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조성완 기자]더불어민주당이 여야 간 “밀도 있게 협의”하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단독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 처리를 시도하고 나섰다. 야당이 즉각 원내투쟁을 선언하고 나선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국회가 거대 여당의 거수기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은 8일 야당의 반발 속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공수처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공수처장 추천위원회의 의결 정족수를 기존 7명 중 6명에서 3분의 2로 완화해 야당의 비토권을 무력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윤호중 법사위원장믄 국민의힘 의원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토론을 진행할 상황이 아니므로 토론을 종결하겠다"면서 토론 없이 안건을 표결에 부쳤다. 민주당 소속 법사위원 11명과 최강욱 열린민주담 의원이 기립해 찬성 의사 표시를 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와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7일 오전 “공수처창 후보 추천은 양당 원내대표가 밀도 있게 협의하기로 했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불과 20분 뒤 여당 법사위원들은 이 합의 사항을 깨고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공수처법 개정안 처리를 논의했다.
국민의힘이 안건조정위원회 신청으로 이를 저지했지만, 민주당은 “공수처법은 안건조정위 후에 처리할 수밖에 없다(백혜련)”면서 정기국회 마지막인 9일 본회의에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7일 오후 국민의힘 의원들이 더불어민주당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 등 입법 강행에 맞서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1소위 회의실 앞에 집결해 규탄 구호를 외치는 가운데 민주당 김남국 의원이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를 뚫고 회의장으로 들어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민주당이 공수처법을 강행하는 배경에는 결국 “밀리면 레임덕”이라는 우려가 당내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이 절정으로 치닫으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동반 하락했다. 이를 두고 당내에서는 “지지층이 주는 회초리”라면서 개혁 입법을 더욱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더욱이 이날 문 대통령이 “개혁 입법이 반드시 통과되고 공수처가 출범하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하면서 민주당의 퇴로는 사실상 차단됐다. 오로지 전진만이 남은 상황이다. 차기 대권을 위해 공수처 처리가 반드시 필요한 이낙연 대표 역시 “책임지고 권력기관 개혁을 입법화 하겠다”고 9일 처리를 못박았다.
야당은 ‘총력 투쟁’을 예고했다. 합법의 범위 내에서 모든 투쟁 수단을 동원해 공수처법 개정을 막겠다는 것이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민주당이 만드는 절차, 법의 부당성을 최대한 국민들에게 알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써거 저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국민의힘 의원들은 공수처법 개정안이 논의되는 법사위 앞 농성, 9일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 농성에 이어 본회의에서는 필리버스터로 공수처법 저지 투쟁에 나설 방침이다. 국민의힘 원내 관계자는 “거대여당의 독주를 막기에는 불가능하지만, 공수처법의 부당성을 이렇게라도 국민들에게 알리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의 독주를 두고 국회를 거수기로 전락시켰다는 한탄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의 하명대로 여당은 움직이고 있다”는 비판이다.
야당 법사위 간사인 김도읍 의원은 "청와대 하명대로 여당은 움직이고 있다"고 지적했으며, 김은혜 대변인은 "청와대는 발주 넣고 민주당은 이행하며, 180석을 앞세워 위원회별로 컨베이어 벨트 돌리듯 기계적으로 뽑아내는 건 절대 개혁 법안이 아니며 민주주의는 더더욱 아니다. 더 이상의 하명 그만두시라"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들이 7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더불어민주당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개정안 강행을 반대하며 철야농성을 진행 중이다./사진=국민의힘 제공
민주당은 현재 원내 174석이다. 여기에 열린민주당 등 범여권까지 합하면 전체 국회의원 의석수인 300석의 60%인 180석이 넘는다. 여기에 상임위원장 전석을 독식한 상황이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실제 민주당은 다수결로 각종 절차를 생략하면서 입법 독주를 진행 중이다. 심지어는 ‘소위원회는 축조심사(逐條審査)를 생략해서는 아니 된다’는 국회법 제57조 8항까지 지키지 않고 있다. 지난 7월 29일 민주당은 임대차 보호법을 법사위에 상정한 뒤 축조심사 등의 절차를 생략했다. 법안을 한조항씩 낭독하면서 심사할 경우 토의가 길어져 법안이 계류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본인들의 원칙도 무시하고 있다. 민주당은 ‘일하는 국회’를 위해 안건 설정을 원내대표 간 합의에 맡기던 관행에서 벗어나 올라온 순서대로 처리하는 ‘선입선출’ 원칙을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지난달 25일 공수처법 개정안이 법안소위 안건으로 상정된 점을 야당이 문제 삼자 여당 간사인 백혜련 의원은 “선입선출은 가능하면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지 계속 지켜졌던 원칙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정치의 묘미는 협상에 있다. 아무리 난관에 부딪혀도 서로 대화와 설득을 통해 결론을 이끌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면서 “지금 당의 입법 진행 상황을 보면 다소 무리한 점이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조성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