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북한이 16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면서 사실상 4.27 판문점선언과 9.19 군사합의를 파기했다. 남북관계 파탄의 시계가 빨라지면서 북한의 향후 군사도발 수순이 주목된다.
지난 4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첫 담화, 6일 통일전선부의 “연락사무소 철폐” 발표에 이어 8일 처음으로 남북연락사무소 전화가 불통되더니 9일부터 북한은 남북 간 모든 통신선을 차단했다.
12일 리선권 외무상이 처음으로 담화를 내고 ”한반도 정세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며 미국 대선을 겨냥해서도 ”다시는 치적 선전감을 주지 않겠다“고 했다.
13일 장금철 통전부장이 담화를 내고 “이제부터 남한은 괴로울 것”이라고 했고, 같은 날 권정근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은 “우리는 계속해서 무섭게 변할 것”이라고 했으며, 이날 밤 김여정 제1부부장이 다시 담화를 내고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를 예고했다. 동시에 “총참모부에 다음 행사권을 넘긴다”고 밝혔다.
16일 북한 총참모부가 공개 보도를 내고 “비무장지대에 군대를 다시 진출시켜 요새화하겠다”고 발표하더니 이날 오후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조선중앙통신은 “14시 50분 북남 공동연락사무소가 비참하게 파괴됐다”고 밝혔다.
17일 북한은 총참모부 대변인을 통해 “금강산과 개성공단, 비무장지대 GP에 다시 군부대를 배치하겠다”면서 “서해상에서 군사훈련을 재개하겠다. 대남 삐라 살포를 군사적으로 보장하겠다”고 했다.
이날 김여정 제1부부장은 또 담화를 내고 문재인 대통령의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연설을 비난했고, 조선중앙통신은 남한이 15일 대북특사를 요청한 사실을 폭로했다. 장금철 통전부장은 청와대 NSC 유감 표명을 비난했고, 조중통은 통일부와 외교부의 입장 발표에 “입건사를 잘못하면 서울불바다설이 다시 떠오를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지난 4일부터 17일까지 14일간 북한의 막말과 압박에 이어 남북연락사무소가 개소 21개월 만에 사라지는 지경에 이르자 청와대도 17일 이례적으로 강경 메시지를 냈다.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이 이날 오전 ‘김여정 담화’에 대해 “무례하고 몰상식”하다며 “사리분별 못하는 언행을 더 이상 감내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윤 수석은 또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이 직면한 난제들을 소통과 협력으로 풀어나가자는 큰 방향을 제시했다”며 “김 제1부부장의 담화는 그간 남북 정상간 쌓아온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김여정의 막말 담화’에 대해 청와대가 맹비난으로 응수하면서 남과 북이 ‘강대강’으로 대치할 수밖에 없어졌다. 더구나 북한이 이날 청와대가 대북특사를 파견하려고 했던 일을 폭로하면서 청와대는 “전례없는 비상식적 행위”라고 비난했다.
아직까지 김정은 위원장이 전면에 안 나섰다는 점에서 청와대도 ‘정상간 신뢰’를 강조해 일말의 상황 반전도 기대할 수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김 제1부부장은 13일 담화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부여받은 권한이라며 군사도발을 예고했다.
북한이 16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있다./노동신문
이에 따라 처음 경색 국면에서 거론됐던 대북특사나 깜짝 남북정상회담 등은 상상도 할 수 없게 됐다. 남북은 이제 끝을 알 수 없는 갈등 국면으로 들어섰으며, 북한이 예고한 도발에 온 촉각을 세워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날 북한 총참모부는 “군사행동 계획을 세부화해 당 중앙군사위원회의 비준에 제기하겠다”며 ▲금강산관광지구와 개성공업지구에 연대급 부대 및 화력구분대 전개 ▲비무장지대 GP 다시 진출 ▲서남해상 전선을 비롯한 전 전선에 포병부대 등 전투 근무 증강 및 1호전투근무 체계로 격상, 접경지역 부근 각종 군사훈련 재개 ▲대남 삐라 살포 군사적 보장을 언급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런 군사행동을 실행하면서 여러 도발 가능성을 전망했다.
북한이 군사합의에서 정한 지상 군사분계선(MDL) 5㎞ 내에서 포병사격훈련과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을 전면 중지를 깰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이 구간에서 정전협정 이후 총 96회의 상호 포격전이 있었던 사실이 있는 만큼 국지적 충돌을 예상할 수 있다.
또 군사합의에 따라 동·서해 NLL 일대의 일정 구역을 완충수역(동해 80㎞·서해 135㎞)을 설정해 서해 남측 덕적도 이북으로부터 북측 초도 이남까지의 수역, 동해 남측 속초 이북으로부터 북측 통천 이남까지 포사격 및 해상 기동훈련을 중지했다.
하지만 합의 이전 북한이 NLL 인근에서 해상사격을 하면 남한이 동종 무기로 동일한 수량만큼 대응사격을 가했다. 이제 북한이 NLL 해상 사격훈련 재개부터 시작될 공산도 커졌다.
이 밖에 군사합의에 따라 MDL 상공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한 것이 무너지고, 금지됐던 공중 완충구역의 전투기의 공대지 유도무기 사격 등 전술훈련도 재개될 수 있다. DMZ 내 상호 1㎞ 이내 최근접 설치된 10개의 GP 철거와 모든 GP 철수 계획도 무산될 수 있다. 북한이 GP에 군대를 주둔시킬 경우 상호간 총격전이 벌어지는 대치 상황도 재현될 수 있다.
또 북한이 인민들의 대남 삐라 살포를 예고하고 북한군이 전적으로 보장하겠다고 했으니 가령 북한어선 수척이 삐라를 뿌리기 위해 NLL에 접근하고 넘어갈 경우 뒤에 북한 경비정이 따라오는 상황이 나온다면 우리가 군사적으로 대응하기 힘든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
무엇보다 북한이 미국 대선까지 겨냥해 신형 미사일 시험발사 등으로 전략적인 도발에 나설 경우 한반도 정세는 크게 요동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미 포브스지는 16일(현지시간) 북한 신포항에서 50피트(15.24m) 길이의 소형 잠수함이 포착됐다고 보도해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수중 발사 도발 가능성이 떠올랐다. 지난 2일 월터 샤프 전 한미연합사령관도 “탄도미사일을 탑재한 북한의 잠수함이 곧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또 1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탑승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항공 여객기가 17일 오전 북한 동해안 쪽으로 향하는 모습이 포착됐다는 보도도 나오면서 미국의 다음 대형 도발은 SLBM 시험발사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정대진 아주대 통일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모든 상황과 질서를 2018년 4.27 판문점선언 이전으로 돌리고 있는 중”이라며 “군사합의를 위반하는 각종 도발이 지속될 것이며, 냉각기로 회귀할 것으로 보인다”고 관측했다. 이어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북한 인민들을 동원한 대남삐라 살포”라고 전망했다.
정 교수는 “삐라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군인인지, 민간인인지, 무장상태인지, 비무장상태인지 식별하기 어려운 일군의 무리가 뒤섞여 활동하면 우리 군의 경계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며 “우발적인 상황도 연출될 수있어 긴장은 더욱 고조될 것이다. 이는 2017년 이전에는 없던 상황이라서 우리를 괴롭히는 '피곤한 일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