당 비중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미디어펜=권가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