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2050년 탄소 중립을 선언한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도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대책을 촉구했다. 탈원전을 강조해 오던 대통령의 궁극적으로 탈탄소를 표방한 것은 늦었지만 환영할 만 일이다.
한국은 그동안 높은 탄소배출량과 해외 석탄발전 투자 등으로 국제사회로부터 ‘기후 악당’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번 선언으로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세계적인 추세에 한 발 늦었지만 동참했다는 것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탄소중립이란 이산화탄소 실질 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는 개념이다.
문제는 탈원전을 추진하면서 탄소 중립을 이루어낼 수 있느냐다. 원전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무탄소 에너지원이다. 반면 석탄은 온실가스의 주범으로 꼽힌다. 정부는 청정에너지원인 원전 비중을 대폭 낮추면서 탈석탄화를 동시에 이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야심찬 도전(?)이다.
정부의 입장과는 달리 국내기업들은 울상이다. 제조업 중심의 한국 기업의 충격은 더 크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최근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기업 중 72.9%가 탄소중립 정책에 따른 환경규제 강화로 기업 부담이 늘 것이라고 답했다.
119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다. 환경규제로 인해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공장을 운영하는 철강, 석유화학 등 제조업의 경우 탈원전으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에 온실가스 감축 설비 투자 등의 비용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발등에 불이 붙은 기업들은 205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려면 정부가 산업계 의견을 적극 수렴해 현실성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총은 제반여건 조성이 필요하다며 시설 개선 투자비용 지원이나 인센티브 제도 등의 지원책이 뒤따라야 한다고 주문했다.
일부에서는 2050년까지 온실가스를 2017년 대비 40% 감축만 해도 철강·석유화학·시멘트 업종의 저탄소 전환비용이 400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후위기 대응 차원에서의 탄소중립은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인 흐름이다. 하지만 정부가 에너지 전환 정책을 급속하게 추진하면서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도 함께 보완하고 그에 걸맞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감사원(원장 최재형)이 월성1호기 조기폐쇄결정 과정에서 일부 부적절한 것들이 있었음을 밝히는 감사결과를 내놨지만 정부는 뭉개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8일과 3일 탄소 중립을 선언하고 대책을 주문했다. 탄소중립의 시작은 탈원전 정책의 폐기에서 출발점을 찾아야 한다. /사진=연합뉴스
더욱이 정부가 탄소중립을 선언하면서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2018년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은 7억2800만t이고 그중 상당 부분은 석탄 발전에 의해 발생했다. 탈원전이 본격화된 2017년에는 2016년 대비 석탄 발전량이 증가하면서 이산화탄소 증가는 2100만t에 이른다.
2018년에는 원자력 발전량이 2016년에 비해 3.3GWy 감소했다. 이는 주로 액화천연가스(LNG)로 대체됐다. 2016년과 비교해 LNG 발전은 3.6GWy가 늘면서 1150만t의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를 유발했다. 원자력 발전의 증감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이 수치로 판명됐다.
석탄 발전을 줄여야 하는 것은 탄소 중립으로 가는 첩경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탈원전을 바탕으로 한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이다. 원자력 발전량이 줄어드는 부문은 LNG 발전 확대로 충당하게 돼 있다. LNG는 석탄보다 온실가스 발생량이 적지만, 석탄의 45∼60%가량의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킨다.
뿐만 아니다. LNG는 이용 과정에서 누출되는 메탄가스의 온실가스 효과가 이산화탄소의 80배가 넘는다. 결국 탄소 중립을 선언하고 원전을 대체하는 LNG 의 확대로는 기후변화에 대처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정부가 적극 추진하는 태양광과 풍력도 기후와 지형적 측면에서도 한계가 있다.
답은 하나다. 탄소 중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함께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2060 탄소중립’ 목표를 세운 중국은 태양광·풍력만으로는 석탄을 대체하기 어렵다고 보고, 재생에너지 확대와 더불어 원전 건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기술력과 안전성을 인정받는 원전 강국이었다. 한국의 3세대 원전인 APR 1400은 프랑스·일본도 받지 못한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설계 인증을 받았다. 미국 이외 국가에서 NRC 인증을 받은 것은 한국이 유일하다.
40년 역사를 지닌 한국 원전이 100년 넘게 기술을 개발해온 미국, 프랑스, 러시아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하지만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분위기가 급변했다. 신한울 3·4호기 등 신규 원전 6기의 건설이 백지화됐고, 7000억원을 들여 개·보수를 마친 뒤 계속 운영될 예정이었던 월성 원전 1호기는 조기 폐쇄됐다.
이대로라면 신고리 5·6호기가 한국에서 마지막 원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주요 설비 납품이 끝나는 내년 3월 이후에는 국내 원전 산업이 사실상 중단된다. 이후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이나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도 없다. 두산중공업은 직격탄을 맞았고 수백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정부는 원전 해체 시장 진출과 해외 원전 수주를 통해 원전의 명맥을 유지하겠다고 한다. 수천억이 들어간 멀쩡한 원전을 세우고 나라와 경쟁력을 잃은 기업에 일감을 주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월성1호기 조기폐쇄'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 감사원(원장 최재형)의 감사보고서는 뭉개고 있다.
원자력은 지구상의 에너지 중 가장 저비용 청정에너지원이다. 문재인 정부가 꿈꾸는 탄소 중립 실현을 위해서도 탈원전 정책은 하루 빨리 폐기돼야 한다. 탈원전 폐기가 탄소 중립의 지름길이다. 원전 르네상스 시대를 우리만 거꾸로 가고 있다.
[미디어펜=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