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서소문동 소재 대한항공 빌딩 간판./사진=박규빈 기자
[미디어펜=박규빈 기자]코로나19로 창사 이래 최악의 경영난에 직면한 대한항공이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는 가운데 자사 소유 서울 종로구 송현동 호텔 부지가 서울시에 강제 수용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대한항공의 경영 상태는 예년에 비해 정상이 아니다. 코로나19 탓에 올해 1분기에는 566억 영업적자를 기록했고 2분기에는 분기 흑자로 전환했으나 여객 탑승률이 평시 대비 한 자릿수 퍼센트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이유로 대한항공은 왕산마리나·기내식·기내 면세사업부 등 유휴자산과 일부 사업분야를 매각하고 직원 순환 휴직과 같이 사활을 건 전사적 회생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 와중에 구조조정의 꽃으로 통하는 광화문 옆 금싸라기 송현동 부지 매각까지 결정했다.
15개 기업들이 부지 인수를 저울질 해 구조조정에 숨통이 트이는 듯 했으나 대한항공은 뜻밖의 '버드 스트라이크'를 겪게 됐다. 서울시가 뜬금없이 문화공원 조성안을 내놓은 탓이다. 때문에 인수 희망 기업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입찰을 포기했다. 힘 센 관가가 나서는데 상대적으로 약자인 민간 기업이 '감히' 괘씸죄를 무릅쓰고 부지 매입 의지를 굽히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송현동 소재 대한항공 소유 호텔 부지. /사진=네이버 지도캡처
서울시는 당초 시가 6000억~7000억원 수준으로 평가되는 해당 부지를 2000억원 정도에 매입하고자 했고 그마저도 2년 거치로 분할 납부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에 일괄 보상을 규정한 토지보상법도 어겨가며 사유지를 강탈하려 한다는 강한 비판이 일었다. 이후 땅값으로 4671억원을 책정했으나 정작 땅 주인인 대한항공은 이 값에도 못 팔겠다는 입장이다. 시중 가격에 한참 못 미쳐 구조조정 청사진이 어그러질 위기에 처해서다.
서울시에서는 광활한 시내 공간을 시민들에게 돌려준다는 거창한 명분을 들어 문화공원 조성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땅 주인인 대한항공과의 합의가 이뤄져야 가능한 일이다.
지난 6월 11일 서울시청 앞에서 시 당국의 종로구 송현동 호텔부지 '헐값 매입 계획'을 규탄하는 대한항공 노동조합원들./사진=연합뉴스
보다 못한 대한항공은 지난 6월 서울시 행정절차의 부당함을 알리고자 국민권익위원회에 고충민원을 제기했다. 지난 8월에는 관련 절차 강행을 막아달라며 보류 권고 요청서를 권익위에 제출할 정도로 다급함을 나타내기도 했다.
권익위에 부지 탄원 건이 계류중인 이유로 대한항공은 관련 절차 진행이 다소 늦춰질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그럼에도 서울시는 지난 7일 도시·건축공동위원회를 열어 송현동 부지 강제 수용 원안을 기습적으로 가결시켰다. 대한항공으로선 허를 찔린 셈이다.
이런 가운데 대한항공은 표면적으로는 서울시·관계기관과의 협의를 지속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당국의 겁박과 위력에 눌려 끙끙 앓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3월 공원 조성 방침을 발표했다. 이 당시는 대한항공이 비상 경영을 선포했을 때인 만큼 서울시 역시 대한항공의 경영난을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 서울시가 이때다 싶어 민간 기업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오히려 정치 놀음으로 더 힘들게 하는 건 명백히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대민 갑질이다.
당장 대한항공은 숨 넘어가기 직전인데 세 수입이 끊이지 않는 서울시는 과연 생존을 걱정해본 적이 있나. '관존민비'와 같은 구악에 찌든 서울시는 지금이라도 토지 수용 방침을 전면 철회해야 한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