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의결권 행사확대를 통해서 기업의 배당수준을 높이겠다는 정부의 정책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1일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배당정책 관련 연기금의 역할과 과제> 정책세미나를 개최하고 국민연금 의결권을 통한 배당확대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패널로 참석한 발표자 및 토론자들로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는 가운데 토론자로 참석한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시적 경기진작 효과를 위해 국민연금 의결권을 동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
1. 논의의 배경
지난 7월 최경환 부총리를 중심으로 한 새 경제팀이 출범하면서 내수 활성화, 민생 안정, 경제 혁신을 기치로 한 확장적 경제정책을 제시하였다. 이 중에서 내수 활성화를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소비여건 개선을 제시하였는데 그 중요한 방법으로서 「가계소득 증대세제」 3대 패키지를 도입하였다.
「가계소득 증대세제」 3대 패키지는 다시 ‘근로소득 증대세제’, ‘배당소득 증대세제’, ‘기업소득 환류세제’ 등으로 구분되는데 본 세미나의 주제는 이 중 기업배당을 촉진하는 ‘배당소득 증대세제’와 함께 추진되는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를 통한 기업배당의 확대이다.
본 토론자는 배당정책 관련 연기금의 역할에 대한 두 가지 측면의 논의를 전개한다. 첫째는 배당수익률과 배당정책에 대한 논의로서 새 경제팀이 목표로 하는 배당수익률 인상이 적절한 정책적 목표인지를 검토한다. 둘째는 연기금을 통하여 이를 수행하는 새 경제팀의 정책수단이 과연 적절한 지에 대하여 논의한다.
▲ 한국경제연구원이 21일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주최한 <배당정책 관련 연기금의 역할과 과제> 정책세미나 전경. |
2. 목적이 적절한가?
우리나라 상장회사의 배당수익률이 낮은가? 낮다면 왜 낮은 것이고 그 이유나 배경은 무엇인가? 배당수익률을 낮다고 평가한 후 이를 인위적으로 올리도록 정책을 펴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가? 이에 대한 내용은 지난 해 자본시장연구원의 보고서에서 잘 정리하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에서 출간한 「국내 상장기업 배당정책: 평가와 시사점」 보고서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200년대에 비하여 최근의 배당지급 여건이 좋아졌다고 보기 어렵다.
둘째, 최근 상장기업들은 이익을 배당하는 대신 투자활동에 투입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셋째, 상장기업들은 총자산과 매출액의 변동성이 금융위기와 함께 급증하여 최근 금융위기와 함께 경영환경 불확실성 증가에 직면해 있다. 넷째, 상장기업들은 부채비율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으며, 주식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보다는 이익을 유보하여 활용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다섯째, 우리나라 상장기업들은 배당을 급격히 변화시키거나 감소시키지 않으려는 뚜렷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여섯째, 상장기업 주주구성은 배당선호도가 높은 주주의 영향력이 크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저금리·고령화·기관화(institutionalization)의 추세를 고려할 때 향후 배당에 대한 요구는 점차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일곱째, 우리나라는 배당소득에 대해서는 과세하는 반면 상장주식에 대한 자분이득에 대해서는 면세가 적용되므로 세율측면에서 배당보다는 자본이득을 선호하는 것이 타당하다. 여덟째, 배당수익률이 높은 유틸리티, 통신서비스, 소재산업의 시가총액 비중이 크게 감소(200년 42% → 2012년 16%)한 반면, 배당수익률이 낮은 기술, 경기소비재, 필수소비재 산업의 비중은 크게 증가(200년 30% → 2012년 52%)하였다. 아홉째, 수익성·투자활동·성장성·경영위험 등을 고려하여 배당수익률을 비교해보면 한국시장의 배당수익률이 낮다고 판단할만한 근거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
자본시장연구원의 2013년 보고서는 결론적으로 우리나라 상장기업의 배당수익률이 낮게 보이는 것은 기업의 적절한 위험 및 재무관리의 결과이며 이를 전반적인 다른 지수와 함께 고려할 때 국제비교에 있어서도 배당수익률이 낮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전문적인 분석 외에 본 토론자가 개인적으로 판단하는 점은 우리나라 상장기업이 IMF 경제위기와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위험관리와 재무관리를 매우 보수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추세는 어떻게 보면 시장에 대한 기업들의 당연하고 적절한 반응이며 그 일부가 배당수익률에도 반영되어 있다고 보여진다.
그렇다면 정부가 배당수익률이 낮다고 판단하여 이를 높이려는 정책을 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최근 ‘단통법’ 사태에서도 드러났듯이 정부가 인위적인 목표를 위해 시장에 설익은 정책을 통해 개입할 때 자칫 매우 위험하고 잘못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 한국경제연구원이 21일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주최한 <배당정책 관련 연기금의 역할과 과제> 정책세미나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는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
3. 정책수단이 적절한가?
배당수익률을 높이려는 정부의 정책목표가 잘못되었다는 지적을 앞에서 했지만 설사 그 정책목표가 옳다고 하더라도 연기금을 동원하여 이를 높이려는 정부의 정책수단이 옳은 지는 별개의 문제다. 정부는 자본시장법을 개정하여 연기금의 배당관련 주주권 행사 제약요인을 해소하려고 하고 있다. 즉, 연기금이 기업의 배당 결정에 사실상의 영향력을 미치더라도 경영참여목적이 아닌 것으로 간주하도록 법을 개정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연기금을 동원하여 배당수익률을 올리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으며 잘못된 정책수단이라고 평가된다. 배당이 낮다고 하여서 주주의 이해를 해친다고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배당수익률을 올린다는 것은 단지 주주의 현금확보를 증가시킨다는 것을 의미하며 전체적인 수익률의 변동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국민연금은 장기적으로 연금을 위한 재무적 수익의 흐름을 걱정해야지 현금의 확보를 올리는 데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이는 국민연금을 관리하는 올바른 지침이 아니다.
새 경제팀이 배당수익률을 올리려 하는 것은 전체적인 주주의 소득흐름을 올리려 하기보다는 당장 눈 앞의 현금수익을 올려서 오늘의 소비를 증대시켜 경기를 진작시키려는 일시적 경기진작 효과를 노린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이러한 일시적 경기진작 효과를 위해서 국민연금 의결권을 동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 건강보험 국민연금보험 고용보험 등 각종 사회보험 비용이 급증하고 있다. 고령화 추세가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 주된 요인이다. 여기에 연금의 비효율적인 운영도 문제다. 이러는 가운데 노인들에게 최대 20만원을 지급하는 기초연금제도가 지난 7월부터 시행됐다. 한 노인이 창구에서 기초연금 수령방안에 대해 상담하고 있다. |
국민연금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노무현 정부 때 시작되었다. 이에 대해서 당시 야당이었던 새누리당(구 한나라당)은 국민연금에 대해 정부가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사실은 이러한 문제점은 지금도 남아있다.
국민연금은 외국의 다른 연기금과는 달리 사실상 정부가 강제로 들도록 강제하는 강제연금이다. 따라서 국민이 자발적으로 선택하지 않은 연기금을 통해 정부가 여러 가지 정책적 목적을 관철시키기 위해 의결권을 행사하려는 것은 이른바 이 정부가 과거에는 비판하였던 ‘연금 사회주의’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