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혁명을 추구해 온 통합진보당 해산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이달 중 내려질 예정이다. 지금까지 세계 어떠한 국가도 체제를 위협하는 적(敵)에 대하여 관용을 베푸는 경우는 없었다. 이를 방치하는 것은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국가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과도 같다. 이달 중 헌법재판소에서 이루어질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앞서 자유경제원이 통진당의 해산을 조명하는 토론회를 가졌다. 아래 글은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의 토론문 전문이다. |
통진당의 진보적 민주주의
통진당이 자유시장경제체제를 반대한다는 것은 그들이 당 이념으로 표방하는 진보적 민주주의에 대한 그들의 해설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통진당의 강령은 진보적 민주주의를 ‘민중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생활 전반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체제로 정의하고 있다. 통진당의 이론가인 박경순(통진당 부설 진보정책연구원 부원장, 전 민노당 부설 새세상연구소 부소장)은 진보적 민주주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민중주권 사상을 체현한 민주주의이다.…21세기 진보적 민주주의체제는 자본가 계급이 주도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계급적 제한성을 뛰어넘었지만 아직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지양하는 사회주의 체제는 아닌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 체제이다.”<박경순, 『21세기 진보적 민주주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넘어 대안체제로』(민주노동당부설 새세상연구소, 2011), 134쪽> “21세기 진보적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민주주의’이다.”<위의 글, 124쪽> |
진보적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중간에 위치한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라면, 그것과 자유시장경제체제 간의 관계는 그것이 중간상태로부터 이행하고자 하는 종착점에 따라 판단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도착하려는 방향이 자유민주주의라면 그것과 자유시장경제체제간의 관계는 우호적이다. 그에 반해 그것이 궁극적으로 도착하려는 방향이 사회주의라면 그것과 자유시장경제체제 간의 관계는 적대적이다.
▲ '통진당 해산' 퍼포먼스를 진행하는 대학생들. |
통진당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통진당의 진보적 민주주의가 어느 쪽을 지향하는 것인지에 관해 통진당 이론가들의 해설을 들어보자. 진보적 민주주의의 지향성에 관해 박경순은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대안 사회는 자유민주주의의 복원의 길도 아니며, 그렇다고 사회발전단계를 뛰어넘는 사회주의의 길도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길이 있는가? 21세기 진보적 민주주의의 길이 있다. 21세기 진보적 민주주의란 자본주의적 소유관계 철폐와 사회주의적 소유관계 수립을 당면 목표로 내세우지 않는다.” <위의 글,115쪽> “자본주의 제도를 부정하지는 않으면서, 민중의 이익을 선차적으로 내세우며, 민중에 복무하는 민주주의 제도가 과연 존재할 수 있겠는가? 역사적으로 이러한 제도는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일시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역사적 경험은 이러한 제도가 일시적 과도적으로 존재하는데 그치지 않고 장기간 존속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베네수엘라 등지에서 발전되고 있는 민주주의 체제가 바로 그것이다.” <위의 글, 116쪽. 위 인용문은 진보적 민주주의가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일시적 혹은 장기간 존재하는 제도임을 확인해주며, 동시에 진보적 민주주의가 인민민주주의와 같다는 것을 확인해준다. 전문가들은 베네수엘라의 제도를 인민민주주의와 같은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사회주의는 평등을 가장 핵심적 가치로 내세우고 사회적 불평등을 확대 재생산하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폐절해 실질적 평등세상을 구현하자는 이념이었고,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전 세계 진보적 민중의 희망의 푯대로 되었었다. 하지만 현재 우리사회의 주객관적 조건에서…사회주의적 평등만을 앞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 사회주의 문제는 현재 한국의 현실에서는 매우 신중하게 판단하고 접근해야 한다. 한국 사회의 중심적 주요한 모순과 과제는 자본주의이냐 사회주의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분단체제의 현실에서 광범한 대중들이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정서적 이념적 거부감이 상존하고 있는데 사회주의이념을 앞세우는 것은 진보운동의 대중적 지반을 약화시킬 뿐이다.…자본주의 체제를 지양하고 사회주의 체제로 나가는 방식으로 평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한 것은 아니다. 일단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당면 긴급하게 제기되고 있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하고 절박하다.”<위의 책, 142-143쪽.> |
▲ 자유경제원이 1일 자유경제원 회의실에서 주최한 <자유시장경제의 적, 통진당의 해산을 조명한다> 토론회에서 토론하고 있는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
진보적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간의 관계
통진당 정책기획실장 최기영(전 민노당 사무부총장)은 진보적 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간의 관계에 대해 박경순보다 더 직설적인 표현으로 해설한다. 그에 관한 최기영의 해설은 다음과 같다.
“민주노동당이 사회주의적 지향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당면한 진보적 민주주의 변혁단계를 무시하고 현 단계에서 사회주의 정치노선을 바로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좌편향이다. 그것은 민주노동당이 통일전선적·대중적 성격을 상실하는 좁은 길로 들어감을 의미한다. 민주노동당은 노동계급만의 계급정당이 아니라 노동계급을 비롯한 광범한 민중을 총망라하는 통일전선적 대중정당이 되어야 한다.…민주노동당이 계급정당으로 변질되면 변혁적 집권을 바라볼 수 없으며 결국 왜소한 진보라는 이름을 단 군소정당의 하나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최기영, 『나의 사랑 민주노동당: 민주노동당 10년의 기록』(민주노동당, 2009), 292-293쪽> “진보적 민주주의 개혁은…자본주의를 정상 운영하지만 ‘주요산업의 국유화’ 등 자본 자체를 소멸시키는 부분적 개혁 과정을 동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반의 개조과정은 자본의 소멸이 중심이 아니라…일반 민주주의 개혁에 방향과 초점이 있다. 이는 우리 사회의 생산력이 이미 높은 수준에서 변화를 요구하지만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준비정도가 높지 못한 것과 관련된다.”<위의 책, 291쪽> “진보적 민주주의는 역사적 수정주의로서의 사민주의는 배격하지만 복지국가 모델이 가진 일부 장점을 수용한다.…일각에서 주장하는 사회주의 이념은 우리사회, 변혁의 성격에 비해 과도한 목표를 설정하는 좌편향이다. 그뿐 아니라 민주적 사회주의론도 사회연대전략을 통해 대자본과 부르주아 국가에 대한 환상을 유포하고 노동계급을 주체가 아닌 사업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명백한 우편향이다. 반면에 진보적 민주주의는 민족의 자주성과 민중 복지의 견지에서 사회의 전 부분에 대한 공공성을 확대 강화하는 변혁적 진보이론이다.”<위의 책, 291-292쪽> |
민노당 미국동부지역위원장을 역임했고, 현재 통진당의 해외당원일 것으로 추정되는 재미 한인 한호석은 그의 인터넷 블로그 『변혁과 진보』에 게재한 글들을 통해 진보적 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간의 관계를 매우 노골적인 표현으로 해설한다. 그에 관한 한호석의 언급들은 다음과 같다.
“사회변혁을 포기하고 개량에 안주하는 비변혁적 사민주의도 아니고, 현실과 동떨어진 급진적 사회변혁을 꿈꾸는 좌파적 사회주의도 아니고, 오직 이 땅의 현실에 부합되는 과학적 사회변혁사상인 진보적 민주주의를 당의 정치이념으로 채택한 것은 거대한 정치적 의의를 가진다.…진보적 민주주의는 사회주의에서 이탈한 우경적 정치이념이 아니라, 사회주의를 실현해가는 긴 노정에서 사회주의 초급단계를 규정한 정치이념이다.” < 한호석, 「어떤 성격의 당이 진보적 민주주의 실현하는가?」, 『변혁과 진보』(50) (2011년 10월 15일).> “진보적 민주주의는…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이행단계의 민주주의다.”<한호석, 「민주주의 본질, 코뮌주의 이상, 사회주의 미래」, 『변혁과 진보』 (59) (2011년 12월 16일)> “통합진보당에게는 다른 정당이 갖지 못한 설계도가 있다. 진보정치 설계도가 그것이다. …통합진보당 창당 자체가 진보정치 설계도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었다.…진보정치 설계도…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진보적 대중정당을 건설하여 정권교체를 실현함으로써 자주적 진보정권을 세우는 집권과정을 설계한 것이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다. 자주적 진보정권이 세워진 이후 더 높은 단계의 사회역사적 발전과정을 설계한 설계도는 진보정치 설계도보다 더 복잡해서 앞으로 별도로 연구하고 작성해야 할 것이다.”<한호석, 「설계도를 움켜쥐고 다시 일어서라」, 『변혁과 진보』 (81) (2012년 6월 8일)> “진보적 민주주의는 정치체제의 변혁과 경제체제의 변혁을 동반하는 두 단계 사회변혁의 발전과정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사회역사발전의 주체로 일어서는 저 눈부시게 새롭고 멋진 세상에 당당히 내걸 새로운 사회의 첫 번째 이름이다.”<한호석, 「세 가지 강령이 서로 엮어지는 결합방식」, 『변혁과 진보』(98) (2012년 10월 19일)> |
▲ 자유경제원이 1일 자유경제원 회의실에서 주최한 <자유시장경제의 적, 통진당의 해산을 조명한다> 토론회의 전경.
통진당은 시장경제체제와 적대적인 정당
위에서 인용·소개한 통진당 이론가들의 진보적 민주주의의 지향에 관한 해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진보적 민주주의는 정치체제의 변혁(혁명)과 경제체제의 변혁을 동반하는 두 단계 사회변혁 과정의 제1단계 변혁 강령이며, 그 1단계 변혁이 성공하면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하게 된다.
둘째, 진보적 민주주의는 사회주의에서 이탈한 우경적 정치이념이 아니라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긴 노정에서 사회주의 초급단계를 규정하는 정치이념이다.
셋째, 진보적 민주주의는 궁극적으로 사회주의 실현을 목표로 삼되 주객관적 조건이 즉각적인 사회주의 실현을 허용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사회주의 실현을 당면 목표로 삼지 않고, 자본주의를 부분적으로 유지하고 부분적으로 폐지하면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체제이다.
넷째, 진보적 민주주의는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존재하는 것이나 과거와는 달리 오늘날에는 장기간 존속할 수도 있다.
다섯째, 진보적 민주주의는 사회민주주의를 배격하고 민주적 사회주의도 반대한다. <※사회주의를 지향하면서 사회민주주의를 배격하고 민주적 사회주의도 반대한다는 것은, 그들이 지향하는 사회주의가 혁명적 사회주의임을 말해준다. 왜냐하면 사회주의의 하위 범주는 사회민주주의, 민주적 사회주의, 혁명적 사회주의 3개뿐이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이 볼 때, 통진당의 이념인 진보적 민주주의는 사회주의로 가기 위한 과도적 형태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그러한 진보적 민주주의를 이념으로 표방한 통진당은 자유시장경제체제와 적대적인 정당이라고 확언할 수 있다. 통진당은 단지 통진당과 한국사회의 제반 여건을 고려하여 자유시장경제체제에 대한 자기들의 적대적 입장을 노골적으로 천명하지 않는 전술을 취하고 있을 뿐이다.
시장경제에 대해 부정적인 통진당 이론가들
통진당은 자유시장경제체제에 대해 적대적인 자기들의 입장을 노골적으로 천명하지 않는 전술을 취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의 이론가들은 자유시장경제체제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숨기지 못한다. 한 예를 들면, 박경순은 자유시장경제체제(사유재산 제도, 시장경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사적 소유가 갖는 폐해가 크다고 해서 현재 한국경제의 현실에서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자체를 폐절시키는 사회주의적 변혁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불가능하다. 하지만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로부터 파생되는 폐해를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제도 자체는 유지하되, 신자유주의 체제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회적 소유형태를 확대해나가야 한다.…21세기 진보적 민주주의 체제에서 사회적 소유 형태들은 경제에 대한 민중적 통제를 보장함으로서 민중들이 한국 경제의 명맥을 틀어쥐고 자체의 힘과 전략전술에 따라 자주적 발전노선을 구현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물적 토대로 작용한다.” <박경순, 앞의 글, 191쪽.> “시장에 대한 모든 통제를 거부하고 시장의 완전한 자율을 내세우는 시장만능주의는 적자생존의 정글의 법칙을 전 사회적으로 강요함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파괴하고,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적 불평등을 극대화한다. 민생을 파괴함으로서 경제의 지속적 발전가능성을 막아버리고 경제위기를 주기적으로 반복하면서 경제적 비효율성을 극대화시킨다.” <위의 글, 193쪽.> “21세기 진보적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사적 소유와 시장의 절대성을 부정하지만, 사적 소유와 시장을 전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사적 소유와 시장은 어디까지나 민중의 이익에 복무하는 범위와 한도 내에서 허용될 뿐이다. 여기에서는 다양한 사회적 소유형태를 장려하고, 시장에 대한 민중적 통제를 강화해 시장의 횡포를 차단하고 건전한 시장을 육성한다.” <위의 글, 116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