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가 심화되고 있는 우리나라에 노인들의 정보격차가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언택트 사회로의 전환이 가속화 되고, 오프라인 경제가 쇠퇴하면서 노인들의 정보소외 현상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모바일 메신저, 온라인 뱅킹 등은 노인들에는 또 다른 장벽이다. 코로나19 이후 다중밀집시설 출입에 필수인 QR코드 역시 노인들에게는 쉽게 다가오지 않는 딴 세상이다. 스마트폰 보급율이 95%를 넘고 있지만, 온라인 세상에서 노인들의 삶은 더욱 고립되고 고달퍼지는 게 현실이다.
미디어펜은 '정보문명 딜레마-스마트 외딴섬 노인들' 심층 기획 시리즈를 통해 노인들의 정보소외 현실과 문제점을 짚어보고, 초고령화 시대를 앞두고 노령층의 정보격차 해소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이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모색해 본다. <편집자주>
[기획] 정보문명 딜레마-스마트 외딴섬 노인들
<시리즈 순서>
①터치로 연결된 스마트 세상…더 고독한 노인들
②스마트폰 없는 삶…'불편은 기본, 돈은 덤으로'
③언택트시대…스마트폰으로 '자유' 찾는 노인들
④혁명의 발상지 영국, 교육으로 디지털 격차 줄인다
⑤전문가들이 보는 노인들의 정보 소외, 해법은?
[미디어펜=김하늘 기자] 돈이 있어도 사용할 수 없는 세대, 먹고 싶은 게 있어도 마음 편히 사 먹을 수 없는 세대, 살아가면서 당연히 누릴 수 있는 다양한 이득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세대.
IT강국 대한민국에서 노인들을 위한 세상은 없다. 간편결제로 물건을 사고, 커피 한 잔도 키오스크로 주문을 하는 시대지만 디지털 역량이 낮은 고령층은 IT 기술의 그림자에 가려져 설 자리가 점차 좁아지고 있다.
2017년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진입한 한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45년엔 세계에서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2020년 기준 전체 인구 대비 노인 인구 구성비는 15%에 달한다. 5년 후인 2025년에는 초고령사회 기준인 2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급격하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국내에선 이에 발맞춘 선진적 정보화 교육과 노인들을 배려한 환경 부재로 고령층들의 사회 속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고령층들에게 특히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은 크게 △물리적 제약 △언어적 장벽 △포스트코로나 서비스 적응 등이 꼽힌다.
◇스마트폰 "'터치'가 가장 어려웠어요"
스마트폰 사용에 있어서 고령층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은 무엇일까. 흔히 와이파이 접속, 핫스팟 연결 등 복잡한 작업들을 떠올지지만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정보화교육 등에서 만난 노인들에게 가장 어려운 스마트폰 교육은 가장 기본 기능인 '터치'였다. 젊은 세대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쉽게 이용하는 동작 기능이 이들에겐 물리적 제약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스마트폰은 아이콘을 한번 살짝 누르고 마는 것인지, 꾸-욱 길게 누르고 있어야 하는 것인지에 따라 수행해야하는 작업들이 달라진다. 젊은세대들에게 체화돼 있는 터치 기능은 노인들에겐 새로 배우고 익혀야할 고급 기술인 셈이다.
이 때문에 젊은 세대들이 너무도 쉽게 옮기는 스마트폰 바탕화면 속 아이콘은 고령층에겐 단지 화면에 박혀 움직이지 못하는 돌이다.
실제 고령층 정보화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최윤정 강사는 교육 진행시 가장 어려운 점으로 '동작' 교육을 꼽았다. 최 강사는 "스마트폰 교육의 순서는 어르신들께서 순조롭게 따라오지만 문제는 동작"이라며 "터치 등 동작 교육은 손이 떨리거나 반응 속도가 느리게 작동하는 등 물리적으로 따라주지 않는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떨리는 손과 어두운 눈으로 작은 아이콘에 제대로 된 터치 한번도 어려운 이들에게 버튼키 2개를 동시에 누르는 '캡처'는 고난이도의 기술에 속한다.
최근엔 손을 넘기는 동작만으로도 캡처를 할 수 있는 스마트폰도 출시됐지만 고령층들에겐 다양한 기능이 포함된 최신의 고가 스마트폰은 사치나 다름없다.
고정현 한국정보화진흥원 수석은 "많은 고령층들이 터치나 드래그 등의 동작 기능을 수행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고령층들의 정보화 교육을 위해선 하루종일 동작기능만을 수행하는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에는 목소리만으로 동작을 수행할 수 있는 기술도 발전되고 있다"며 "이와 같은 기술이 더욱 발전하게 된다면 고령층들의 IT 기술 이용 문턱은 다소 낮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꼬부랑 글씨가 뭐라는겨"…알파벳 교육도 시급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흔히들 내뱉는 '클릭' '와이파이' '터치' 등의 용어는 모두 '외국어'다. 하다못해 공용 와이파이를 사용할 때 조차 영어로 된 이름을 찾아 알파벳의 비밀번호를 적어야한다.
국내에서 영어교육이 초등학교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된 시기는 1997년도다. 국내 노인복지법에 따라 우대하는 기준인 65세는 1956년생으로 고령층들이 영어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 대전에 거주하고 있는 79세 박수옥 할머니는 "온통 영어로 돼 있어 스마트폰 사용이 힘들다"며 "클릭이 뭔지, 터치가 뭔지 처음에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스마트폰 내 기호 역시 노인들에겐 해석해야할 또 하나의 암호다. 톱니바퀴 모양 혹은 작대기 3줄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젊은이들에겐 메뉴, 환경설정을 눌러보라고 요청했을 때 한번에 해당 아이콘을 누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인들에겐 해석 못할, 새로 배우고 익혀야할 그림일 뿐이다.
고 수석은 "고령층들이 받아온 교육 수준에서 영어가 익숙한 스마트폰 환경은 배우기 힘든 것이 사실"이라며 "고령층 정보화 교육에 앞서 알파벳부터 교육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와이파이 이름이나 비밀번호 설정 등이 영어로만 제공되는 것이 개선될 필요가 있다"며 "IT기술 기기와 서비스 개발 업체의 개선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출입명부를 손으로 쓰지 말고, 전자출입명부를 찍으라고?
코로나19 여파 이후 맞이한 뉴노멀시대는 젊은이들 역시 적응하기 힘들만큼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공공기관이나 식당 출입시 전자출입명부를 등록하고, 대면 만남이 줄어듦에 따라 화상 서비스가 늘어나는 등 전 세대가 새로 적응해야할 기술들이 부지불식간에 늘어났다.
최근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 입장할 때마다 필요한 전자출입명부는 크게 카카오톡과 네이버 QR코드 등 2가지 방법으로 이용이 가능하다.
69세 차원희 할머니는 "주변에서 QR코드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무엇인지 전혀 몰라 답답했다"며 "식당에 방문할 때 수기로 작성하지 않고 젊은이들과 같이 QR코드를 인식하고 방문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로그인된 채 사용하고 있는 카카오톡 QR코드 입력 방식은 고령층에겐 그나마 간단한 방식이다. 반면 네이버로 넘어가게 된다면 로그인과 회원가입이라는 문턱이 이들을 가로 막는다.
본인인증을 위한 통신사 선택부터 난항이다. 의외로 고령층들은 본인들이 이용하고 있는 통신사 정보를 알지 못한다. 해당 고비를 넘어가면 아이디와 패스워드 설정이 또 한번의 벽으로 다가온다.
전자출입명부 교육을 받은 75세 전창권 할아버지는 한번에 교육을 이해하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 할아버지는 "한번 교육하고 바로 따라하긴 쉽지 않다"며 "집에 가면 또 잊을 수도 있어 구청 같은 곳에서 시범적으로 활용해보고 싶다"고 전했다.
이에 최근엔 방문자가 QR코드를 찾아 인식하는 방법이 아닌 매장의 QR코드를 고객이 스캔해 신상을 적는 방식도 제공되고 있다.
고 수석은 "과거엔 사람이 기술에 맞추는 시대로 기술을 이해하기 위해 사람이 별도의 교육을 받아야했다"며 "그러나 이젠 기술이 사람에게 다가오는 시대로 변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인간이 기술에게 다가가는 노력이 줄어들 수 있음을 의미한다"며 "이같은 기술의 발전이 고령층의 정보격차 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미디어펜=김하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