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서소문동 소재 대한항공 빌딩 간판./사진=미디어펜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서울시가 대한항공 소유 송현동 부지에 대한 국민권익위원회 조정문 체결을 앞두고 갑자기 입장을 변경함에 따라 매각 대금 지급이 불투명해졌다. 때문에 자구책 마련에도 불똥이 떨어져 대한항공 측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26일 대한항공에 따르면 서울시는 종로구 송현동 소재 대한항공 소유 부지에 대한 조정문 체결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입장을 바꿨다. 상당수 합의가 이루어진 조정문안을 두고 서울시가 갑자기 시의회 부동의 가능성을 언급한 탓이라는 전언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서울시가 조정문안의 구속력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문구 수정을 요구해왔다"고 말했다.
이미 권익위가 작성한 최종문안에 대해 대한항공과 LH는 이견이 없다는 의사를 공문으로 전달한 만큼 서울시의 태세 전환은 사실상 권익위 중재를 뒤엎겠다는 것이라는 게 대한항공 측 입장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이번 조정의 골자인 'LH를 통한 제3자 매각안'을 제안한 것이 다름 아닌 서울시인데 하루 전날에 문구를 갈아엎겠다고 나선 것은 극히 무책임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한편 조정이 무산되더라도 서울시는 공원지정을 강행한다고 밝힌 만큼 대한항공은 송현동 부지를 현금화할 수 없게 된다.
권익위가 작성한 조정문에는 계약시점과 대금지급시점이 명기돼 있다. 권익위법상 조정이 민법상 '화해'의 효력을 지닌다. 따라서 이행청구권에 대한 조항도 명시된다. 권익위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조정문을 지난 16일 공문으로 대한항공·LH·서울시에 송부했고 의견 조회에 나섰다.
이후 권익위는 각 당사자의 수정의견을 반영해 20일과 23일 두차례 더 의견을 조회했다. 이 과정에서도 계약시점·대금지급시점·이행청구권에 관한 문구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다는 전언이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LH는 지난 23일 조정문안에 이견이 없다는 의사를 공문으로 최종 회신했다고 한다.
전날인 25일 서울시가 밝힌 입장은 '계약시점을 특정하지 않고 조속한 시일 내에 계약 체결하도록 노력한다'는 문구로 교체하자는 것이었다는 게 대한항공 관계자 설명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이와 같은 서울시의 요구는 조정문의 구속력을 빼놓자는 취지"라며 "한마디로 '안 되면 어쩔 수 없으니 배 째라'는 태도나 다름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업계에 따르면 서울시의 이 같은 태도는 서부면허시험장 부지를 둘러싼 논쟁이 격화되며 조정문에 대한 서울시의회 동의가 불투명해졌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조정문 서명을 위해서는 시의회의 사전 또는 사후 동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분위기가 좋지 않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서울시가 시의회 동의도 어려울 수 있다며 '노력한다'는 문구로 조정문을 수정하자고 하는 건 나중에 시의회의 부동의를 방패삼아 조정문을 이행하지 않을 수 있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시의회 통과가 부정적이라며 확약도 해줄 수 없다고 하는 건 결국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며 "결국 서울시 당국만 믿고 있다가 내년에 돈을 지급받지 못하면 경영난에 빠진 당사는 자구안을 이행하지 못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서울시는 이 문제가 대한항공 임직원의 생존이 걸린 문제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도 의문스럽다"고 언급했다.
대한항공은 내년까지 한국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 채권단이 1조2000억원을 지원한 것에 대한 자구안을 이행할 의무를 지고 있다.
서울 종로구 송현동 대한항공 소유 호텔 부지./사진=연합뉴스
서울시는 법률자문을 거쳐서 25일 최종 입장을 정했다는 입장이다. 한편 대한항공 측은 "여태까지 가만히 있다 이제 와서 법률자문을 핑계 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이런 문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권익위가 16일부터 수차례 의견을 조회했는데 지금까지 무얼 했느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18일 감정평가에 관련 문구에 관한 수정의견을 회신했다. 그러나 다른 문구에 대해서는 수정의견을 제출한 바 없고 지난 17일 권익위 주재로 대한항공 담당자가 만난 회의석상에 시 고문변호사를 대동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계약시점 등에 관한 문제는 한 차례도 언급된 바 없다는 게 대한항공의 주장이다. 현재 서울시 정보소통광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송현동 부지에 대한 법률자문 관련 공문은 지난 13일자가 마지막이다.
당초 대한항공은 고충민원을 통해 공원화를 중단하고 민간 입찰을 통한 매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권익위에 요청했다. 그런 와중에 서울시가 먼저 LH를 통한 3자 매수를 제안했고, 26일 조정문 체결을 앞두고 있었다. LH를 통한 매각이 무산될 경우 공원화가 취소되지 않는 이상 대한항공이 송현동 부지를 매각할 방법은 더이상 없게 된다.
현재 서울시는 이미 장기 미집행 공원화 사업에 1조 2902억원 규모의 지방채를 발행할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14조원 이상을 투입해야 한다. 때문에 서울시 스스로 내년까지 송현동 부지를 매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서울시가 문화공원을 지정한 다음 곧바로 보상에 나서지 않으면 10년 이상 버틸 수 있게 된다. 이는 곧 공원 결정 고시가 난 후 10년이 지나야 비로소 대한항공이 서울시에 부지 매수를 청구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대한항공의 자구안 마련 방안은 알 길이 없게 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