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경제원(원장 현진권) 자유주의 연구회에서 2일 '영어 격차'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다. 자유경제원의 '격차' 주제 발표는 지난 10월 16일 민경국 명예교수(강원대 경제학과)를 시작으로 6회째를 맞이했다. 이번 발표회에서는 소설가 복거일, 김이석 소장(시장경제제도 연구소), 신중섭 교수(강원대 윤리교육과), 이영조 교수(경희대 국제대학원)가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아래 글은 소설가 복거일의 주제 발표문이다. |
1. 서언
▲ 소설가 복거일 |
2. 영어 격차
근년에 점점 심각해진 사회적 격차들 가운데 하나는 ‘영어 격차(English Divide)’다. 세계어인 영어는 우리 사회에서도 이미 생존에 필수적 기술이 되었다. 지금 중요한 정보들은 모두 영어로 저장된다. 당연히, 영어를 모르면, 정보에 대한 접근이 아주 어려워진다. 영어를 잘 쓸 수 있는 능력이 그렇게 중요하므로, 모든 부모들이 자녀들의 영어 습득에 크게 투자한다.
안타깝게도, 가난한 사람들은 자식에게 좋은 영어 교육을 마련해줄 수 없다. 따라서 그들은 결국 자신들의 가난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게 된다. 조선조에서 지배 계급은 한문의 습득을 통해서 지식을 독점했고 피지배 계급들은 지식에 접근할 수 없어서, 신분 제도가 영구적으로 유지되었다. 그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부와 가난의 세습이 영어를 매개로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선 “영어는 외국인들을 상대하는 사람들만 배우면 된다”는 얘기가 흔히 들린다. 이것은 지적으로 아둔하고 도덕적으로 혐오스럽고 실질적으로 해로운 얘기다. 모든 정보들에 대한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영어 구사 능력은 모든 사람들이 늘 필요로 하는 기술이다. 영어 구사 능력은 모든 사람들에게 삶의 질을 결정하는 요소다.
논의가 외국 사람들과의 교섭에 국한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외국인들을 상대하는 직업들과 직장들은 내국인들만을 상대하는 직업들과 직장들보다 대개 낫다. 보수도, 직업의 만족도도, 사회적 평가도, 전망도 모두 낫다. 자연히, 영어를 잘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좋은 직업들과 직장들을 얻을 것이다. 직업과 직장은 무작위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외국인들을 상대하는 사람들만 영어를 배우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자신의 자식들이 영어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그렇게 좋은 직업들과 직장들로부터 원천적으로 배제되는 것을 바라는 이는 없을 것이고 실제로 자식들에게 그런 얘기를 하는 이도 없을 것이다.
영어 격차는 우리 사회에서만 나오는 문제가 아니다. 영어가 널리 쓰이지 않는 사회들은 모두 조만간 이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인도의 경우는 대표적이다.
“현재 어린이들의 85 퍼센트가 가는 국립학교들에서 영어를 [지금처럼] 4학년부터가 아니라 1학년부터 가르치라고 요구하는 풀뿌리 운동이 퍼지고 있다. ‘새로운 것은 이 운동이 나오는 곳이다”라고 인도 해설가 크리슈나 프라사드는 말했다. ‘그것은 사회의 가장 낮은 집단들인 농부들과 [천민] 달리트들로부터 나온다.’ 가난한 사람들도 도시에 자주 드나들어서 지금 영어가 기술 분야 직업을 얻는 열쇠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자식들이 그런 기회들을 갖기를 바라는 것이다. [토머스 프리드먼, ‘International Herald Tribune’, 2005년 6월 4 –5 일자]
우리 사회에서 영어 격차는 이미 뚜렷한 현상이 되었으니, 부모의 소득이 높을수록 학생들의 영어 실력이 높으며 좋은 일자리를 고르는 데 큰 도움을 받는다. 한 연구소에서 2009년과 2010년에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을 표본으로 삼은 조사는 이 점을 잘 보여준다.
부모 소득이 월 200만원 미만이면, 자녀의 평균 ‘토익’ 점수는 676점이었고 어학 연수 경험은 10퍼센트 가량 되었다. 부모 소득이 월 700만원 이상이면, 자녀의 ‘토익’ 점수는 804점이었고 어학 연수 경험은 32퍼센트였다. 같은 시기에 대기업에 채용될 확률은 ‘토익’ 점수 10점마다 3퍼센트가 높아졌고 어학 연수 경험은 49퍼센트를 높였다.
흥미로운 것은 학점은 부모의 소득과 별 관계가 없었다는 점이다. 자격증들은 오히려 부모의 소득이 높을수록 낮았다. 영어가 이미 부와 가난이 세습되는 결정적 경로로 기능한다는 얘기다.
3. 범지구적 관점의 필요성
▲ 영어 격차는 우리 사회에서만 나오는 문제가 아니라 영어가 널리 쓰이지 않는 사회들은 모두 조만간 이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고 강조하는 소설가 복거일.
이처럼 심각한 사회 문제인 영어 격차를 줄이려면, 영어를 너른 맥락에서 살피는 것이 긴요하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영어의 습득은, 특히 어린 세대의 영어 교육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가장 중요한 사회적 과제들 가운데 하나다.
그렇게 영어가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세계의 표준 언어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영어와 관련된 문제들을 범지구적 관점에서 살펴야 한다. 모든 사회적 논의들이 국경에서 멈추는 우리 사회에서, 이 점은 흔히 잊혀진다.
민족국가들이 점점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가는 현대에서 범지구적 표준은 긴요하고 필연적이다. 표준은 정보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서 사회를 효율적으로 만든다. 표준이 없으면, 으레 큰 혼란과 비용이 따른다. 언어에서도 그렇다. 우리는 영어가 범지구적 표준 언어가 되었다는 사실을 늘 고려해야 한다. 영어는 그저 또 하나의 언어가 아니다.
이 사실은 도덕적 측면을 지녔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시민들인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세계의 시민들이기도 하다. 우리는 범지구적 표준 언어인 영어를 익혀서 다른 사회들의 사람들과 최소한의 정보 교환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현대 문명이 우리에게 부과한 책무며, 그것을 외면하는 것은,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두루미처럼, 서로 의지하고 살면서도 상대의 처지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태도다. 영어에 관한 논의에선 실용적 측면과 함께 이런 도덕적 측면도 논의되어야 한다.
4. 언어 습득 과정
1) 내재적 언어 능력의 존재
오랫동안 사람의 마음은 백지 상태에서 시작한다고 여겨졌다. 그런 백지에 환경이 갖가지 정신 현상들을 새긴다는 얘기다. 미국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이런 이론을 ‘빈 석판 (The Blank Slate)’이라 불렀다.
그러나 ‘빈 석판’은 그른 이론임이 점차 드러났다. 사람의 마음은 분명히 내재적 조직 (an innate organization)을 지녔고, 거의 분명히 그런 내재적 조직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것일 터이다.
공교롭게도, 어쩌면 자연스럽게도, 그런 깨달음은 언어와 관련하여 맨 먼저 나왔다. 1950년대 말엽에 노움 촘스키는 사람이 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을 태어날 때 이미 갖추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고, 그 과정에서 ‘빈 석판’을 논파(論破)했다.
“사람들은 6000개 가량의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들을 쓴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 속 문법적 프로그램들은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실제 발언들보다 훨씬 덜 다르다. 모든 인간의 언어들이 같은 종류의 생각들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오래 전부터 알았었다.
성경은 수백 가지 비서양 언어들로 번역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국 해병대는 나바호 인디언들로 하여금 비밀 전언들을 [영어에서] 그들의 태생적 언어로 바꾸도록 함으로써 태평양을 건너 송신했다. 어떤 언어라도, 신학적 우화들에서 군사적 지령들에 이르기까지, 어떤 진술이라도 전달하는 데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은 모든 언어들이 같은 옷감으로 지어진 것임을 시사한다. 촘스키는 개별 언어들의 생성 문법들이 그가 ‘보편적 문법’이라 부른 단일 구도의 변주들이라고 주장했다. [스티븐 핑커, <빈 석판: 현대의 인성의 부정>]
위에서 언급된 사실들은 사람이 언어에 관한 공통된 능력을 내재적으로 지녔음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런 내재적 능력은 어린 아이들이 아주 작은 훈련을 통해서 언어를 그리도 쉽게 배운다는 사실을 잘 설명한다.
2) 각인(imprinting) 과정
언어는 문화의 산물이어서 문화적으로, 즉 비유전적(non-genetically)으로, 진화한다. 그래서 개인이 생전에 습득한 언어 지식은 유전되지 않는다. 그러나 언어를 배워서 쓸 수 있는 사람의 육체적 능력은 유전적으로 전달되고 생물적으로 진화한다. 언어는 유전자-문화 공진화 (gene-culture co-evolution)가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분야다.
언어가 그렇게 공진화하므로, 언어의 습득은 필연적으로 각인(imprinting) 과정을 거친다. 타고난 언어 능력에 특정 언어 체계가 새겨지는 것이다. 이 과정은 컴퓨터의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가 탑재되는 일과 비슷하다.
보다 일반적으로, 어떤 기능을 위한 기본적 능력이 선천적으로 마련되고 개체가 태어난 환경에서 필요한 지식을 얻어 그 능력을 완성시켜야 할 때, 자연은 각인이라는 방식을 고른다. 부모의 보살핌이 중요한 고등 동물들에서 부모를 알아보는 지식이 각인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은 대표적이다.
각인 과정엔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가 있게 마련이다. 각인이 가능하고 그것을 넘어서면 각인이 불가능한 기간이 있다는 얘기다. 그렇게 해야, 적절한 시기에 각인이 되고 한번 각인된 지식이 바뀌지 않고 오래 갈 수 있다.
오스트리아 동물학자 콘라트 로렌츠의 개척적 연구 덕분에, 고등 동물들에서 새끼가 처음 본 대상을 부모로 새기는 기간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졌다. 원래 각인과 결정적 시기에 관한 이론의 효시는 핀란드 인류학자 에드바르트 베스터마르크가 주창한 근친상간 금기의 기원에 관한 이론이다.
사람들에게 근친상간의 욕구가 있다는 프로이트의 학설에 대항해서, 그는 사람들에겐 근친상간을 피하려는 욕구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람들이 어릴 적에 친하게 지낸 사람들과는 짝짓기를 피하는 성향을 갖기 때문에 근친상간을 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비록 프로이트의 명성에 눌려 오랫동안 인정받지 못했지만, 이제 그의 학설은 정설로 자리잡았다.
3) 언어 습득 과정
▲ 언어들의 구별도 아주 일찍 시작된다. 태어난 지 겨우 나흘밖에 되지 않은 아기들이 영어와 프랑스어를 구별한다는 것이 실험으로 밝혀졌다.
각인 과정을 거치므로, 언어 습득엔 결정적 시기가 존재한다. 결정적 시기 이전에 영어를 배우도록 하는 것은 일단 영어 습득에 도움이 된다. 아예 영어를 모국어로 삼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되도록 일찍 영어를 배우도록 하는 것은 영어 습득에 좋다. 사람이 태어나자마자 언어를 배우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근년의 신경과학적 발견들은 유아들이 태어날 때나 거의 바로 뒤에 언어를 배울 준비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한 연구자들 집단은 언어적 자극의 존재 속에서 태어난 지 이틀 된 아기들의 뇌의 혈류에서의 변화들을 기록했다. [관찰] 기간의 반 동안 아기들은 정상적 사람의 발성의 녹음들을 들었고 나머지 반 동안 그들은 그 발성을 거꾸로 돌린 것을 들었다. 아기들의 좌반구의 혈류는 정상적 발성에 대해선 늘어났지만 거꾸로 된 발성에 대해선 그렇지 않았다. 뇌의 좌반구는 사람들에서 언어 활동의 주요 지점이므로, 이 증거는 언어와 비슷한 신호들에 대한 특별한 반응성이 출생에 가까운 시점에 이미 일어난다는 것을 시사한다.
[헨리 글라이트먼 외 <심리학>]
언어들의 구별도 아주 일찍 시작된다. 태어난 지 겨우 나흘밖에 되지 않은 아기들이 영어와 프랑스어를 구별한다는 것이 실험으로 밝혀졌다. 당연히, 모국어에 대한 편향도 예상보다 훨씬 일찍 시작된다.
“실은 태어난 지 두 달이 되면, 유아들은 이런 변별들을 할 뿐 아니라, 이제 그들은 애국적이 되어 그들 자신들의 모국어가 말해지면 오래 귀를 기울인다. 모국어에 관한 무엇이 이 유아들의 관심을 끄는 것일까? 그들이 아직 어떤 낱말의 뜻들도 알지 못하므로, 그것은 낱말들의 뜻들일 수는 없다. 분명히 아기들이 모국어에서 받아들이는 첫 특질은 그 언어의 특정 선율, 구체적으로는, 특징적 발성 리듬들과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주목할 만하게, 태어난 지 겨우 며칠 지나지 않아서 우리는 유아들이, 모국어의 달콤한 음악에 선택적으로 귀를 기울임으로써 언어 습득의 바탕을 준비하느라, 이미 열심히 노력한다는 것을 보는 것이다. [같은 책]
한 달 또는 두 달이 지나면, 아이들은 음소들(phonemes)을 구별하게 된다. 이용하는 음소들의 조합에서 언어들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으므로, 이 사실은 모국어의 습득과 관련하여 중요한 뜻을 지닌다.
“처음에, 유아들은 어떤 언어에서든지 나오는 거의 모든 소리들의 구별들에 대해 반응하고, 그래서 일본인 아기들은 미국인 아기들과 마찬가지로 ‘la’와 ‘ra’ 사이의 구별을 알아낼 수 있다, 이런 대조가 일본어에선 음소적이 아니며 (어른 일본어 사용자들에 의해 잘 구별되지 않는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이 지각적 능력들은 활용되지 않으면 감소되고, 그래서 유아들은 그들의 언어 공동체에서 쓰이지 않는 구별들을 하는 능력을 잃게 된다. 그래서, 일본인 유아들은 ‘la’와 ‘ra’를 구별하는 것을 점차 멈춘다. 대칭적으로, 미국 유아들은 아랍어 사용자들에선 지각적으로 구별되는 두 개의 다른 ‘k’ 음들을 구별하는 것을 곧 멈춘다. [같은 책]
이렇게 모국어와 외국어 사이의 음소들의 차이를 변별하는 능력은 평균적 아이들이 말을 제대로 쓰기 시작하는 생후 12개월까지는 많이 감소한다. 즉 첫돌이 되면, 사람은 이미 모국어에 대한 편향을 깊이 지니게 된다.
자연히, l과 r, b와 v, p와 f, 그리고 d와 th처럼, 영어에서 쓰이지만 우리 말에선 쓰이지 않는 음소들을 변별하는 능력을 잃지 않으려면, 아이가 말을 제대로 쓰기 시작하기 전에 영어를 가르치는 일이 필요하다. 이 결론은 언어 습득 능력이 어릴 적에 활용되어야 잠재적 능력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다는 일반적 결론으로 이끄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아이들이 언어를 배우는 속도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 낱말의 뜻을 배울 때 그것의 품사적 분류(즉 낱말이 명사냐 동사냐 부사냐 판단하는 것)를 고려하는 능력은 두 살 때 이미 마련되기 시작한다. 문장 안에서 낱말들 사이의 관계를 가리키는 낱말들(function words)은, 즉 영어의 of, ing, by, been과 같은 낱말들은, 무척 추상적이지만, 15개월 된 아이들이 그런 기능적 낱말들에 대해서 예민하다. 문장의 구조와 의미 사이의 관련을 깨닫는 시기도 무척 일러서, 적어도 17개월이 되면, 그런 능력을 갖춘다. 마침내 다섯 살이 되면, 어른들처럼 말하게 된다.
모국어의 습득이 각인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므로, 한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배우는 것이 한국어의 습득을 덜 효율적으로 만들 가능성은 이론적으로 없지 않다. 여러 증거들을 살피면, 그러나 그런 우발적 손실이 확실한 혜택보다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정적 시기의 존재는 언어 습득에서 모국어가 그리도 자연스럽지만 외국어들은 그리도 낯설고 배우기 어려우며 아무리 큰 투자를 해도 원어민처럼 능숙하게 쓸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설명한다. 언어 습득에서의 결정적 시기는 대체로 11세 전후인 것으로 알려졌다. 즉 사람은 11세까지만 어떤 언어를 제대로 각인할 수 있고, 11세가 지나면, 다른 언어들을 각인 과정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배울 수 없다.
위에서 나온 얘기들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출생 직후 (2일): 언어에 대한 반응성
출생 직후 (4일): 언어 체계들의 구별
출생후 1개월: 음소들의 구별
2개월: 모국어에 대한 편향
1년: 모국어에서 쓰지 않는 음소들의 변별 능력 감소
15개월: 기능적 단어들의 인지
17개월: 문장의 구조와 의미 사리의 관련 인지
2년: 품사적 분류 능력
5년: 완벽한 언어 능력 확보
11년: 결정적 시기 완료
4) 언어 전환의 어려움
언어는 배우기가 무척 어렵다. 사람이 습득하는 많은 기술들 가운데 언어는 분명히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기술이다. 아이가 언어를 배우는 과정을 지켜보면, 언어를 배우는 데 얼마나 큰 자원이 들어가는가 새삼 깨닫게 된다. 게다가 결정적 시기의 존재는 외국어를 배우는 데 엄격한 제약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자연히, 어떤 언어를 한 번 배우면, 다른 언어로 바꾸기가 무척 어렵다. 즉 전환 비용(switching cost)이 아주 크다. 그 전환 비용엔 뒤늦게 바꾼 언어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나오는 비용까지도 들어있다. 다른 언어를 쓰는 나라로 망명한 작가들이 새로 자리잡은 나라의 문학적 전통에 기여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사실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따라서 사람은 누구나 모국어만을 제대로 쓰게 되는 ‘잠김(lock-in)’ 현상이 나온다.
5. 영어 조기 교육의 합리성
자식들의 영어 교육에 관해서 판단할 때, 부모들이 맨 먼저 만나는 것은 “언제부터 내 자식들에게 영어 공부를 시키는 것이 합리적인가”라는 물음이다.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분명히 “빠를수록 좋다”이다.
1) 결정적 시기의 존재
결정적 시기의 존재는 영어 조기 교육의 궁극적 근거를 제공한다. 언어는 되도록 어릴 적에 배워야 한다.
2) 언어 모듈의 유연성
사람의 뇌는 특수한 기능들을 지닌 모듈들로 이루어졌다. 이런 모듈들은 무척 유연하다. 그래서 여러 장애들을 극복해나간다. 언어를 맡은 모듈도 마찬가지다. 원래 신호 언어를 썼다가 뒤에 음성 언어를 쓸 수 있도록 진화했고 이제 문자 언어를 쓴다는 사실에서 드러나듯, 언어 모듈은 유연하다. 그런 유연성은 추가 학습도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언어 모듈은 원래 하나의 언어만을 다루도록 진화했지만, 추가적 언어의 습득도 어느 정도 할 수 있다. 우리가 뒤늦게 외국어를 배워 잘 쓸 수 있는 것은 그런 유연성 덕분이다.
3) 언어 모듈의 여재(餘材)
사람의 몸은 본질적으로 기계다. 기계는 목적을 이루는 데 꼭 필요한 것보다 상당히 넉넉하게 만들어진다. 사람의 몸도 마찬가지니, 사람의 생존과 생식에 꼭 필요한 것보다 상당히 넉넉하게 만들어졌다. 비록 언어 모듈이 본질적으로 한 언어의 사용에 맞추어 진화했더라도, 뇌의 언어 모듈은 그런 여재를 지녔을 터이다. 일찍 쓰지 않으면, 그런 여재는 퇴화하거나 다른 용도에 전용될 터이다. 언어가 워낙 중요하므로, 세계 표준 언어를 배우는 데 쓰일 수 있는 여재를 그냥 썩이는 것은 큰 손실이다.
4) 기본적 능력의 활용
언어 모듈을 이룬 여러 요소들 가운데 상당 부분은 또 하나의 언어를 쓰는 일을 어렵지 않게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실은 그런 요소들의 대부분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는 언어학자들도 있다. 어려서 이중 언어를 쓰는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두 언어를 잘 쓸 수 있는 것은 기본적 능력의 활용 덕분이라는 얘기다.
5) 언어 모듈에 대한 추가적 투자
영어 조기 교육은 언어 모듈에의 추가적 투자를 촉진할 수 있다. 뇌가 워낙 유연성이 뛰어난 기관이고 신경 세포들은 늘 생성된다. 따라서 어릴 적에 언어 모듈을 많이 쓰게 되면, 언어 모듈에 대한 추가적 투자가 이루어져서, 언어 모듈 자체가 애초에 예정된 것보다 발달할 가능성이 있다.
영어를 일찍부터 배운 사람들은 이중언어 사용자들(bilinguals)이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둘 이상의 언어를 잘 쓰는 다중언어 사용자들(multilinguals)은 지적 능력과 사회적 성취에서 뛰어나다는 사실은 조기 영어 교육의 강력한 근거다. 영어 조기 교육에 관한 논란의 상당 부분은 이중언어 사용자들이 보는 혜택과 손실에 관한 것이므로, 이 점은 자세히 살펴볼 만하다.
6. 이중언어 사용자들의 혜택과 손실
‘세계성(globality)의 시대’이므로, 지금 세계적으로 다중언어 사용자들은 단일언어 사용자들보다 훨씬 많다. 여기서 다중언어는 느슨하게 정의된다. 다른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지만,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도 포함된다. 우리 시민들의 다수는 그런 ‘수용적 이중언어 사용자들(receptive bilinguals)’에 속한다. 이런 관점에서 살피면, 영어 문제에 대해 훨씬 합리적인 접근이 가능하다.
시민들을 ‘영어를 쓸 줄 아는 사람들’과 ‘영어를 못 쓰는 사람들’로 나누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우리 시민들의 다수는 영어를 조금이나마 할 줄 아는 사람들이고, 그들의 영어 능력이 꾸준히 나아져서 그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시할 수 있는 ‘생산적 이중언어 사용자들(productive bilinguals)’이 되도록 하는 것이 영어 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중언어 사용자들이 누리는 혜택들은 크다. 또 하나의 언어를 잘 쓸 수 있다는 사실은 직접적으로 혜택들을 준다. 경제적 혜택만도 상당해서, 미국의 경우, 이중언어 사용자들은 단일언어 사용자들보다 연간 3000 달러 가량을 더 번다. 그런 직접적 혜택들 말고도 이중언어 사용자들은 간접적이지만 원천적인 혜택들도 누린다.
1) 언어의 습득과 구사 능력이 향상된다.
2) 뇌가 보다 민첩해져서, 모호한 상황들에 보다 잘 대처하고 갈등들을 보다 잘 해결한다. 이런 우수성은 지능계수(IQ)의 향상으로 나타나니, 이중언어 사용자들인 어린이들은 단일언어 사용자들인 어린이들보다 지능계수가 2-4점 가량 높다.
3) 문화적 공감, 열린 마음 및 사회적 주도성(social initiative)과 같은 성격적 특질을 뚜렷이 보인다. 아울러, 보다 너른 맥락에서 사물들을 살피고 보다 다원적인 세계관을 지닌다.
4) 외국어의 사용은 결정에서 편견을 줄이고 공리주의적 태도를 보이므로, 이중언어 사용자들은 비판적 사고와 결정에서 우수하다.
5) 지적으로 건강하게 살도록 한다. 특히, 알츠하이머 병 및 다른 형태들의 치매에 대한 저항을 강하게 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다중언어 사용은 알츠하이머 병을 4년 가량 늦춘다. 그 조사는 사용하는 언어가 많을수록 알츠하이머 병의 시작이 늦춰진다는 것을 밝혀냈다.)
반면에, 이중언어 사용자들이 치르는 비용은 거의 없다. 제일 언어(생래적 모국어)의 습득이 중단되거나 불충분하면, 두 언어들의 습득이 하나의 언어만을 배울 경우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 이런 ‘분산된 이중언어 사용(distractive bilingualism)’ 또는 ‘준이중언어 사용(semilingualism)’은 이민 가정의 유아들이 때로 겪을 수 있다.
7. 대책
언어는 어릴 적에 배운다. 누가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은 모국어를 그렇게 배운다. 당연히, 모국어에선 부모의 경제 능력에 따른 격차가 없다. 외국어 교육에서만 그런 격차가 나온다. 당연히, 영어 격차를 줄이거나 해소하는 길은 영어를 어릴 적에 스스로 배우도록 하는 것이다.
태어난 뒤 줄곧 영어에 노출되도록 해서, 모국어를 배우듯 자연스럽게 영어를 배우도록 하는 것이다. 시민들이 영어를 잘 하는 나라들은 모두 이런 방안을 채택해서 시행해왔다. 대표적인 경우는 핀란드와 네덜란드다.
1) 유선 방송을 이용한 학습 환경 조성
언어 습득이 각인 과정이므로, 우리 아이들이 되도록 일찍 그리고 되도록 많이 영어를 접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근본적 대책이다. 지금 가난한 집들에도 케이블 텔레비전은 다 들어갔으니, 채널 몇 개를 유아 영어 교육에 돌려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영어 동요, 동화, 만화와 같은 프로그램들을 방송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맞벌이 부모들의 아이들이나 할머니가 돌보는 아이들도 쉽게 영어를 접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영어를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다. 생후 1년 미만, 2세에서 3세까지, 그리고 4세에서 6세까지 세 구간으로 나누면 될 테니, 큰 투자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이런 시도는 중요한 사업이므로, 조심스럽게 추진되어야 한다. 시험 사업(pilot project)을 통해서 효과와 문제들을 점검하고 뒤에 확대하는 방안이 온당할 것이다. 주민들이 찬성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을 도시와 시골 지역에서 각기 2곳 선정해서, 유선 방송을 통한 영어 환경 조성을 실시하고 성과와 문제들을 평가하는 것이 실제적일 것이다. 이 방안은 비용과 실패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시험 사업을 시작한 뒤 5년이면 뜻있는 자료가 나올 것이다. 만일 평가가 긍정적이면, 보다 많은 지방자치단체들로 시험 사업을 확대한다. 10년 뒤의 평가도 긍정적이라면, 전국적으로 실시한다.
2) 초등학교 영어 교육 억제 조치 철폐
언어 습득이 어릴 적에 이루어지므로, 우리 시민들의 영어 능력을 높이려면, 어릴 적에 영어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긴요하다. 그러나 우리 초등교육 정책은 그런 자명한 원칙을 어기면서 영어를 배우는 시기를 되도록 늦추려 애쓴다.
현행 초중등교육법은 초등하교 1-2학년에선 정규 교육과정에서 영어를 가르칠 수 없고 3-4학년은 주당 2시간, 5-6학년은 주당 3시간 안에서 영어 시간을 편성하도록 규정했다. 이런 규정은 여러 모로 문제적이고 폐해가 크다.
먼저, 되도록 어릴 적에 영어를 배우도록 해야 한다는 기본 원리에 어긋난다. 언어 습득 능력이 큰 저학년에선 아예 영어 수업을 금지하고 고학년일수록 영어 수업을 늘리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다음엔, 그런 규정의 근거가 그르다. 그 근거는 “모국어에 익숙해진 뒤에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좋다”는 연구 결론이라 한다. 이런 결론은 명백히 그르다.
상당수 언어학자들은 대체로 3세를 “아이가 자신의 첫 언어(모국어)에서의 기본적인 소통 능력을 갖는 나이”로 본다. 5세가 되면 아이들은 자신들의 모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따라서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들이 영어 수업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
만일 그 규정을 만든 사람들이 ‘분산적 이중언어 사용’을 걱정했다면, 그것은 기우다. 분산적 이중언어 사용은 언어가 다른 사회에서 이민 온 가정들에서 때로 나올 수 있다. 아직 첫 언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는데, 그 언어를 배울 기회가 갑자기 줄어들고 새로운 언어를 주로 써야 하는 상황에선 혼란이 나와서 언어 습득에 장애가 일어날 수 있다.
이런 경우들은 주로 미국에서 발견된다. 우리 사회에선 사정이 전혀 다르다. 우리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한국어를 배우므로, 그런 혼란이 나올 리 없다. 어머니가 아무리 영어에 노출이 많이 되도록 노력해도, 첫 언어인 한국어를 배우는 데 장애가 나올 수 없다.
(위의 얘기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분산적 이중언어 사용’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는 아니다. 베트남이나 캄보디아 출신 여성들이 낳은 아이들은 언어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다. 어머니는 자기의 모국어만을 하고 한국어를 모르므로, 갓난아이는 베트남어나 크메르어를 첫 언어로 배울 수 있고 뒤에 아이가 언어적 정체성에 혼란을 겪을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초등학교에서 영어 수업을 제한하는 규정은, 특히 저학년에서 영어를 아예 배우지 못하게 하는 조치는, 우리 학생들의 영어 수준을 전반적으로 낮추고 영어 격차를 늘리는 해로운 조치임이 드러난다. 이런 어리석고 해로운 조치를 푸는 것만으로도 영어 격차를 줄이는 데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이다.
8. 자유주의적 영어 정책
어리석고 해로운 ‘초등학교 저학년 영어 수업 금지 조치’데 대해 영어 교육에 열심이었던 사립초등학교들의 학부모들이 반발해서 법원에 집행정지 신청과 헌법소원 심판 청구를 했다. 이 일은 영어 교육에 관한 실제적 고려를 넘어 우리 사회의 성격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자본주의 체제를 지닌 우리 사회에서 판단의 궁극적 주체들은 개인들이다. 당연히, 개인들의 판단들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존중되어야 한다. 아이들의 교육에 관해서, 특히 언어 교육에 관해서, 궁극적 결정은 아이들의 부모가 내린다.
그리고 그들의 결정이 가장 합리적이다. 그런 결정에 필요한 정보들은 - 아이의 재능, 건강, 적성, 희망, 가정의 문화적 환경, 그리고 경제적 능력과 같은 정보들은 - 오직 부모만 지녔다. 따라서 정부는 아이들의 언어 교육에 관한 부모들의 결정들을 존중해야 한다.
지금까지 정부는 부모들의 결정들을 거의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정책들을 고집했다. 그런 태도는 정책을 세우고 집행하는 데 참여하는 소수의 판단을 다수의 부모들에게 강요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그런 정예주의적(elitist) 행태는 우리 사회의 구성 원리에 어긋날 뿐 아니라 실제로도 해롭다.
언어의 습득에는 부모의 역할이 유난히 크므로, 영어 교육 문제에서는 정부의 정예주의적 태도가 특히 큰 해를 끼쳤다. 앞으로 정부는 부모들의 판단을 보다 존중해서 그들의 결정이 좌절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소설가 복거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