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 문재인 정부 숙원 과제인 고위공직자범죄비리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공수처법) 개정안의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12명이 발의한 공수처법 일부 개정안이 9월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법안심사1소위원회에 기습 상정되면서부터다.
민주당 계산대로라면 향후 1소위 통과 후 법사위 전체회의를 거쳐 국회 본회의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다. 슈퍼여당의 독주에 밀려 제1야당인 국민의힘 조차 이를 견제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아직 출범도 못한 공수처를 놓고 여야가 부딪히는 지점은 공수처장 추천 구조다. 현행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 7명 중 야당이 2명을 추천하도록 되어 있고 후보 추천 의결에 6명이 필요하다. 야당측 추천위원 2명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공수처장 임명이 불가능하다.
여당은 당초 패스트트랙을 통해 야당의 물리적 반발까지 물리치고 공수처법 제정을 강행하면서, 야당에게 거부권이 있으니 공수처장을 뽑는데 정권 편향적인 인사가 세워지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여당은 기존 입장을 뒤집고 공수처장 후보 추천에서 야당을 배제하려 하고 있다.
민주당의 이번 공수처법 개정안은 여야로 2명씩 나뉜 추천위원을 '국회에서 추천하는 4명'으로 수정하고, 의결 정족수를 재적위원 3분의 2 이상으로 낮춰 총 7인 중 5명의 찬성으로 의결하게 했다. 야당의 거부권을 완전히 무력화한 것이다.
또다른 문제는 개정안에 담겨 있는 공수처 검사의 임기와 자격요건, 인원에 대한 변경이다. 개정안은 공수처 검사 임기를 기존 3년에서 7년으로 늘리고, 3회 연임을 바꿔 연임 제한을 없앴다. 개정안은 공수처 검사의 변호사 경력 자격을 기존 10년에서 5년으로 낮추기도 했다.
특히 연임 제한을 없애고 임기를 7년으로 늘린 것은, 공수처 검사들의 신분을 다음 정권 임기가 끝날 때까지 보장해 대선 결과와 관계 없이 공수처를 좌지우지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법조계 지적이 크다.
이와 함께 '공수처의 수사협조(기록·증거 등 자료 제출과 수사활동 지원)에 관계 기관의 장은 응하여야 한다'는 의무 조항을 추가해 사실상 공수처가 대검찰청·경찰청 보다 우위에 서도록 했다.
이러한 개정안의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지명한 후 진보측 대법관들이 장악했다는 평가를 듣는 대법원 조차 우려할 정도다.
대법원은 9월 10일 국회 법사위에 제출한 개정안 관련 검토의견서에서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이례적으로 쓴소리를 가했다.
대법원은 검토의견서에서 공수처 추천위원회 구성 및 의결 요건의 완화에 대해 "우리 헌법 정신과 가치에 부합하는 수사기관의 본질적 권한과 책무, 고위공직자범죄 척결을 위한 수사기관 간 견제와 균형의 원칙 등이 실체적 절차적으로 손상되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수처 설립준비단이 6월 25일 '선진 수사기구로 출범하기 위한 공수처 설립방향'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대국민 공청회 모습. 전문가들이 열띤 토론을 나누고 있다. / 사진=KTV국민방송 유튜브
또한 대법원은 수사협조 의무 조항에 대해 "공수처가 대검찰청·경찰청 등 관계 기관의 상위기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수사처장의 수사협조 요청을 받은 관계 기관의 장으로 하여금 수사처장의 수사협조 요청에 응하도록 하는 것이 적정한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이밖에 대법원은 개정안이 고위공직자범죄에 대한 공무원의 고발 의무를 명시한 것 또한 "형사소송법이 이미 공무원의 고발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면서 기존 법체계와 어긋난다고 평가했다.
다만 대법원 관계자는 검토의견서와 관련해 "개정안에 대한 대법원의 기본적인 입장은 '입법정책적 결정사항'이라는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실제로 검토의견서에는 개정안에 대해 "입법부 소관"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현행 공수처법상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은 여야 각 추천 2명을 비롯해 법무부장관·법원행정처장·대한변호사협회장이 각 1명씩 추천해 7명으로 구성하게 되어 있다.
원래 공수처 출범 시한은 지난 7월 15일이었다. 향후 국민의힘이 극적으로 추천위원 2명을 내면서 사태가 일단락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