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나광호 기자]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맥스터) 7기 증설이 미뤄지면서 월성 원자력발전소 2~4호기도 내후년이면 문을 닫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원전은 원자로에서 배출되는 방사성 폐기물을 보관할 장소가 없으면 가동을 멈춰야 하기 때문이다.
올 1분기 기준 건식저장시설에는 32만2200다발의 사용후핵연료가 저장됐다. 이는 저장용량의 97.57%에 달하는 것으로, 이같은 추세로는 2022년 3월쯤에는 포화상태에 이르게 된다. 지난해 9월10일부터 진행됐던 월성 3호기 계획예방정비가 4월말 완료되면서 사용후핵연료 발생량이 매월 400다발 가량 늘어난 것도 언급되고 있다.
이에 따른 발전소 가동 중단을 막기 위해 한수원은 기존 맥스터 부지 인근에 16만8000다발을 보관 가능한 설비를 조성하기 위해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승인도 받았으나, '첫 삽'을 뜨지 못하고 있다. 공사기간 등을 고려하면 늦어도 다음달에는 착공에 들어가야 하지만, 공론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 측은 "의견수렴 과정에서 이해관계자들의 균형된 참여기회를 보장하고 다양한 의견수렴을 위해 참여와 협조를 지속적으로 설득·독려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탈핵단체의 주도로 주민설명회가 3차례나 무산됐으며, 최근 정정화 전 위원장도 사퇴의사를 표명하는 자리에서 "공론화 작업이 실패했다"고 밝히는 등 별다른 성과는 없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산업부 역시 회의 첫 날부터 차질이 발생했던 전 정부를 언급하는 등 일명 '과거팔이'를 시도하면서도 "탈핵시민사회단체에 토론회 참여를 지속 요청했으나, 그간 참여 자체를 거부했다"고 토로하는 등 위원회의 의견수렴 실패를 고백하기도 했다.
월성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 맥스터 모습./사진=한국수력원자력 월성원전운영본부
문제는 산업부가 이같은 국면에서도 "위원회 의견수렴 과정이 차질없이 진행되도록 지원하고, 여기에 시민사회계의 '대승적인' 참여와 협조를 바란다"면서 공론화를 통한 결론 도출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숙의민주주의를 구실삼아 사실상 손을 놓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맥스터 증설에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의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아 원전 가동 중단을 막기 위해서는 '강행돌파'를 검토해야하는 시점이 됐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겠다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탈핵단체가 재검토위원회 해산을 요구하고 주낙영 경주시장이 사용후핵연료 정책 재검토와 맥스터 증설을 분리 추진해야 한다고 건의하는 등 공론화에 대한 필요성 자체가 부정되는 것도 고려 대상이다. 당사자가 '소개팅'에 나오지 않겠다는데 주선자만 자리를 지키는 것과 다를게 없는 셈이다.
이러한 사태를 예견이라도 한 듯 우리 조상들은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을 물려줬다. 결정을 내려야 할때는 내려야 하지만, 후손들이 이를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건식저장시설 포화가 당초 2021년 11월경에서 4개월 가량 늦춰진 덕분에 벌었던 시간마저 놓치면 산업부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차질없이 수행하기 위해 일부러 공론화라는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쫓는 방법을 선택한 것 아니냐는 의심도 피하기 어렵다는 것도 숙고해야 할 것이다.
[미디어펜=나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