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제도·경제학회(이하 학회)는 지난달 27일 전경련 컨퍼런스센터에서 '한국경제에 대한 신제도경제학적 이해'를 주제로 2014년 한국제도·경제학회 추계학술대회를 개최했다. 학회는 추계학술대회를 통해 한국경제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신제도경제학적 접근을 통해 한국경제를 개선하고 선진화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모색하고자 했다. 아래 글은 좌승희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발표한 '신제도경제학과 한국경제학계의 과제' 발제문이다. 미디어펜은 발제문을 6회에 걸쳐 연재한다. |
신제도경제학과 한국경제학계의 과제(6)
▲ 좌승희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
인간의 경제적 행동을 결정하는 궁극적 외생변수인 제도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동어반복에 빠진 주류 신고전파경제학에 매몰된 한국경제학계도 이제 보다 더 현실성 있는 실사구시 경제학을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20세기 세계 경제기적을 만든 한국경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일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한국을 복제하여 성공하였으나 정작 한국은 과거를 모두 잘못됐다 청산하고 서구 시장 중심적 사고만 따랐더니 오늘날 이제 조만간 중국의 힘에 함몰될 처지에 놓여있지 않은가?
한국 경제문제도 풀지 못하면서 무슨 기적의 경험을 세계에 전수한다고 실효성 없는 프로그램에 수없이 많은 달러를 낭비하고 있는 관과 학계의 현실을 그냥 보고만 있을 것인가? 한국경제의 기적이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인가? 예컨대 주류경제학이 하지 말라는 방식으로 성공한 박정희를 그 교과서 틀에 꾸겨 넣어 설명하니 후진국은 “우리 다 아는 방식이군요. 그렇게 해도 잘 안되던데요? 한국이 정말 그렇게 성공했나요?”하는 반문에 부딪치게 되는 것이다.
“박정희는 어떻게 교과서적방식으로 성공했나?”가 아니라 “왜 박정희는 교과서적방식으로 안했는데도 성공했는가?”하는 문제에 천착하지 않으면, 그래서 교과서라도 바꾸지 못한다면 한국경제학계가 세계에 내 놓을 상품은 안 나올 것이다.
한국의 경우는 북한과의 이념적 대치상황에서 이념 논쟁이 어느 나라보다도 심한 편이다. 그래서 요즘은 평등의 이념에 가까이가지 않으면 “보수 꼴통”이라는 낙인까지 찍히는, 평등주의자들의 세상이 되었다. 시장자유주의자들의 많은 노력에도 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못하고 있어 보인다.
▲ 자유주의자들의 아킬레스건. 자유주의자들은 이 시대의 화두인 “경제적 불평등”이 왜 생기며 해결책이 있기나 한 것인지에 대한 담론을 형성해야 한다고 필자는 주장하고 있다. 필자는 또 하나의 아킬레스건인 박정희의 경제적 성공을 더욱 연구하고 현 경제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삼기를 지적하고 있다. 사진은 좌승희 미디어펜 회장의 경제서적들. |
자유주의 시장경제 진영의 세 가지 아킬레스건
그럼 시장자유주의자들은 그 동안 무엇을 해왔는가? 시장자유주의진영의 모습도 실사구시와는 점점 멀어지고 심지어 도그마화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자유주의자들에게는 크게 세 가지의 아킬레스건이 있어 보인다.
첫째는 자유주의자들은 자유가 경제번영의 필요조건임을 열심히 항변하지만 이 시대의 화두인 “경제적 불평등”이 왜 생기며 해결책이 있기나 한 것인지에 대한 담론이 없다. 따라서 평등의 가치에 매몰된 청중을 끌어들이기에 역부족일 수밖에 없고, 경제번영은 메아리 없는 아우성이 되고 만다.
자유가 번영을 가져온다면 왜 불평등은 생기는 지, 그리고 평등을 추구하면 결과는 어찌되는지에 대한 담론이 없으니 현실적 호소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아니라 “자유와 불평등의 가치”를, 그리고 불평등이 없는 사회가 얼마나 비인간적인 사회인지를 당당하게 설파하고 설득시키지 못한다면 자유주의자들의 승리는 멀어 보인다.
둘째로는 우리는 물론 전후 세계 민주주의 사회의 경험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민주주의의 만개가 반드시 경제적 자유의 신장에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면 시장자유주의자들의 길은 여전히 험난하다. 정치적 자유를 내건 일인일표 민주주의의 만개는 반드시 민주주의의 또 다른 축인 평등을 강화하며, 나아가 표에 의해 경제적 평등을 지향하게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안고 있다.
이를 일컬어 필자는 자유민주주의에 대칭되는 평등민주주의라 칭하였다. 표의 힘을 빌린 경제적 평등의 추구는 반드시 경제적 자유를 훼손할 수밖에 없으니 민주주의를 자유이념의 지원자처럼 생각하는 자유주의자들에게 민주주의는 또 다른 아킬레스건이다. 이런 소위 포퓰리즘적 평등민주주의를 방지할 수 있는 자유주의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 자유주의는 여전히 고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민주주의는 역설적으로 자칫 자유주의의 무덤이지만 좌파 반 자유주주의의 낙원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셋째로 한국의 경우에 있어서는 또 다른 시장자유주의자들의 아킬레스건이 있는데 이는 바로 “박정희의 성공”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 놀라운 경제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사실상은 좌파평등주의자들은 물론 시장자유주의자들로 부터도 크게 환영받지 못하고 있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사실상 박정희 시대를 그 놀라운 경제적 성과를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경제적 자유가 꽃핀 시대라 할 수 있는 것인가? 만일 박정희 시대가 자유의 시대가 아니라면, --자유의 시대라고 강변하기도 하지만 사실에 비춰 그리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 도대체 그 시대의 경제적 번영은 어디서 온 것인가? 한 가지 더 묻는다면, 지난 30여 년 간 박정희 시대를 청산하여 정치·경제적으로 보다 자유롭고 부유한 사회를, 그래서 선진경제를 앞당긴다고 노력한 결과, 오늘날 한국경제와 사회는 어디에 서 있는가?
박정희 시대에 비해 일인당 소득은 10배 이상 늘었다지만 저성장과 불평등은 더 심화되고 내수침체로 청년·고령실업이 증가하고 사회의 양극화는 더 심화되고 있다. 좌파들은 오히려 경제적 자유와 시장의 확대가 저성장과 양극화의 원인이라 하는데, --또한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셈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 시장자유주의자들의 답은 별로 들리지 않는다.
“자유의 패러다임”으로 박정희 시대 성공과 동시에 실패해온 지난 30여년을 일관되게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나아가 대안으로서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도 찾아내지 못한다면 시장자유주의자들의 좌파극복은 신기루가 되고 말 것이다.
▲ 11월 27일 전경련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제도·경제학회의 2014년 한국제도·경제학회 추계학술대회 <한국경제에 대한 신제도경제학적 이해>에서 발표하고 있는 좌승희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미디어펜 회장 |
경제적 불평등문제의 해법, 한국의 고속성장 동반성장의 경험
여기서 이제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하이에크를 필두로 시장자유주의학파는 자유와 반자유의 화두를 가지고 경제적 부자유의 사회주의 체제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였다. 그러나 경제적 불평등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여전히 성공하지 못하거나 혹은 그 담론을 주도하지 못하고 있다. 점증하는 자본주의경제의 저성장과 불평등문제가 자유의 화두를 압도하고 있다.
경제 불평등의 문제는 이제 피할 수 없는 가장 뜨거운 인류의 화두가 된 듯하다. 우리 모두 앞에 해결책을 내놓으라고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주의는 불평등문제의 화두를 이끌지 못하고 있다. 주류 경제학도 본질적으로 평등경제학이다. 그리고 신제도 경제학도 자유와 재산권을 하느님으로 생각하지만 불평등문제를 피하고 있다. 불평등 문제는 이제 좌파들의 독점화두가 되었다.
필자의 눈에는 한국경제의 개발연대 성공경험이야 말로 인류가 이룬 가장 모범적인 ‘고속성장과 동반성장’의 경험이다. 여기서 출발한다면 오늘날 세계경제의 문제인 ‘성장정체와 심화되는 불평등문제’의 해법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어떻게 이런 한국경제의 경험을 경제성장과 발전의 보편이론으로 승화시켜 아직도 기아와 배 고품에 허덕이는 수십억 저개발국 인류와 장기 경제침체 속에 소득의 하향평준화와 양극화위험에 노출된 저성장 선진국 인류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냐가 한국경제학계에 주어진 과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경제도약?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일 수 있어
여기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경제도약에 관한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일 수 있다는 생각과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노력에 있어 신제도경제학적 접근방법이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런 노력을 통해 오늘날 한국경제의 저성장·불평등문제의 해법도 찾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바라 건데 여기서 제시한 필자의 경제적 차별화원리에 기초한 차별화경제발전론이 성장·발전과 평등과 불평등의 문제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이론적 단초라도 될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끝) /좌승희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미디어펜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