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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빅딜㊥]한진해운 파산 4년…세계시장서 외면받는 한국해운

2020-12-15 11:19 | 류준현 기자 | jhryu@mediapen.com
산업은행이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통합작업에 8000억원의 국민혈세를 투입하기로 결정하면서, ‘항공빅딜’이 도마 위에 올랐다. ‘대마불사’라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산은은 항공업이 네트워크로 먹고 사는 ‘국가기간산업’이라며 빅딜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2017년 2월 세계 7위의 국적선사 한진해운이 정부로부터 약 3000억원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파산하면서 수출입으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는 역대급 물류대란을 겪었다. 4년여 흐른 지금도 해운경쟁력은 원상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공공성을 띠는 ‘망산업’의 특성을 간과해 항공업도 무너뜨리면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본지는 3회(㊤대한·아시아나 시험대…'원메가캐리어'가 수송보국 지름길 ㊥한진해운 파산 4년…세계시장서 외면받는 한국해운 ㊦코로나에도 항공사 먹여살린 화물사업, 투자만이 살길)에 걸쳐 항공업과 해운업의 중요성을 살펴보고, 정책금융의 필요성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한진해운 선박 한진 달라스호가 부산신항 한진부산컨테이너터미널에 정박한 모습/사진=(주)한진 제공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당시 취임한 회장은 아니라 함부로 얘기할 사안은 아니지만, 산업은행이 근시안적 결정을 했다기보다는 정부 결정이 그렇게 내려진 것이 아닌가 한다. 그 부분은 굉장히 아쉽게 생각한다.” -2020년 10월16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

딱 4년. 이동걸 산업은행(산은) 회장이 항공빅딜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한진해운을 언급했다. 하지만 구조조정 실패에 대한 산은 차원의 반성은 없었다. 

이 회장은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진해운 파산에 대해 “산은이 결정한 게 아니다. 산업정책적 차원에서 정부가 안 해준 것이다. 산은이 혼자 들어가서 수조원 손실을 무슨 수로 책임지나”라고 밝혔다. 

부실기업을 떠맡아 구조조정에 앞장서는 산은이 정부 정책에 따라 구조조정에 대한 기준도 바뀐다고 자인한 셈이다. 원칙이 없는 산업 구조조정이다.

산은의 아마추어식 해운구조조정, 원칙은 재무건전성?

한진해운과 현대상선(현 HMM) 등 양대 원양 국적선사는 2000년대 초반부터 해외 투기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 채권단의 재무건전성 유지 등에 대응하기 위해 알짜사업을 죄다 매각하며 유동성을 확보했다. 

한진해운의 불행은 2006년부터 시작됐다. 한진해운을 이끌던 고(故) 조수호 회장이 타계하면서, 한진해운은 해외 투기자본의 적대적 M&A에 대응하기 위해 해외 터미널 자산과 자사주를 대거 매각했다. 우리나라가 차등의결권 황금주 등 기업 경영권을 보호할 장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 차례 고비를 넘겼지만, 이번엔 해운불황이 발목을 잡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진해운은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벌크선 사업, 국내외 터미널 지분, 해외 사무소와 유가증권 등 돈되는 건 모두 팔았다. 

특히 2013년 12월에는 계열사였던 대한항공이 알짜자산 에쓰오일 지분 3000만주를 2조2000억원에 매각해 한진해운을 도왔다. 당시 채권단이었던 산은은 한진그룹 자회사인 대한항공이 항공기를 매각해서라도 재원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HMM도 만만치 않았다. HMM은 채권단의 요구로 2002년 부산항 자성대부두 등 터미널자산 3개를 홍콩 자본에게 넘겼고, 알짜사업이던 자동차운송사업, LNG운송, 벌크전용선 사업도 정리했다. 

2018년 5월15일 개최된 '부산신항 4부두 공동운영 기본합의서 체결식'. 당시 금융당국이 2000억원을 투입하면서 HMM은 부두 지분 40%를 되찾았다. /사진=HMM 제공



2016년엔 중요 자산인 부산신항 HPNT 터미널 지분 50%+1주 중 40%+1주를 싱가포르 자본에게 800억원에 매각했다. HMM은 매각조건으로 비싼 값에 매년 정해진 수량만큼 컨테이너를 하역하는 굴욕적인 노예계약도 따랐다. 2년 뒤, 금융당국이 2000억원을 투입하면서 HMM은 부두 지분 40%를 되찾았다. 잘못된 구조조정의 대가로 1200억원의 추가 손실을 감수한 것이다.

채권단은 두 선사에게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요구하면서도 새롭게 유입되는 ‘뉴머니’는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였다. 업계에 따르면, 두 선사는 핵심 영업자산을 매각하며 약 5조원의 유동성을 마련했지만 이마저도 회사채를 연장하는 조건으로 차입금을 상환하고 고금리 이자로 지불했다. ‘턴어라운드’를 위한 별도의 투자 재원은 없었다. 

익명을 요구한 학계 관계자는 “채권단이 한진해운을 살리고 부실한 HMM과 합쳐 하나의 대형 국적선사를 육성해야겠다는 의지가 없었다”며 “(한진해운이 파산한 후) HMM만 살아남았을 때 산은은 전형적인 은행관리 노릇을 했다”고 일갈했다.

해운 구조조정에만 앞장섰던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적 선사는 자국 정부의 든든한 지원으로 신조 선박을 발주하고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덩치를 키워나갔다. 정부가 자국 선사에게 재무건전성을 요구하는 대신 주도적인 정책금융으로 해운경쟁력을 강화한 것이다. 

한국해운협회(옛 한국선주협회)에 따르면, 세계 1위 머스크라인은 자국 수출신용기금에서 5억2000만달러(한화 약 5700억원), 차입금으로 6억2000만달러(약 6800억원) 등을 지원받았고, 한진해운과 선복량이 비등했던 독일계 함부르크수드를 인수했다.

중국은 중국은행과 중국수출입은행에서 약 250억달러(약 27조3100억원)를 들여 코스코 등 국영선사를 지원했다. 코스코는 막강한 정부지원으로 차이나쉬핑과 홍콩 OOCL을 연이어 인수하며 프랑스 CMA CGM을 꺾고 세계 3위로 올라섰다. 

각국이 해운 불황에도 정부 주도로 자금을 지원해준 건 국가기간산업이란 특수성과 함께 긴 불황 끝에 호황이 돌아오는 해운업의 특성을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운물류업계는 세계 경제 상황에 달려있지만, 해운업이 통상 10년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을 오간다고 설명한다. 불황에 대규모 적자가 불가피하지만 호황 때 ‘잭팟’을 누리면 누적된 적자를 메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투기적 성격이 강한 것이다.

지워지는 'HANJIN'. 파산한 한진해운이 사용했던 컨테이너 외부에 붙은 로고와 심벌을 떼어내는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역차별적 정책금융에 부실화된 한국해운

양대 국적선사가 글로벌 해운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걸 두고 전문가들은 국적선사가 용선(배를 빌리는)시장에 의존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IMF 체제 이후 정부가 기업들에게 부채비율 200%를 유지하도록 조건을 내걸면서, 선사들은 소유한 선박을 팔고 해외 선주사에게 배를 빌려야 했다. 

용선시장은 10년물 등 장기계약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해운업이 호황일 때 선박을 빌리면 용선료도 비쌀 수밖에 없다. 한진해운도 이 함정에 빠져 많은 수익을 용선료로 지불했다. 한진해운이 운용한 컨테이너선 중 소유 선박은 37척, 빌린 선박은 61척에 달했다. 그런데 이 선사가 빌린 선박 수십척이 재무구조를 악화시키는 뇌관으로 작용했다.

해외 선주사가 우리나라 수출입은행의 지원으로 국내 조선소에서 저렴하게 배를 발주할 수 있었고, 이후 선박을 인도받아서 한진해운에게 비싸게 빌려줬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수출입은행은 최상위권 외국적 선사에게 저리의 정책금융을 제공해 초대형 선박을 국내 조선소에서 발주하게 만들었다. 수출로 외화를 가득 확보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대표적으로 머스크라인은 2011년 수출입은행의 지원으로 1만8000TEU(1TEU=6m 컨테이너 1개)급 친환경 컨테이너선 트리플E 1세대 20척을 대우조선해양에 발주해 2013년부터 인도받았다. 2015년에는 2만TEU급 2세대 선박 수척을 추가 발주해 덩치를 키웠다. 머스크가 아시아-유럽항로에서 최강자가 된 핵심 원동력이었다. 

이 외에도 글로벌 톱5 선사로 꼽히는 MSC와 CMA CGM이 수출입은행의 지원으로 초대형선박을 국내 조선소에서 저렴하게 확보했다.

우리나라 국적선사는 왜 국내 조선소에서 선박을 발주하지 않았을까? 전문가들은 국적선사의 신용등급이 상대적으로 낮고, 선박 발주가 ‘내수’로 묶여 조선소의 수출실적에 반영되지 못한 게 컸다고 지적한다. 

외국 선주가 국내 조선소에 선박을 발주하면 ‘수출’로 집계되지만, 국적선사가 선박을 발주하면 ‘내수’로 잡히는 것이다. 여기에 외국에서 수입하는 선박기자재와 항해장비 엔진 등에 수입관세를 매겨 국적선사들이 훨씬 비싼 값에 배를 발주해야 했다. 

업계와 학계의 지적으로 국적선사도 수출금융을 이용할 수 있게 됐지만 수혜를 누리게 된 건 채 10년도 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전준수 서강대 석좌교수는 “(신용도가 낮으니) 국적선사들이 용선시장에서 시장가격에 코리안프리미엄까지 지불해야 했다”며 “외국 선주들은 우리나라의 이런 실상을 잘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2016년 8월말 기준 세계 주요 선사 운용 선박 및 선복량 현황. 7위 한진해운은 98척(60만9536TEU), 14위 HMM은 60척(43만7512TEU), 20위 고려해운은 58척(11만6495TEU)을 각각 기록했다. /자료=알파라이너 자료 캡처



불행의 서막 한진해운 사태…‘해운호구’로 전락한 한국

한진해운은 2016년 8월 기준 컨테이너선 98척(60만9536TEU), 벌크선 44척 등을 보유한 세계 7위의 원양 국적선사였다. 컨테이너 선복(컨테이너를 적재하는 선박의 공간)을 공유하던 얼라이언스(동맹) ‘CKYHE’에서 동맹선사였던 코스코, 에버그린에 이어 세 번째로 덩치가 컸다. 1년 매출액만 7~8조원에 달했다. 

하지만 장기 불황에 부채가 5조6000억원으로 급증하면서, 한진해운은 2016년 4월 채권단에게 자율협약을 신청했다. 고(故) 조양호 회장은 한진해운 경영권 포기 각서도 썼다. 

채권단이 한진그룹 일가에게 7000억원의 자구안을 제출하라 할 때도 조 회장은 5600억원의 자구안을 마련하겠다며 금융당국에게 3000억원의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금융위원회와 채권단은 2016년 8월 한진해운을 법정관리로 내몰았고, 한진해운은 이듬해 2월 파산했다.

문제는 한진해운을 청산하는 데 끝나지 않았다. 한진해운을 믿고 화물을 맡긴 국내 수출입화주가 동반부실의 위험에 놓여 있었다. 2016년 9월 기준 한진해운 선박에 실린 화물의 가액만 140억달러(약 15조3000억원)로, 손해배상채권은 1조원대에 육박했다. 

정부가 뒤늦게 하역대금을 지급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납기를 맞추지 못한 데 따른 위약금과 계약파기 비용은 국내 수출입업체의 몫이었다. 

또 한진해운과 선복을 공유하던 동맹선사들이 하역 지연으로 피해액이 늘어나자, 한국해운을 믿지 못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해운업계는 HMM이 동맹을 구하지 못하다가 동맹 2M(머스크‧MSC)에게 ‘전략적 협력’이라는 노예계약에 끌려 다닌 것도 한국의 해운신뢰도가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동맹은 파트너와 선복을 공평하게 나누는 반면, 전략적 협력은 파트너의 입장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더욱이 HMM 선복량이 당시 17위(컨선 60척‧44만TEU)에 그친 반면, 머스크는 622척‧319만TEU, MSC는 489척‧277만TEU에 달해 체급상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건 어려웠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웃기는 건 한진해운 법정관리 이후 정부의 뒷북대응이었다. 2016년 10월 정부는 6조5000억원 규모의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한진해운 지원을 거절한 지 두 달 만이었다. 그때도 정부는 법정관리에 대한 잘못을 시인하지 않았다. 

이때 HMM은 산은과 수출입은행으로부터 한진해운 알헤시라스터미널 인수자금, 신조선박 발주 등으로 1조원 넘게 지원받았다. 

채권단이 한진해운에 긴급자금을 수혈하지 않으면서 대우조선 등 좀비 조선업체 3곳에는 총 10조원을 지원한 터라 해운업계의 공분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한 물류기업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선박으로 99.7%의 화물을 수출입하면서 해운을 천시하는 나라”라며 “4년이 지났지만 한진해운의 부재가 너무 아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올해 12월 기준 세계 주요 선사 운용 선박 및 선복량 현황. 8위 HMM은 71척(71만2261TEU), 14위 고려해운은 66척(15만9028TEU), 20위 장금상선+흥아라인은 70척(9만6028TEU), 26위 SM상선은 11척(5만4821TEU)를 각각 기록했다. /자료=알파라이너 홈페이지 캡처



해운재건 5개년 계획과 해양진흥공사 설립

우리나라가 대통령 탄핵이라는 큰 홍역을 치른 후 정권이 교체되면서 해운산업도 변화를 맞았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4월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내세워 하나 남은 원양 국적선사 HMM을 재건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경쟁력 있는 신조 선박을 발주할 수 있도록 정책금융을 지원해 우리나라 해운경쟁력을 세계 5위 수준으로 회복하겠다는 목표였다. 

이를 위해 정부는 해양수산부 주도로 한국해양진흥공사(해진공)라는 해운 전담 금융공기업을 설립했다. 해진공의 지분구조는 2019년 별도기준 기재부 41.2%, 해수부 11.9%로 정부부처가 53.1%를 차지하고, 산은 22.3%, 기타주주 24.6%다. 

해진공은 HMM의 원양노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2만4000TEU급 친환경 선박 12척, 1만6000TEU급 선박 8척 등 총 20척을 발주하는 데 정책자금을 지원했다. 

전준수 교수는 “HMM이 재건된 건 해진공 역할이 절대적으로 컸다”면서 “(HMM이) 산은에게 지원받았다면 초대형선박 20척 건조는 어려웠을 것이다. 정부의 의지가 반영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산은이 너무 채권확보에만 총력을 기울이지 말았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HMM이 이제 겨우 숨통을 트인 만큼, 경쟁 선사와 견줄 수 있을 때까지 채권확보에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HMM이 수익으로 부채를 갚는데 집중하는 것보다 해외 전용터미널 지분 인수 등 미래 투자에 집중하도록 산은이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부산신항 항공사진 /사진=부산항만공사 제공



역대급 호황인데…선박‧장비 부족하다

최근 글로벌 컨테이너 시장은 북미 유럽 중동 호주 중남미 동남아 등 전 지역이 역대급 초강세를 띠고 있다. 북미항로는 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로 꼽힌다. 

컨테이너 운임의 바로미터인 상하이해운거래소(SCFI)에 따르면, 12월11일자 중국 상하이발 북미서안행 해상운임은 40피트 컨테이너(1FEU=12m 컨테이너 1개)당 3948달러로 전주와 비슷한 수준을 이어갔고, 북미동안행 운임은 FEU당 104달러 오른 4804달러를 기록했다. 양 노선 모두 역대 최고치다. 

해운물류업계는 중국 화주들이 선복과 컨테이너장비를 확보하기 위해 프리미엄까지 경쟁적으로 부담하고 있다고 밝혔다. 프리미엄 규모는 컨테이너당 약 1500~2000달러로, 실질적으로 중국 화주가 선사에게 지불하는 ‘최저 운송료’는 공표된 운임에 프리미엄을 더한 값으로 봐야 한다.

지난 8월 중국 정부는 선사들의 급격한 운임인상(GRI)을 막기 위해 글로벌 선사를 대상으로 운임담합 조사를 벌이는 억제책을 펼쳤지만 역부족이었다.

중국발 운임이 초강세를 띠면서 한국발 운임 상승세도 꺾일 줄 모르고 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발 미 서안행 운임은 4000달러대, 미 동안행 운임은 5000달러대를 각각 넘나들고 있다. 선사들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프리미엄을 얹어줘야 겨우 화물을 실을 수 있는 자격을 주고 있다. 하지만 컨테이너가 태부족해 선사들이 화물을 취사 적재하고 있다. 

한 선사 관계자는 “12월 북미행 선적예약은 이미 완료됐으며, 모든 선사가 사실상 예약을 받지 않고 있다”며 “중국이 컨테이너를 대거 가져가다보니 부산항에 빈 컨테이너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시장이 중국보다 물량도 적은 데다 운임마저 훨씬 낮게 형성돼 있어, 시장논리상 글로벌 선사들은 한국을 후순위로 여길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물류업계가 북미서비스 1위를 다투던 한진해운의 부재를 아쉬워하는 이유다.

해운업계는 최근의 호황이 잠잠했던 올해 상반기와 대조적이라고 평가했다. 상반기는 코로나19 여파로 중국 한국 등 아시아 주요국이 공장 가동을 중단해 수출물량도 크게 줄었다. 미국은 코로나19로 자동차공장 가동을 중단하면서, 현대기아차, GM, 테슬라 관련 한국산 자동차부품 수입을 대폭 줄였다.

수요 부진이 컸던 탓에 선사들은 경쟁적으로 선박을 휴항시켰고 컨테이너도 미리 확보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반기부터 상황은 역전됐다. 실리지 않던 손소독제와 마스크 등 의료물품이 매주 수백개의 컨테이너에 실려나갔고, 재택근무 장기화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노트북, 각종 생활필수품 등이 대거 선적됐다. 급작스런 수요 폭증에 매주 운임이 올랐다는 후문이다.

시기적으로도 미국의 전통 성수기인 추수감사절‧블랙프라이데이‧크리스마스 수요가 한몫했고, 우리나라와 중국 주요 공장들이 추석 연휴 전 물량을 대거 내보낸 게 수요에 반영됐다. 올해 연말에는 국내 기업들이 막바지 밀어내기 물량을 수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물류기업 관계자는 “선사와 수출업체 사이에 끼어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수준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해운 호황은 연말에 이어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한 외국적 선사 관계자는 “코로나19 백신이 보급화 되더라도 해운시장은 내년 상반기까지 초강세를 띨 전망”이라며 “미국 바이든 신정부가 재난지원금을 풀 것이라고 밝힌 만큼, 가전제품이 지금보다 훨씬 많이 실릴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신항 항공사진 /사진=부산항만공사 제공



공익VS사익, 해운호황에 딜레마 놓인 HMM

원양 국적선사 HMM에 대한 역할론도 화젯거리다. HMM은 지난 2분기 1367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약 10년간의 적자행진을 청산한 데 이어 3분기에도 4137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해운업계에서는 HMM이 올해 4분기 역대급 영업실적을 거둘 것으로 보고 있다. 

HMM은 지난 8월부터 남는 선박을 수배해 우리나라에서 LA로 직기항하는 선박을 매달 1~2척씩 별도로 투입하고 있지만, 넘쳐나는 수요를 채우기엔 역부족이다. 그렇다보니 물류업계에서 HMM에 대한 불만도 고조되고 있다. 산은의 자회사로 겨우 호흡을 유지한 HMM이 자국 화주를 보호하지 않고 중국 화주에게 선복을 우선 배정하는 건 옳지 않다는 주장이다. 

한 물류기업 관계자는 “국내 주요 수출화주들이 뉴스로 HMM의 임시선박 투입 소식을 접하고 왜 선적을 못하느냐는 식으로 항의하는 게 부쩍 늘었다”고 하소연했다. 

덧붙여 “나랏돈이 투입된 만큼 수익은 둘째 치고 HMM이 자국 화주부터 보호해야 하는 게 국적선사의 역할 아니냐”라며 “산은이 HMM에게 자금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화주의 ‘바람막이’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준수 교수도 ‘어려울 때 도와주는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점을 언급하며 HMM이 국내 화주를 좀 더 챙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HMM으로선 빨리 돈을 벌어서 산은에 갚아야 한다는 압박이 강할 거다. 하지만 HMM이 국민세금으로 재건됐고, 과거 화주들에게 국적선 적취율(국적선사에 화물을 선적하는 비중) 제고 등 애국심을 호소했던 걸 생각해야 한다”며 “언젠가 해운불황이 돌아올 텐데 HMM이 당당하려면 화주들이 국적선사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인식을 가지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HMM은 세계적으로 수요가 폭증하면서 선복난이 극심한 데 따른 일종의 '착시'라며, 국내 수출화주의 어려움을 해소하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HMM 관계자는 “HMM이 수익을 극대화하려면 중국 위주로 선박을 투입하는 게 맞다”면서도 “(HMM이) 채권단의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고 국적선사로서 책임감을 느끼는 만큼 앞으로도 국내 수출기업을 보호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HMM이 인도한 세계 최대 규모(2만3964TEU급)의 친환경 컨테이너선 알헤시라스호가 지난 4월28일 부산신항 4부두 HPNT에 입항했다. 알헤시라스호는 HMM이 속한 디얼라이언스에서 아시아-유럽항로 'FE4'서비스에 투입되고 있다. 디얼라이언스는 HMM, ONE, 하파크로이트, 양밍으로 구성돼 있다. /사진=부산항만공사 제공



하지만 해운업계가 바라보는 시각은 다르다. 언제 돌아올지 모를 불황에 대비해 HMM이 돈을 벌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벌고 빚을 털어내야 한다는 의견이다. 시장 논리대로 중국에 선복을 우선 배정해 수익 극대화에 앞장서야 한다는 것. 

한 선사 관계자는 “HMM도 이제 글로벌 선사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지금같이 좋은 시기에 저렴한 화물만 실어주는 건 바보같은 짓”이라며 “(산은 자회사로서) 혈세가 투입됐으니 살아야 하고, 살려면 시장 논리대로 비싼 화물만 실어 수익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산은의 최종목표는 인수한 회사를 살려서 정상화 후 팔고 손실을 줄이는 것”이라며 “산은이 국책은행이기 때문에 HMM으로 돈벌이를 하겠다는 게 아니다. 시기적으로 호황을 누린 덕분”이라고 말했다.

해운물류업계는 한진해운 사태 이후 미중 무역분쟁, 코로나19 여파로 선복난에 시달려 온 만큼, 산은과 해진공이 좀 더 기간산업 투자에 힘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으로 국내 주요 대기업과 수출업체들이 산은과 십시일반 기금을 조성해 국적선사의 선복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정부는 중간자로서 선사와 화주를 중재하는 한편, 국적선사들이 기금으로 국내 조선소에서 선박을 추가 발주할 수 있도록 돕자는 구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HMM에 전폭적인 지원을 한 게 그나마 숨통을 놓이게 하지만 업계로선 여전히 답답하고 부족하게 느낀다”라며 “금융당국이 해운업의 사이클을 파악해 선사들이 적기에 선박을 구축할 수 있도록 선박금융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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