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의 수장자리가 20년 만에 정의선 회장에게 넘어오며 새로운 시작을 맞이했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CASE(연결성·자율주행·공유·전동화)로 대변되는 자동차 산업의 격변기를 맞이하며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이에 그동안 '혁신의 리더'였던 정의선 회장 체제를 통해 진일보된 현대차그룹으로 성장을 도모해나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기업의 체질개선을 선언한 현대차그룹은 포스트 코로나시대 대응과 지배구조 개편 등의 과제를 짊어지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3편에 걸쳐 정의선 회장의 향후 행보에 대해 조명한다. <편집지주>
(상)현대차그룹 '지배구조' 풀고...체제 강화
(중)조직정비…정의선의 남자들 전면에
(하)'스마트 모빌리티 기업’ 새로운 항해
[미디어펜=김태우 기자]정의선 회장과 새로운 미래를 시작한 현대자동차그룹의 향후 임원 인사 방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2년간 수석부회장으로 재직당시 파격적인 글로벌 인재경영을 통해 인적 쇄신을 단행했던 정의선 회장인 만큼 추가적인 인사이동도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정의선 회장은 지난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세균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2차 수소경제위원회에 참석한 뒤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후속 인사에 대한 질문에 "항상 수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짧은 답변이었지만 이를 두고 여러 의미가 내포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회장이 그룹을 총괄하게 된 이후 정기인사를 폐지하고 수시인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사장급 이상 인사는 그 이전에도 수시 인사 방식으로 진행해 왔다.
핵심 포지션에 인사 교체 사안이 발생하거나 더 적합한 인물을 영입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굳이 정기인사를 기다리지 않고 즉각적으로 인사를 시행하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이번 정의선 회장의 취임을 계기로 대규모 인사변동이 있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수시 인사를 언급한 정의선 회장의 답변도 일단 이런 측면에서 지금 당장 인사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앞서 지난 2018년 9월14일 정의선 회장은 당시 부회장에서 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하며 부회장단을 파격적으로 교체한 바 있다. 기존에 정체된 듯 보였던 임원급들을 새로운 인물들로 교체해 새로운 분위기 조성에 힘을 기울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해 연말 인사에서 정몽구 회장의 최측근으로 꼽혔던 김용환 기획조정실·비서실 담당 부회장이 현대제철로 이동시킨 것이 상징적으로 가장 큰 의미를 갖는 인사였다.
오랜 기간 정몽구 회장의 비서 역할을 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해온 김용환 부회장의 계열사 이동은 '정의선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대표적인 인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 연구개발 담당 양웅철 부회장과 연구개발본부장인 권문식 부회장도 당시 고문으로 위촉되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공석이 된 현대차그룹의 R&D 수장은 정의선 회장이 지난 2015년 삼고초례 끝에 BMW로부터 영입한 '알버트 비어만' 사장(현대차 연구개발본부장)이 맡았다.
정몽구 회장 시절 현대차의 대외협력 업무를 담당했던 정진행 현대차 전략기획담당 사장도 같은 해 현대건설로 자리를 옮겼고, 그 자리에는 정의선 회장의 핵심 참모인 공영운 사장이 맡았다.
지난 2010년 3월 현대제철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무려 8년간 자리를 지켜온 우유철 부회장도 같은 시기에 현대로템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유철 부회장은 이듬해 용퇴를 결정하며 고문으로 물러났다.
사장단에도 변화가 생겼다. 올해 4월에는 박한우 기아차 사장이 고문으로 위촉됐고, 한성권 전 현대차 상용담당 사장과 안건희 전 이노션 사장 역시 지난 7월 인사에서 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차인규 그룹 인재개발원장(부사장)도 자문역으로 위촉됐다.
지난 2년간의 인사와 이번 정의선 회장의 승진으로 현재 현대차그룹에는 4명의 부회장만 남았다. 김용환 현대제철 부회장과 윤여철 현대차 부회장, 정진행 현대건설 부회장,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등이다.
김용환 부회장은 사실상 경영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질적으로 현대제철의 경영 관련 사안은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지난해 포스코에서 영입한 안동일 대표이사(사장)가 주도하는 모습이다. 김용환 부회장은 현대제철로 자리를 옮긴 이후 대외활동이 거의 없다.
윤여철 부회장은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국내생산담당을 내려놓고 노무담당만 전담하게 됐다. 국내생산 담당을 하언태 사장이 맡게 됐다.
하지만 노무 분야에서는 대체 불가로 평가받는 만큼 윤여철 부회장은 현직을 좀 더 유지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윤여철 부회장은 현대차 내에서 오랜 기간 노무 분야를 담당해 왔으며 지난 2008년 현대차 노무총괄 부회장으로 승진한 이후 10년 넘게 그룹 내 계열사들의 노무 현안을 총괄하고 있다.
정진행 부회장은 2년 전 현대건설로 이동하며 현대차그룹 내 핵심 경영진에서는 한 발 물러섰다는 평가다. 다만 현대제철·현대로템에 김용환·우유철 부회장 외 별도의 최고경영자를 뒀던 것과 달리 현대건설은 정진행 부회장이 실질적으로 경영을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당분간 정진행 부회장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정진행 부회장은 한국전력 부지 인수 당시 TF(태스크포스) 소속이었던 만큼 정몽구 회장의 숙원사업으로 꼽히는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건립이 어느 정도 진척되기까지는 현대건설을 이끌며 책임 있는 역할을 수행을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부회장단 중 정태영 부회장은 정몽구 회장 차녀인 정명이 현대카드 브랜드부문 대표의 남편으로 사실상 오너 일가에 포함된 만큼, 인사 관련 하마평에서는 논외로 여겨진다.
(왼쪽부터)김걸 현대차 기획조정실장(사장), 지영조 현재 현대자그룹 전략기술본부장(사장), 공영운 현대차 전략기획담당 사장. /사진=현대차그룹
이와 달리 정의선 회장이 직접 영입한 인재들의 역할은 한층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오래전부터 글로벌 인재경영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온 정의선 회장인 만큼 직접 영입해온 인사들의 역할이 한층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정의선 회장과 함께 현대차그룹을 이끌어갈 그룹의 핵심 수뇌부로는 이미 50년대 후반~60년대생 사장단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은 1970년생인 정의선 회장보다는 나이가 많지만 정의선 회장이 기아차 사장과 현대차 부회장, 그룹 총괄 수석부회장 등을 거치는 동안 함께 손발을 맞춰온 인연이 있다. 이미 그들은 그룹 내 R&D와 디자인 부문에서 핵심 요직에 포진해 있다.
1965년생인 김걸 현대차 기획조정실장(사장)은 정의선 회장과 같은 고려대 동문이다. 정의선 회장이 그룹 총괄을 맡게 된 시점부터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기획조정실을 책임져 왔다. 김걸 사장의 역할은 정몽구 명예회장의 현역 시절에 김용환 부회장과 동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의선 회장을 보필해 그룹 계열사 및 인사 관련 사안과 지배구조 개편 등 중요 현안을 처리하는 명실상부한 최측근이다.
지난 2017년 삼성전자 출신으로 영입된 지영조 사장은 현재 현대자그룹 전략기술본부장을 맡으며 미래 신사업 분야에서 국내외 다양한 기업들과 협력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의 전환을 추진하는 정의선 회장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인재다.
현대·기아차의 파워트레인 기술을 한층 끌어올렸고 고성능차 분야의 이단아 N브랜드의 성공적인 시장 안착의 핵심인물인 알버트 비어만과 기아차의 디자인 경쟁력을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 올리며 '디자인 기아'라는 신화를 완성한 피터 슈라이어는 글로벌 인재경영의 대표인물이다.
현재 이들은 각각 현대차 연구개발본부장(사장)과 기아차 최고디자인책임자(사장)로 활동하고 있다.
정의선 회장의 핵심 측근인 공영운 현대차 전략기획담당 사장의 역할도 주목된다. 공영운 사장은 지난 2005년 현대차그룹으로 영입된 이후 홍보실장을 맡으면서 정의선 회장의 해외 출장길을 수차례 수행하며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4년생인 공영운 사장은 2년 전부터 현대건설로 이동한 정진행 사장의 빈 자리를 성공적으로 메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밖에도 NASA출신으로 현대차의 미래사업인 UAM(도심 항공 모빌리티) 사업부장인 신재원 부사장, 수소연료전기차 핵심 인력 김세훈 현대차 연료전지사업부 전무, 커넥티드카의 핵심을 담당하고 있는 추교웅 현대·기아 인포테인먼트 개발센터장(상무) 등도 정의선 회장과 함께 새로운 현대차그룹의 발판을 만들어온 만큼 향후 신변 변화도 관전포인트다.
더욱이 정의선 회장은 그동안 해외 경쟁사나 타업종 등 경계를 두지 않고 펼쳐온 글로벌 인재경영을 통해 형성해 놓은 인재 풀인 만큼 또 다른 인재영입도 기대해 볼 만하다.
업계 관계자는 "정의선 회장은 과거에도 그룹 내 정치적 이해관계보다는 해당 보직에 가장 적합한 인물을 내외부 따지지 않고 찾아 영입하는 효율 인사를 선호하고 있다"며 "앞으로의 인사 방향도 지금까지의 모습과 같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미디어펜=김태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