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이탈리아 주재 북한대사관의 조성길 대사대리가 지난 2018년 11월 초 잠적한 이후 한국에 정착한 사실이 2년만에 공개됐다.
대사급 인사의 탈북은 1997년 장승길 주이집트 북한대사 이후 21년만인데다 김정은 정권 들어 첫 경우이다. 그런 만큼 제3국 망명이 아니라 한국행을 택한 것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남북관계에 미칠 파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청와대는 7일 이번 사안과 관련해 신중한 입장을 보이면서 민감한 외교안보 사안에 대해서는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NCND·Neither Confirm Nor Deny)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전날 저녁 언론보도 이후 국가안보실 차원에서 관련 지침을 관계 부처와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6일 페이스북에서 “조 전 대사는 작년 7월 한국에 입국해서 당국이 보호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정보당국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지만, 정보당국이 민감한 탈북자 입국 문제에 대해서는 함구해온 것이 사실인 만큼 조 전 대사대리의 입국은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조성길은 2015년 5월 이탈리아 현지에 부임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2017년 9월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감행하자 한 달 뒤 문정남 당시 대사를 추방했다. 이후 3등 서기관이던 조성길이 1등 서기관으로 승진되면서 대사대리 역할을 해왔다.
2018년 11월 이탈리아에서 잠적한 조성길 전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가 6일 한국에 정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2018년 3월 조 전 대사대리가 이탈리아 베네토주에서 열린 한 문화행사에 참석한 모습./연합뉴스
조성길은 3년 임기가 끝난 뒤 2018년 11월 말 본국으로 귀국될 시점에 아내와 함께 돌연 잠적했다. 처음 조 전 대사대리가 미국 등 서방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을 가능성이 거론됐고, 공관에 남아 있던 자녀는 북송됐다는 사실도 전해졌다. 이후 지난해 2월 이탈리아 외교부가 조 전 대사대리의 미성년 딸이 북한으로 송환된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평양외국어대를 졸업하고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 등 4개 국어에 능통한 조성길은 부친과 장인이 모두 대사급 외교관을 지낸 엘리트 계층 출신인 것으로 전해졌다. 조성길은 이탈리아에서 근무하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요트와 와인 등 사치품을 공급하는 담당자를 총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로마에 있는 식량농업기구(FAO), 세계식량계획(WFP) 본부를 통해 북한의 부족한 식량 조달도 담당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조성길의 망명이 처음 확인되면서 언론에 알려졌던 2019년 1월은 하노이에서 예정된 북미 2차 정상회담을 불과 한달 앞둔 시점이었다. 북미대화에 변수가 될 수 있는 만큼 당시 외교가에선 파장이 크게 일었지만 북한은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조성길의 한국 정착이 공개되면서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된다. 특히 최근 북측 해상에서 벌어진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원의 피격 사건 이후 남한정부가 공동조사를 요청했으나 북한이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오랜만에 대남 비난을 재개하고 남북 간 경색 국면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편, 조승길 대사 이외에 북한 외교관이 한국으로 망명한 경우는 1991년 고영환 콩고대사관 1등 서기관, 1996년 현성일 잠비아대사관 3등 서기관, 2016년 태영호 영국대사관 공사가 있다. 이와 함께 1997년 한국으로 온 황장엽 전 노동당 국제비서는 지금까지 북한 최고위급 망명 사례로 꼽힌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