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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준의 골프탐험(30)-굿샷이든 미스샷이든 일희일비 하지말라

2014-11-05 14:35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국내 최고의 골프칼럼니스트인 방민준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의 맛깔스럽고 동양적 선(禪)철학이 담긴 칼럼을 독자들에게 배달합니다. 칼럼에 개재된 수묵화나 수채화는 필자가 직접 그린 것들로 칼럼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주1회 선보이는 <방민준의 골프탐험>을 통해 골프의 진수와 바람직한 마음가짐, 선의 경지를 터득하기 바랍니다. [편집자주]

방민준의 골프탐험(30)- 호흡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호흡은 곧 생명이다. 올바른 호흡은 정신과 육체 모두를 건강하게 한다. 인도 중국 우리나라 등 동양에서 정신수양과 건강 증진의 방법으로 호흡법을 중시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요가도 호흡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힌두교의 경전에는 ‘호흡과정은 마음에 이미지를 만들어 내며 호흡이 진정되면 마음도 또한 진정된다.’고 쓰여 있다. 호흡의 상태에 따라 마음의 모양도 달라진다는 뜻이다.
거친 호흡은 마음의 바다에 격량을 일으키고 행동을 거칠게 몰아간다. 반면 안정된 호흡은 마음을 호수처럼 잔잔하게 해 관조의 상태로 만들어주고 이런 상태에서 나온 행동은 진지하고 자연스럽다.

골프에서도 호흡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골프를 좌우한다.
뒤늦게 헐레벌떡 1번 티 박스에 나타난 사람의 티샷이 십중팔구 실패하는 것은 바로 거친 호흡과 이에 따른 출렁이는 마음 때문이다.
 

호흡이 안정되고 마음이 평정을 되찾기 전에는 드라이브 샷이나 아이언 샷, 퍼팅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지 않는다.
티오프 한 시간 전에 골프장에 도착하라는 골프 선배들의 충고는 호흡의 순일과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 골퍼에게는 신체적인 호흡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마음의 호흡이다. 마음의 호흡이 거칠어지면 신체적인 호흡도 거칠어질 뿐만 아니라 정신집중이 되지 않아 골프에 몰입하는 일이 불가능해진다. /삽화=방민준
 
골프 고수들은 이 때문에 여유를 갖고 집을 나서고 운전할 때도 격정이 일어나지 않도록 적정속도를 유지하며 다툼이 생길만하면 일부러 피해가면서까지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음악도 잔잔한 클래식이나 무드음악을 즐긴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여유 있게 골프장에 도착했다고 해서 호흡이 고르고 마음이 평정을 유지하는 것만은 아니다. 필드에 나가서도 호흡이 거칠어지지 않도록, 즉 마음의 바다에 격량이 일지 않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신체적인 호흡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마음의 호흡이다. 마음의 호흡이 거칠어지면 신체적인 호흡도 거칠어질 뿐만 아니라 정신집중이 되지 않아 골프에 몰입하는 일이 불가능해진다.
 

골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에 일희일비하다 보면 결코 마음의 호흡이 안정될 수 없다. 골프를 하다 보면 피할 수 없이 따라 다니는 희비애락의 감정을 적절히 소화해내야 함은 물론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보다 나은 스코어와 승리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욕심을 억누를 수 있을 때 마음의 호흡은 순진무구한 어린이의 숨소리처럼 잔잔해질 수 있다.

물이 가득 담긴 유리잔을 들고 골프장의 18홀을 걸어서 돈다고 상상해보자. 물을 흘리지 않고 온전하게 18홀을 도는 일이란 거의 불가능하다. 움직일 때마다 물이 출렁거리고 조금이라도 한눈을 팔거나 발을 잘못 디디면 아예 물을 엎질러버리고 유리잔마저 깨뜨리기 쉽다.
 

실제로 골프란 물이 가득 담긴 유리잔을 들고 초원을 걷는 것이나 다름없다. 유리잔 대신 내 몸이 물이 가득 담긴 큰 잔이 되는 것이 다를 뿐. 내 몸이 물이 가득 담긴 유리그릇이라고 생각하면 결코 18홀을 허투루 돌 수는 없을 것이다.
18홀을 도는 동안 언제 어디서나 마음의 바다에 돌이 떨어질 수 있다. 고른 호흡도 호수의 살얼음판이 깨지듯 순식간에 거칠어질 수 있다.
 

‘오늘의 샷’이라고 불릴 만한 기막힌 드라이브 샷을 날렸을 때, 어프로치 샷이 멋지게 날아 핀 가까이 붙었을 때, 어려운 라이를 타고 흐른 볼이 홀 안으로 사라졌을 때처럼 나의 좋은 플레이도 마음에 파문을 일으켜 호흡을 거칠게 할 수 있다. 이와 상반된 숱한 미스 샷 또한 분노와 좌절을 안기며 마음에 격량을 일으키고 호흡을 거칠게 몰아간다.
 

남의 플레이에도 내 마음은 파문을 일으킨다. 동반자의 멋진 샷은 그에 지지 않는 샷을 재현하려는 욕심이 생기면서 출렁이고 동반자의 미스 샷 역시 ‘쾌재’라는 쾌감을 안기며 내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골프 선배로부터 자주 듣게 되는 “마음을 비워라”는 충고는 바로 이런 마음의 파문을 막아 거친 호흡 속으로 빠지지 말라는 뜻이다.
 

허공과 같은 빈 마음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최상의 평정을 얻을 수 있지만 적어도 마음이 출렁일 위기를 맞으면 깊은 심호흡으로 호흡까지 거칠어지는 것은 막아야 한다.
 

깊은 잠에 빠진 어린아이의 숨결 같은 고른 호흡을 잃지 않으려면 자신의 굿 샷이나 미스 샷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고 남의 샷 하나하나에도 일희일비하지 않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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