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윤광원 기자] 정부가 온라인 플랫폼과 입점 업체 간 거래의 투명성과 공정성 제고를 위한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온라인플랫폼 중개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그 동안 예상됐던 대로, 이 법안은 온라인 플랫폼에서 상품과 서비스 유통을 중개하는 사업자의 불공정행위 규제와 피해업체 구제가 핵심이라는 점에서, 플랫폼 사업자의 ‘갑질 방지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법안은 입점 업체가 구매할 의사가 없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하도록 플랫폼이 강요하거나 거래 과정에서 발생한 손해를 부당하게 전가하는 행위, 입점 업체에 불이익이 가도록 거래조건을 일방적으로 바꾸는 행위를 금지했다.
입점 업체가 다른 온라인 플랫폼에도 들어가는 것을 금지하는지 여부, 판매 과정에서 발생한 손해를 얼마나 분담하는지에 대한 기준, 온라인상에서 상품이나 서비스가 어떤 순서로 노출되는지 등도 밝히게 했다.
특히 불공정행위로 공정위가 시정명령을 내렸는데도 플랫폼이 이행하지 않을 경우, 법 위반 금액의 2배(최대 10억원)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물도록 했다.
법 적용의 대상 기업은 매출 100억원, 중개 거래 규모 1000억원 이상으로 정했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대형 포털 플랫폼은 물론 쿠팡이나 티몬 등 온라인 쇼핑몰, 배달의 민족 등 주요 배달 애플리케이션이 적용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구글 등 다국적 공룡 인터넷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기존에 공정거래법과 대규모유통업법, 전자상거래법이 있지만, 온라인상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중개하고 수수료를 챙기는, 과거에는 없던 새로운 형태의 플랫폼 기업을 실효성 있게 규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는 점에서, 관련법 제정의 필요성이 있다.
이들은 인터넷 플랫폼이라는 ‘장마당’을 제공하고 수수료를 받으면서도, 그 안에서 자신들만의 비즈니스를 운영해 여타 중소 업체들을 차별하고, 결과적으로 혼자만 살찌려 한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4차 산업혁명’의 진전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속에서 급속히 팽창하는 비대면 온라인 거래의 시장규율을 확립하기 위해서도, 공정거래의 틀 구축은 불가피하다.
일부 거대 플랫폼이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협력업체와의 상생이나 소비자 보호에 소홀하다는 지적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지난 29일에는 구글이 자사 앱 장터인 ‘구글플레이’에서 활동하는 모든 사업자는 구글플레이의 결제시스템을 거쳐야 하고, 30%에 달하는 고율 수수료를 내야 한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이는 글로벌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한 전형적인 갑질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구글은 그게 싫으면 구글플레이를 쓰지 않으면 된다며 ‘고압적’인 태도다.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 법안은 신산업의 혁신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업계의 우려를 감안, 대상 기업의 범위와 처벌 수위를 ‘절제’했다고 볼 수 있다.
가장 민감한 문제인 수수료 자체에는 손을 대지 않았고, 인터넷상의 노출 순위를 결정하는 ‘알고리즘’은 공개하지 않도록 허용함으로써, 기업의 ‘영업비밀’을 존중키로 했다.
상대적 약자인 소상공인의 피해를 빠르고 효과적으로 구제하기 위해, 과징금 등 제재 대신 ‘동의의결제’에 초점을 맞춤 것도 눈여겨 볼만하다.
동의의결제는 법을 어긴 사업자가 제시한 자진 시정방안을 공정위가 타당하다고 판단하면, 사건을 종결하는 제도다. 법적 제재가 확정되고 피해 구제가 이뤄지기까지 소송 등으로 수년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시장 상황을 반영한 적기조치라는 점에서 바람직해 보인다.
아무쪼록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 제정이 관련 업계의 상생발전과 소비자들의 효용을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러나 ‘혁신을 가로막는 새로운 규제와 장벽을 만드는 것’이란 지적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플랫폼 산업은 디지털 혁명을 선도하는 ‘미래 먹거리’로, 미국이 중국의 위쳇과 틱톡 규제에서 보듯, 글로벌 기술 패권 전쟁의 중심에 있다.
국내에서는 네이버나 카카오, 쿠팡, 티몬, 배달의 민족 등 토종 플랫폼 업체들이 독점적 지위를 강화하고 있으나 구글이나 페이스북, 아마존 등 글로벌 공룡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에 불과하다. 이들이 구글의 30% 인앱 결제 ‘일방통행’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내수 시장이 좁은 우리로서는 국제 경쟁력을 갖춘 플랫폼 기업이 필요하고, 이는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더욱 절실해졌다.
이를 위해서는 관련 산업 생태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투자가 지속해서 이뤄져, 스타트업과 유니콘 기업이 우후죽순처럼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플랫폼 비즈니스는 역사가 짧고 경쟁 구도가 쉽게 바뀔 수 있는 민감한 산업이다. 당연히 성급한 규제는 자칫 새로운 혁신과 산업의 싹을 자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규제 리스크에 침몰한 승차 공유 플랫폼 ‘타다’의 꼴이 재연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토종 플랫폼 기업이 역차별을 당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이 법은 구글 등 해외 플랫폼 사업자도 규제 대상에 포함했지만, 과연 법 집행을 국내 사업자와 동등하게 강제할 수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이 글로벌 공룡들은 영업비밀을 내세워 시스템적 갑질을 고집하고, 우리 정부당국의 방침에 불응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국회는 입법 과정에서 이런 점들을 명심하고, 이해 당사자들의 입장과 전문가들의 견해 수렴, 해외 사례 등을 꼼꼼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