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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국민의힘, 반사이익만 기대지 말고 능동적 정치해야

2020-09-10 16:02 | 이석원 부장 | che112582@gmail.com

이석원 정치사회부장

[미디어펜=이석원 정치사회부장]민주주의가 정착된 세계의 주요한 나라마다 선거 이후에 보이는 공통적인 현상이 있다. 선거에서 승리한 사람, 또는 정당의 지지율 하락이다. 대체로 승자는 인정하든 하지 않든 일정 정도의 자만과 유권자 무시가 드러난다. 선거의 생리가 그렇듯, 선거 기간 중 유권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한 쪽이 승리하다 보니 선거 후 상대적으로 유권자에 대한 애프터 서비스가 소홀한 탓이다.

미국의 저명한 선거 전문가인 하워드 러셀 박사는 2000년대 중반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승자독식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승자는 안이하고, 낙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기 때문에 선거 승리 후 지지율 하락은 민주주의의 또 다른 재미다”고 말한 바 있다.

패자가 그나마 패배의 악몽에서 벗어나면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이 상대방을 끌어내리는 일이다. 이는 정치공학적으로 패배 후 자기 수습에 있어서 대단히 효과적인 정치 행위다. 러셀 박사의 말처럼 승자가 안이하고 낙관적인 상태에 빠져 있다면 패자의 이러한 공격은 더욱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무엇보다도 승리감에 도취해 이성적, 논리적 판단이 무뎌진 승자 쪽이 손쉽게 얽혀 들어올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유권자들의 마음도 그렇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패자에 대한 동정심은 어디나 있다. 선거전에서야 자신이 지지하는 쪽에 모든 생각이 몰두해 있었지만, 제 아무리 선거 때 미웠던 다른 후보에 대해서도 측은지심이 생기는 건 동양만의 고유 감정은 아니다. 그렇기에 선거직후 유군자들은 승자에게는 더욱 엄격함을, 패자에게는 너그러움을 보이는 게 인지상정이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 전 수상은 1953년 노벨문학상 수상 후 영국 자유당 간부들과의 축하 파티 연설에서 “선거 전 유권자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지만, 선거 후 유권자는 냉혹한 참견자다. 선거전 유권자는 어지간한 잘못도 눈감고 이해해주지만, 선거 후 유권자는 단 한 치의 이해심도 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4월 15일 제21대 총선에서 180석에 육박하는, 사실상 180석을 넘기는 승리를 거둔 민주당이 지금 딱 러셀 박사가 지적한 지점에 서 있다. 국민들이 준 권력을 아끼지 않고 마음껏 휘두르고 있는데, 그 반발이 만만치 않다. 

부동산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이어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까지 이르는 성 추문,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의 군 휴가 문제가 불거지면서 또다시 ‘공정’의 문제에 직면하기도 했다. 윤영찬 의원은 포털을 옭아매는 듯한 문자를 주고받다가 ‘제2의 이정현’ 소리까지 듣고 있고, 이런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정당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정당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이유는 단지 위에 열거한 대내외적 ‘이벤트’ 때문만은 아니다. 이런 악재가 발생했음에도 당 지도부는 물론 소속 의원 하나하나가 위기감을 갖지 않고 잇따라 관련된 말실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눈에 그건 ‘오만’으로 비쳐지고, 의회 권력을 장악하고 나니 ‘권력’ 밖에는 눈에 보이는 게 없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지난 선거에서 참패해 당의 존립마저 위태로웠던 국민의힘은 분명 반사이익을 챙기고 있다. 최근 전광훈 씨와 사랑제일교회, 그리고 8.15 광화문 집회의 역풍, 코로나 재확산 등으로 인해 지지율 역전까지 갔다가 다시 빠지긴 했지만, 총선 참패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국민의힘에 주어진 것은 분명하다. 9월 10일자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다시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앞설 수 있는 조짐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국민의힘이 ‘불로소득’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총선 이후 국민의힘의 지지율 반등은 순전히 민주당이 잘못 탓이다. 만약 부동산 문제가 회복의 전기를 마련했거나, 오거돈과 고 박원순 전 시장들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거나, 추미애 장관 아들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다면 국민의힘으로서는 꿈꾸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 얘기는 다시 말해서 총선 이후 국민의힘이 한 일이 무엇인가 되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당명을 미래통합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바꾼 것 말고 말이다. 

총선 이후 국민의힘이 해온 일이란 민주당의 실정을 비판 비난하고, 추미애 장관을 물어뜯는 것 외에는 별로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게 민주당에서, 또 정부에서 국민의힘이 계속 물고 늘어지고 비판할 재료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지난 세월 적잖게 야당 노릇을 하다보니 이제는 진돗개 근성도 생겨서 한 번 물면 놓지 않고 매달릴 수 있는 근성도 생겼다. 

국민의힘은 정부와 여당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정치 행위와 함께 생산적이고 능동적인 정치도 해야 한다./사진 = 국민의힘


하지만 그것말고는 거의 하는 일이 없다. 뭔가 국민들의 등 긁어주는 시원한 법안 발의도 없고, 당의 신선한 변화도 보여주고 있지 않다. 코로나 재확산 상황에서도 나서서 뭔가 노력하고 있다는 인사도 보여주지 않고 있으며, 전공의들이 진료를 거부하고 목소리 높일 때도 중재자 역할은커녕 뒷짐만 지고 있는 자세였다.

게다가 코로나 재확산 상황에서, 누가 봐도 같은 편이었던 전광훈 씨와 보수단체의 광화문 집회에 대해서는 팔짱만 끼고 “우린 그들과 상관없어”를 외치기만 했다. 국민의힘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물론 국민의힘 지지자들 중에서도 그 말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지난해 전광훈 씨가 청와대 앞과 광화문에서 장기간 집회와 농성을 하고 있을 때 당시 당 대표, 원내대표, 중진 의원들이 발이 닳도록 뻔질나게 드나들었고, 집회에 당원들 동원했던 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그때 그들은 지금 다 낙선해서 없다”고 외치기만 하면 ‘상관관계 없음’으로 믿어줄 국민이 어디 있을까?

차리리 “예전에 그들과 함께 했었고, 또 그들이 우리 지지 기반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국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하는 집회를 강행하고, 방역 지침을 어기면서 집회에 참석하는 행위는 잘못이다. 그들을 설득해 막지 못한 것은 우리 잘못도 있다. 앞으로 그들과 함께 하지 않겠다”고 솔직히 사과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마음 따뜻하게 이해하고 용서했을 국민들인데 국민의힘은 그런 것도 하지 않았다.

물론 모든 이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광주 5.18 묘역에서 무릎 꿇고 눈물의 참회를 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당의 성격을 바꾸려는 뼈를 깍는 노력도 했다. 극우와 손을 끊고 합리적인 길을 가기 위해 내부의 분란도 감수하기도 했다. 그런데 김종인뿐이다. 김종인 말고는 누구도 그런 노력을 하는 모습이 눈에 띄지 않는다. 

야당으로서 여당의 실정에 비판을 가하느 것은 가장 기본적인 정치 행위다. 정부가 잘못된 길을 간다고 판단했을 때 정말 진돗개처럼 물어뜯어서라도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지 않으면 직무유기고, 태만이다. 그러니 국민의힘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은 일부 옳다. 멈춰서도 안된다. 그럼에도 여당이나 정부가 오만을 벗지 않는다면 국회의 바퀴를 멈춰 세워서라도 바른길을 제시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그것만 해서는 안된다. 국민들에게 희망을 보여줘야 한다. 입법으로 견제로, 그리고 대안 제시와 창조적인 행동으로.

민주당이 ‘허튼짓’을 해서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오르는 건 일시적이다. 또 그렇게 지지율이 오른다고 해서 다음 선거 결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일하라고 유권자가 국회의원을 시켰으면 일을 해야 한다. 비판하고 비난하는 일과 함께 만들어내는 일도 해야 한다. 요즘같이 정부와 여당이 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할 때 야당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면 정부와 여당도 제 역할을 찾는다. 국민의힘은 민주당과 정부의 실책에 기대지 말고 자신들의 정치를 해야 할 때다.

[미디어펜=이석원 정치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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