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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공정위 전 부위원장의 ‘역사를 거스르는 움직임’ 경고

2020-10-27 15:01 | 윤광원 취재본부장 | gwyoun1713@naver.com

윤광원 세종취재본부장/부국장대우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지난 8월 퇴임한 지철호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은 30년 이상 공직생활의 대부분을 공정거래와 독점규제 관련 업무에 바친, ‘영원한 공정인’이라 할 수 있다.

실무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국내 최고의 이 분야 전문가인 셈이다.

지 전 부위원장은 최근 ‘독점규제의 역사’라는 책을 냈다.

이 책은 ‘정부의 시장개입과 시행착오 130년’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정부가 민간의 시장경제 활동에 개입한 독점규제의 역사를 시행착오(試行錯誤)라는 독특한 시각에서 되돌아보는, 주목할 만한 책이다.

이 책은 1890년 ‘셔먼법’이라 불리는 독점규제법을 세계 최초로 제정, 독점규제의 역사를 처음 연 미국이 법무성과 연방거래위원회(FTC)라는 2개의 법 집행기관을 만든 것을 대표적 시행착오로 꼽았다.

또 일본과 한국은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과 달리 관련법 위반 시 ‘형사벌칙’을 가하는 것을 폭 넓게 인정하면서도, 검찰 등 수사기관이 무분별하게 기업 활동에 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전속고발(專屬告發)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일본에 독점규제 관련 법제도를 전수한 미국도 반대한 것이고,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이나 중국 등에도 없는, 일본과 한국만의 제도다.

이는 미국 등 다른 나라들은 독점규제법에 형사벌칙을 대부분 적용하지 않거나 일부 행위에 대해서만 규정하고, 행정제재로만 규제하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에, 고발이 문제가 될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런데 일본과 한국만 기업의 경제활동에 형사벌칙을 적용하려니, 고발 자체를 최소화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은 기업들의 탈법행위에 대해, 천문학적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하고 극단적인 경우 강제로 ‘해산명령’도 내리지만, 형사처벌을 하지는 않는다.

한국에 독점규제 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도 ‘비정상적 상황’에서 이뤄졌다.

쿠데타로 제5공화국이 출범하고 삼엄한 ‘군사독재’가 극성이던 1980년 말, 국회가 해산돼 있는 상태에서 당시 김재익 전 청와대 경제수석 주도로 국가보위입법회의가 공정거래법을 처음 제정하고, 당시 경제기획원에 공정거래실을 신설한 것이 오늘날 공정위의 출발이다.

정상적인 민주사회였다면, 과연 이것이 가능했을까?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불과 얼마 후, 역시 김 전 수석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금융실명제가 여권 내 반발로 좌절된 것이, 이런 추정을 가능케 한다.

지철호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의 신간 '독점규제의 역사' 표지 [사진=미디어펜]


그렇다면 한국과 일본을 비교해보면 어떨까.

최근 10년간의 고발 건수를 비교하면, 한국이 일본보다 약 130배나 많이 고발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 2010년부터 2018년 사이 총 4건을 고발, 한 해 평균 0.4건 고발한 것에 불과하지만, 한국은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총 575건을 고발해 한 해 평균 57.5건이나 고발한 것이다.

그런데도 공정위가 전속고발제를 악용, 고발하지 않고 ‘봐주기’만 한다는 비판이 일각에서 많았고, 이에 따라 전속고발제 자체는 유지하되, 검찰이나 중소벤처기업부가 고발을 공정위에 의뢰하면 반드시 검찰고발을 하도록 의무화했다.

이것도 모자라, ‘공정경제’라는 명분에 치우쳐 이번 공정거래법 개정안에는 전속고발제를 아예 폐지, 검찰 등이 고발을 남발해 기업을 옥죄게 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이에 따라 형사처벌과 소송 남발, 그리고 이에 따른 기업활동 위축에 대한 재계와 기업들의 우려는 매우 크다.

이에 대해 지 전 부위원장은 이 책에서 이렇게 기술했다.

“이런 독점 규제의 ‘역사를 거스르는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다. 법이나 경제분야 전문가를 중심으로 목소리를 내거나, 행동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 움직임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그 역시 전속고발권 폐지의 부작용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과 달리, 유독 일본과 한국만 전속고발권을 부여한 취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 셈이다.

에필로그에는 이런 표현도 있다.

“경제활동과 관련된 위반행위에 과도하게 형사 벌칙을 규정하고, 이를 집행하기 위해 수사기관이 무리하게 개입하는 경우, (기업의) 자율과 창의를 저해하여 경제 자체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지 부위원장은 이렇게 책을 끝맺는다.

“오늘날 경제상황이 19세기 초 미국에서 ‘트러스트’들이 번성했던 시대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무를 자르지 않고 다듬는 것이라면, ‘도끼가 아니라 전지가위’가 필요하다. ‘트러스트 분쇄자’라는 별명을 얻은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조차도, 트러스트를 대상으로 도끼를 쓰지 말라고 말렸다”

사실 공정위 관료들도 내심 전속고발권 폐지에 다들 반대하지만, ‘분위기’ 때문에 대놓고 말을 하지 못할 뿐이다.

평생을 공정거래·독점규제에 바친 전직 관료의 ‘경고와 충언’을 경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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