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노기신사터 [사진=미디어펜]
이 남산은 일제강점기 때는 침략을 상징하는 곳이기도 했다.
일제는 당시 경성(京城)의 얼굴 격인 남산에 조선인을 ‘위압’하는 조선신궁(朝鮮神宮)을 건립하고, 침략의 최고 원흉인 메이지 천황과 일본의 건국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를 모셨다. 오기신사와 신궁이 생기기 전에는 당시 식민지 이 땅 최대 신사였던 경성신사도 이 곳에 있었다.
식민통치의 본산인 통감부와 통감관저를 세우고, 일본인 집단거주지를 조성한 곳도 이 곳 남산 밑, 명동과 충무로일대였고, 용산에는 일본 주둔군사령부가 총칼로 식민지 백성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다.
안중근 기념관 입구 [사진=미디어펜]
남산 기슭에는 민족의 영웅 안중근(安重根)의사 동상과 기념관, 그의 글씨들을 새긴 비석들이 있고, 그 아래 백범광장에는 백범 김구 선생과 성재 이시영 선생의 동상이 있다.
8월 29일은 1910년 일제에 의해 강제합방조약이 공포된 국치일(國恥日)이다.
그 후 109년이 지난 2019년 국치일, 서울시는 우리 민족의 아픔이 서려 있는 남산 예장동 자락에 약 1.7km의 ‘국치길’ 조성을 완료하고, 독립유공자 후손들과 함께 역사의 현장들을 함께 걷는 역사탐방 행사를 개최했다.
치욕의 역사도 되새김질해야 하는 역사라는 점에서, 암흑의 시대를 되돌아보는 길을 걷는, 이른바 '다크투어리즘'이다.
국치길은 한일병탄조약이 체결된 한국통감관저 터에서 시작, 김익상(金益相) 의사가 일제의 심장부 건물에 폭탄을 던진 한국통감부 터(왜성대 조선총독부 터)와 노기신사 터,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가 세운 ‘갑오역기념비’, 경성신사 터를 거쳐 조선신궁 터로 이어진다.
2019년 8월 14일 ‘위안부 기림의 날’에 설치된 서울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도 만날 수 있다.
국치길 보도블록 곳곳에는 길을 형상화하고 역사를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한글 자음 ‘ㄱ’자 모양의 로고를 설치했고, 각 역사의 현장에는 ‘ㄱ’자 모양의 스탠드형 안내 사인도 설치됐다.
장마가 끝나가는 여름날 남산길을 걸으며, 시대의 아픔과 이를 극복하고 마침내 해방을 일궈 낸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지하철 4호선 명동역 1번 출구로 나와, 남산길을 따라 올라간다.
대한적십자사 본사 앞에서 대로를 건너 작은 도로를 직진하면, 서울시 소방재난본부가 보인다. 그 앞 퇴계로를 건너면 숲길이 시작된다. 바로 서울유스호스텔 입구다.
거기에 한국통감관저 터가 있다.
이곳에 1906년 통감관저가 설치됐으며, 1910~1939년까지 조선총독관저로 쓰였다. 특히 1910년 8월 22일 이 곳에서 3대 통감 데라우치 마사다케와 대한제국 총리대신 이완용이 강제합방조약을 체결한, 경술국치(庚戌國恥)의 현장이다.
1939년 이후엔 시정기념관으로 쓰였으며, 지금은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가 조성돼 있다.
일부러 ‘거꾸로 세워 놓은 동상’ 뒤로 이 곳에 통감관저가 있었음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리는 조형물들과 국치길 스탠드형 안내 사인이 서 있다. 이 주변 숲 이름이 ‘남산인권숲’인 것도 의미가 있어 보인다.
다시 대한적십자사 앞으로 돌아와, 길 건너편으로 남산을 오른다. 바로 애니메이션센터가 있던 곳이 있는데, 지금은 공사장이다. 그 안에 한국통감부 터가 있다.
통감부는 1910년 한일합방 이후 폐지되고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가 설치됐다. 총독부는 1926년 경복궁 앞에 신청사가 신축되면서 그 곳으로 옮겨가고, 기존 건물은 은사기념과학관으로 쓰이다가, 1950년 한국전쟁 때 불타버렸다.
1921년 9월 12일, 의열단(義烈團) 단원 김익상 의사는 당시 총독부 건물에 폭탄을 던졌다.
이 공사장 가림막 옆에 국치길 안내 사인이 외롭게 서 있다.
조금 더 가면 리라유치원과 리라초등학교가 나온다. 초등학교 담을 따라 돌아가면, 사회복지법인 ‘남산원’이 보이는데, 그 안에 노기신사 터가 숨어있다. 노기(乃木)신사는 일본 메이지시대 러일전쟁의 영웅이자 군신(軍神)으로 ‘조작’된 노기 마레스케를 모신 곳이다.
현재 신사에 석물을 봉납했다는 일본인들의 이름이 새겨진 석조, 뒤집힌 채 놓여있는 석등의 일부 같은 석물, 그리고 안내판이 남아있다.
리라초교 맞은편에는 숭의여자대학교가 있고, 그 교정 안에 경성신사(京城神社) 터가 있다.
숭의여대 정문을 들어서 올라가는 언덕길 보도블록에 국치길 금속 표지판이 박혀있다. 교내 예배당 입구에는 1927년 7월 이 여대 설립자인 미국인 선교사 사무엘 모펫(한국명 마포삼열) 박사의 흉상이 있다.
그 뒤 건물 한 구석에 경성신사 터임을 알려주는 안내판 2개와 기둥 주춧돌 1기가 남아있다.
경성신사는 1898년 10월 한양의 일본 거류민단이 일본 이세신궁의 신체 일부를 가져와, 남산대신궁(南山大神宮)으로 창건, 1916년 5월 경성신사로 개칭했다. 이후 조선신궁이 완공되기까지 10여 년간, 식민지정권의 국가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인근에는 청일전쟁의 승리를 기념해 일본인들이 1899년 건립한 갑오역기념비가 있는데, 이 기념비에서 일본천황의 생일인 천장절 행사를 자주 거행했었다.
다시 남산 오르는 소파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다가, 남산터널 바로 위쯤에 한양공원(漢陽公園) 비석이 있는데, 한양공원 조성을 기념하는 이 비석의 글씨는 고종황제가 직접 쓴 것이라고 한다. 한양공원은 1910년 개장됐다가, 조선신궁이 세워지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소파로를 조금 더 따라가면,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옛 어린이회관 건물) 옆으로 넓은 돌계단이 나타난다.
이 계단은 2005년 인기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엔딩 촬영장소로, 일명 ‘삼순이계단’이라 불린다. 두 남녀주인공이 달콤한 키스를 하는 사진이 안내판에 붙어 있고, 남녀 커플들은 드라마틱한 로맨스를 꿈꾸며 계단 오르기 가위바위보 게임에 열중해 있다.
그러나 사실 이 계단은 일제 때 조선신궁으로 오르는, 시련의 역사가 서린 계단의 일부다.
구 남산식물원 자리에 있던 조선신궁(朝鮮神宮)은 일제가 식민지 이 땅에 세운 가장 높은 사격을 가진 신사로, 1918년 조성해 1925년 완공됐다. 조선총독부의 국가의례를 집전하고, 수많은 조선인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한, 피눈물의 현장이다.
계단 위에는 일제가 훼손한 한양도성을 복원하는 공사현장 가림막이 있고, 그 앞에 조선신궁 터임을 알리는 국치길 안내 사인이 보인다.
그 바로 옆에 3.1운동 100주년,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세워진 서울 위안부 기림비가 서있다.
공사현장 바로 옆에는 대한국인(大韓國人) 안중근의 망토를 걸친 동상과 안중근기념관이 당당히 조선신궁 터를 압도한다. 때마침 2019년 10월 26일, 바로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건 110주년이다. 기념관 입구에는 '대한독립'이라 쓰인 대형 태극기 앞에 안 의사가 의연히 앉아있다.
계단 아래 백범광장에서 김구 선생과 이시영 선생 동상에 인사를 드린 후, 남산공원길 산책로를 따라 동국대학교까지 걸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의 지도로 3.1운동에 앞장섰던 중앙학림(中央學林)을 계승한 것이 바로 오늘날의 동국대(東國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