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이라는 새로운 환경은 무차별적이다. 그들만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범죄는 왜곡된 성에 대한 죄의식조차 없다. 이는 사이버상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픈 현실이다.
단지 성적 모럴 해저드가 아니라 사회 깊은 곳에서 오랫동안 암적인 존재로 자라온 고질적 병폐이기도 하다. 잘못된 성 관념이 악의 세습으로 이어지면서 사회 통합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혹마저 들게 한다.
이에 본보는 디지털 성범죄의 현황과 구조적 문제 진단, 범죄 엄단과 예방을 위한 양형기준 강화, 성인지 지수 향상, 해외 사례 등을 중심으로 '내 손안에 악마가 산다 - 제2의 n번방 막아라'를 주제로 심층 기획시리즈를 연재한다.
시리즈 순서: ①n번방 사태로 본 디지털 성범죄 현주소/②악마는 디테일에 있다?…2차 피해는/③'솜방망이' 처벌이 부른 악순환/④피해자 위한 사회 안전망은?/⑤[르포]아이들 향해 랜선 타고 엄습하는 '검은 손'…영국에서는/⑥[르포]미국에서 n번방 사건 일어났다면?/⑦[르포]스웨덴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시킬 중대 범죄"/⑧'제 2의 n번방 막아라' 전문가들 목소리는[편집자 주]
아이다 오스텐손 메이크 이퀄 대표/사진=메이크 이퀄
[미디어펜=스웨덴 스톡홀름/예테보리 김상준 기자]“스웨덴에서 n번방 사건이 일어났다면요? 관련 범죄자들은 곧바로 격리되고 영원히 사회로 돌아올 수 없게 될 겁니다”
스웨덴의 양성평등 및 여성 인권 보호 단체 메이크 이퀄(MAKEEQUAL)의 창립자 아이다 오스텐손(Ida Ostensson) 대표는 국내의 n번방 사건에 대해 전해듣고 이처럼 말했다.
코로나19가 창궐해 세계를 연결하는 하늘길이 극도로 위축됐지만,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 현지로 이동해 지난 8일 오스텐손 대표를 직접 만났다. 오스텐손 대표는 “한국에서 일어난 그루밍, 성 착취 등의 범죄는 성폭력 범죄 중에서도 악질적인 형태로, 스웨덴에서는 비슷한 사례가 일어난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만약 스웨덴에서 n번방과 유사한 범죄가 일어나면 가해자들은 즉각적인 격리 후 정신 감정을 받게 될 것”이라며 “n번방과 같은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는 가해자들은 정상이라고 볼 수 없기때문에 철저하게 정신 감정을 하며 사망할 때까지 병원에 가둬 사회와 완전한 격리를 시킨다”고 밝혔다.
실제로 스웨덴에서는 여성 관련 성범죄자들의 정신 감정을 정밀하고 심층적으로 진행하면서, 사이코패스 여부 등 정신 상태에 대한 감정 결과를 처벌에 적용한다.
정신 감정 결과에 따라 ‘사회와 영원한 격리’ 혹은 감옥에서 징역형을 살게 되는 것으로 나뉘는데, 오스텐손 대표는 “n번방 범죄자들의 경우 정신적으로 큰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돼, 사회와 영원히 격리되는 병원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한번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되면 다시 나오는 경우는 무척 희박하다”고 덧붙였다.
메이크 이퀄이 주관한 여성 성범죄 예방 및 스웨덴 이민자 여성을 위한 토론회/사진=메이크 이퀄
그는 “스웨덴은 범인을 사형시키지 않는 인권 선진국이긴 하지만, 그에 걸맞은 처벌을 하기 때문에 성범죄 등의 범죄율이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며, “n번방과 같은 끔찍한 사건이 반복되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여성 보호센터 아사 위코스키 박사…한국피해 여성들 적절한 보호 받는지 의문
또 다른 전문가 아사 위코스키(Asa Witkwski) 박사를 지난 10일 스톡홀름 여성 보호센터 본부에서 만나 대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위코스키 박사는 성범죄를 비롯해 가정폭력 등 여성에 대한 각종 범죄에 대한 피해자 보호를 책임지는 정부 기관인 여성 보호센터(kvinnofridslinjen)의 대표로 활동중이다.
위코스키 박사 역시 한국에서 일어난 n번방 사건에 대해 충격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스웨덴에서는 유사한 범죄가 일어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자신들이 일하는 여성 보호센터에서 한국의 n번방 사건 사례를 연구하고 대비해야겠다는 뜻을 밝힌 위코스키 박사는 한국의 피해 여성들이 체계적으로 보호를 받고있는 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아사 위코스키 박사/사진=스웨덴 여성 보호센터
위코스키 박사는 “스웨덴에서 n번방 사건이 일어났다면, 스웨덴 전국 각지에 체계적으로 조직돼있는 자신들의 상담원 및 보호시설에서 피해 여성에 대한 세심한 관리 및 보호가 진행됐을 것”이라며 자신 있게 말했다.
스웨덴은 한국 면적의 약 4.4배에 달할 정도로 넓은 국토를 보유하고 있다. 유럽 내에서도 스웨덴은 상당히 큰 나라에 속한다.
그럼에도 스웨덴 여성 보호센터는 전국 각지에서 원활하게 운영되면서 수도인 스톡홀름에 위치한 중앙 본부와 긴밀한 협조가 가능해 인권도 복지의 한 부분으로 평가한다는 스웨덴의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위코스키 박사는 여성 보호센터는 피해자가 원하는 대로 맞춤 케어가 가능하다는 점을 자신들의 최대 장점이라 평가했다. 실제로 피해자가 보호받을 장소가 필요하면 즉각 준비된 시설로 이동할 수 있으며, 피해자가 원하는 방식대로 △온·오프라인 상담 △외상 치료 △정신과 점검 등 피해 여성에 대한 세밀한 관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위코스키 박사는 “이와 같은 피해자 보호는 또 다른 비극을 생기지 않게 하려는데 주목적이 있다”며 “성범죄 피해 여성은 폭행 등 일반적인 범죄를 당한 여성보다 자해·자살 등 극단적인 선택을 할 확률이 현저히 높아 집중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서 n번방 피해 여성들의 적절한 보호가 이뤄지지 않아 정신적인 혼란을 호소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스웨덴에서는 과도하다 싶을 정도의 여성 피해자 보호가 이뤄지고 있다. 스웨덴과 한국의 사회 안전망에 대한 차이를 확연히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이민자·유학생 여성들도 스웨덴 국민과 똑같은 관리를 받을 수 있다는 점과 그들을 관리할 수 있는 전문가가 상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각 나라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관리 인력을 운영하고 실제로 요청이 있을 때 즉각 대처할 수 있다는 점은 스웨덴이 선진화된 여성 피해자 보호 정책을 펼치고 있음을 확인케 했다.
스웨덴 여성 보호센터는 이민자 여성, 외국인, 장애인 등 누구든지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홈페이지를 구성했다. 또한 성범죄 사례별로 자세하게 분류해둬 즉각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사진=스웨덴 여성 보호센터 홈페이지
실제로 스웨덴은 1990년대 이민자 우대 정책을 펼치면서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된 다민족 국가이다.
위코스키 박사는 코로나19를 예를 들며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 환자들을 돌봤지만, 초기 사망자는 이민자들에서 많이 나왔다”며 “여성 보호센터 역시 해당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이민자 여성이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는 체계를 더욱 공고히 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n번방 사건과 같은 비극적인 사건은 더 이상 일어나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피해 여성들에 대한 관심과 보호가 국가적으로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웨덴 여성 보호센터가 더욱 높이 평가받을 수 있는 이유는 피해자들에 대한 철저한 관리뿐 아니라, 피해 사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임상을 통한 결과를 향후 피해자 관리에 적용하는 데 있다.
스웨덴 여성 보호센터는 피해자들을 직접 대담하는 상담사·치료사들도 있지만, 스웨덴 최고 권위의 대학 웁살라 대학에 연구 기관을 운영하며 심층적인 분석을 병행하고 있다.
웁살라 대학에서는 피해 여성들의 ‘재사회화’를 위한 관리 방법, 치료 등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 활동을 벌이며, 현장에 있는 관리 인력들과 끊임없는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예테보리에서 만난 일반 시민…‘n번방사건…나치 유대인 학살급의 반인륜적 행위’
예테보리 중앙역 안팎에서 이뤄진 거리 인터뷰. 거리에서 만난 스웨덴 시민들은 한국에서 일어난 n번방 사건을 스웨덴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사진=미디어펜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자리를 옮겨 제2의 도시 예테보리에서 취재를 이어갔다. 예테보리는 항구 도시로 우리나라 부산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 스웨덴 도시다.
예테보리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시내 중심인 중앙역 광장에서 n번방에 대한 스웨덴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거리 인터뷰를 시작했다.
스톡홀름에서 태어났지만, 예테보리 IT 관련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는 아니카 안데르손(남·29)은 “한국에서 일어난 n번방 사건에 대해 예상할 수 있는 범죄”라면서 스웨덴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 중 가장 충격을 적게 받은 듯 보였다.
안데르손은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망은 n번방 사건의 촉매제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분석하며 “스웨덴에서 그런 일이 지금까지 없었던 것은 통신망이 한국처럼 빠르지 않아, 영상 콘텐츠 공유를 하는 행위 자체를 답답하게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n번방 사건의 피해자들이 당한 성 착취 방식은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한 것과 같은 반인륜적인 행위”라며, “스웨덴에서 만약 같은 사건이 벌어졌다면 가해자들은 무기징역 혹은 정신병원에 평생 갇히게 될 것”이라며 오스텐손 대표와 비슷한 의견을 냈다.
중앙역 광장에서 두 번째로 만난 사람은 한눈에도 인도계 여성으로 보이는 타구르 싱(여·33)으로 어머니는 인도인, 아버지는 프랑스인이며, 자신이 12살 때 프랑스에서 스웨덴으로 이주했다고 밝혔다.
예테보리에 거주 중인 타구르 싱은 어머니는 인도인, 아버지는 프랑스인인 스웨덴 이민자다. 21년째 스웨덴에 거주 중이라는 그녀는 어머니의 고향인 인도와 달리 스웨덴은 성차별을 느낄 수 없고, 여성으로서 안전하게 보호받는 느낌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사진=미디어펜
스웨덴 이민자가 느끼는 여성 인권 및 보호에 대한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싶어 인터뷰를 요청했다. 기자의 질문에 그는 “한국에 n번방 사건은 인도 현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범죄들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언론에 거의 공개되지는 않지만, 인도에서는 유사한 성 관련 사건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며, “친척들이 있는 인도를 방문하고 싶었지만, 어머니가 절대 허락하지 않아 인도 방문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여행을 좋아한다는 그는 “벌써 21년째 스웨덴에 살고 있지만, 여성이라서 차별을 받는다고 느끼거나, 동양인으로서 성적인 조롱이 되는 등 불편함을 느낀적은 한번도 없었다”며 “오히려 아버지의 고향 프랑스 파리에 갔을 때 성적 수치심을 느끼는 안 좋은 일들을 겪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스웨덴에 인도를 비롯해 중국인, 남부 유럽인 등 이민자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지난 15년 간 여성의 인권 및 보호 정책이 퇴색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한국에서 n번방과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은 사회적 안전망이 결여 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미디어펜=스웨덴 스톡홀름/예테보리 김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