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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 막장 삶"…항공업계 근로자들 혹독한 겨울나기

2020-12-26 10:13 | 박규빈 기자 | pkb2162@mediapen.com

농성장에서 발언하는 박이삼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동조합 위원장./사진=연합뉴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26일 복수의 항공업계 관계자들은 현장 근로자들이 매우 힘든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24일 박이삼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동조합 위원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사측에 정리해고 철회·무급 휴직 수용 등을 요구하며 103일째 농성 중"이라고 운을 뗐다. 근로자들의 형편에 대해 그는 "해고된 직원들은 지난 8개월간 190만원 남짓한 정부 실업 급여를 받고 있다"면서도 "융자 받은 게 있는 사람들은 각종 이자 내기에도 허덕여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박 위원장은 "아직 남아있는 직원들은 취업 규칙상 고용이 유지된 상태이다보니 4대보험이 적용되는 단기 근로를 할 경우 부정 수급에 해당돼 알바 조차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택배 터미널에서 선별 작업중인 근로자들./사진=연합뉴스



이들은 건설 현장과 택배 상하차, 대리운전 등을 전전하며 매일 알바몬과 같은 단기구직 사이트를 매일 알아본다는 설명이 따랐다. 박 위원장은 "말 그대로 막장까지 다 봤다"며 "임시로라도 생계를 이어갈 방법이 마땅치 않아 막막한 우리 이스타항공 근로자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해고가 됐어야 한다고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고 전했다. 은행 대출은 가능하냐는 질문에 그는 "해고자들은 급여가 끊겨 불가하다"고 답변했다.

박 위원장 본인은 지난 10월 14일부로 해고처리됐다. 그를 포함한 이스타항공 해고자들은 부당해고와 관련, 지난 14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마쳤다. 내년 1월 중순 경 서울지노위 판정이 나온다는 전언이다. 이 과정에서 들어간 변호사·노무사 선임 등 법률 비용은 '대한민국 조종사 노동조합 연맹'에서 댔다. 

현재 서울 김포국제공항 근처 공항동·마곡동의 원룸촌의 공실률은 타지역 대비 월등히 높은 상태다. 박 위원장은 "이스타항공 근로자들도 많았는데 모두 짐 싸들고 나갔고 지방에 뿌리를 둔 조종사들이나 객실 승무원들은 부모님 계신 고향으로 내려갔다"며 "언제 극단적 선택을 해도 이상할 게 없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단톡방에는 죽고싶다, 이대로는 버틸 수 없다며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조합에서 심리 상담비용도 지원해줬는데 조합비도 바닥나고 있어 더 이상 도와줄 수 없는 상태"라고도 했다.

이스타항공 객실 승무원이라고 소개한 글쓴이 '인생이상직하직'이 9일 오후 8시 경 직장인 커뮤니티 사이트 블라인드 항공갤러리에 남긴 글./사진=이스타항공 조종사노동조합


이스타항공 객실 승무원이라고 소개한 글쓴이 '인생이상직하직'이 9일 오후 8시 경 직장인 커뮤니티 사이트 블라인드 항공갤러리에 남긴 글./사진=이스타항공 조종사노동조합


이스타항공 객실 승무원이라고 소개한 글쓴이 '인생이상직하직'이 9일 오후 8시 경 직장인 커뮤니티 사이트 블라인드 항공갤러리에 남긴 글./사진=이스타항공 조종사노동조합


올해 9월 9일 서울 강서구에 사는 이스타항공 객실 승무원이라고 소개한 글쓴이 '인생이상직하직'은 직장인 커뮤니티 사이트 블라인드 항공갤러리에 신변을 비관하는 글을 남겼다. 글쓴이는 본문에서 "캐빈(객실 승무원)인 본인은 정리해고 통보를 받았다"며 "너무 큰 충격을 받아 현실 직시를 못하겠다"고 했다.

또한 그는 "오전인지 오후인지 모르게 계속 술만 마시고 있다"며 "현실인지 꿈인지 알고싶지 않다"고 괴로움을 나타냈다. 아울러 "인생은 길고 비행이 끝이 아니며 할 일은 많을 것"이라면서도 "이제 눈을 뜨고 싶지 않고 차라리 모든 걸 다 놓고 싶다"는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실제 최근에는 대한항공 승무원이 공항 인근 원룸 대출금을 갚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도 벌어졌다. 또 지난 19일 항공사 승무원으로 알려진 30대 여성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 소재 한 주택에서 모친과 극단적 선택을 한 사례도 있었다. 

세간에서는 객실 승무원들에 대해 고연봉자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대한항공과 이스타항공 관계자는 "기사 댓글창에 네티즌들은 급여 많이 받는 객실 승무원들이 힘들어할 게 뭐가 있느냐며 비난 일색"이라며 "이들의 급여 중 기본급은 100여만원에 불과하고 비행 등 각종 수당으로 200만원대를 수령하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객실 승무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급여 수준이 높은 조종사들도 처지가 딱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타 항공사들은 운항을 하고 있기는 하나 월 평균 900만원 가량 받는 조종사들의 급여가 3분의 1 토막이 나 집을 산 경우 이자 내기도 힘겨워한다는 것이다. 

생활이 쪼들리는 조종사들이 집을 팔고 전세를 구하고자 하나 부동산 주무부처 국토교통부의 잇단 실책으로 이 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 박 위원장은 "한 조종사는 융자를 받아 집을 사고 세를 줬는데 부동산 임대차법이 전세 기간을 4년 간 보장케 하도록 개정돼 갈 곳이 사라졌다"며 "법이 발목을 잡는다고 한탄한다"고도 했다.

부기장들의 경우 미국에서 면장을 취득하는데 있어 최소 1억6000만원에서 2억원 가량을 투자한다. 급여를 통해 한 두푼씩 갚아가나 코로나19 시국 탓에 이들이 몸으로 때우는 현장에 나가게 됐다는 말도 따랐다. 박 위원장은 "건설 현장이나 택배 상하차장에 가서 일당 12만원 남짓 받고 나면 손목과 무릎을 다쳐서 온다"며 "목발을 짚고 다니며 몸살을 앓는 건 예사"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이스타항공 근로자들은 급여 구경을 못한지 근 1년 다 돼간다"며 "이와 같은 방식으로 '존버'하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객실 여승무원들이 지방 건설사 모델 하우스에 코디네이터나 모델로 뛰고 있다"고 부연했다.

호남 기반 건설사의 이스타항공 인수설에 대해서는 "이스타항공 경영진이 정비 라인을 통해 흘린 것일 뿐"이라며 "보성건설도 거론되는 등 경영진이 막 질러대는 모양새"라며 일축했다.

서울 중구 서소문동 소재 대한항공 빌딩 간판./사진=미디어펜


대한항공은 내년 1월부터 6월까지 정부로부터 고용유지지원금을 받는다. 이에 따라 일부 업무량이 많은 부서는 순환 휴직을 유지하되 규모를 최소화한다. 영업부서 등 일감이 사실상 없는 부서는 코로나19의 3차 재확산 탓에 5개월째 유급 휴직을 하고 있어 근로자들의 급여가 상당히 많이 깎인 상태다.

이들 역시 통상 임금이 아닌 기본급의 70%만 받고 있어 스트레스가 상당할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 말이다.

대한항공·한국공항 소속 지상조업 차량들이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 주차돼 있는 모습./사진=미디어펜


지상조업사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한진그룹 지상조업사 한국공항의 사무직은 급여가 반토막이 났다. 한국공항 경영전략팀 관계자는 "현장직은 항공 편수와 물량에 따라 급여가 고무줄"이라며 "전직원 3000명 중 1개월 단위로 산술평균 750명씩 연 4회 휴직에 들어간다"고 언급했다.

아시아나에어포트 영업팀 관계자는 "여객 수요는 사실상 없다고 보면 되고 화물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성업 중"이라며 "김포공항·제주공항·광주공항 사업장은 정상 운영 중이고 김해공항 사업장은 절반만, 무안공항 사업장은 셧다운 상태"라고 밝혔다. 사정이 이런 탓에 고통 분담 차원에서 아시아나에어포트 노조는 상여금 50%를 반납하는 데 동의했다.

그는 "우리 회사 근로자는 원래 2300여명 수준이었는데 정규직 전환이 안 된 계약직 등 15.3%가 줄어 1950명 가량 남아있다"며 "최저임금 수준으로 받는 지상조업사 현장 직원들은 수화물 파트 기준 한달 중 3일만 출근하고 상여금도 받지 못한다"고 일러줬다. 아울러 "지금은 유급휴직을 실시하고 있지만 조만간 당사가 보유한 현금도 고갈돼 무급으로 전환하게 될 것"이라며 "그 때 대량 사직이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귀띔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소속 KA·AH·KO는 더욱 사정이 좋지 않았다. KA는 아시아나항공 카운터, AH는 외항사 카운터, KO는 항공기내 청소 업무를 담당한다. 이들은 직원 월급을 자체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한 스타얼라이언스 소속 항공사들의 조업 도급비로 충당하고 있었다.

아시아나에어포트 관계자는 "현재 우리는 구조조정 계획이 없고 내부적으로는 한국공항과 통합되지 않겠느냐는 예상을 하고 있다"면서도 "문화재단 소속인 KA나 KO 근로자들은 한진그룹 카운터 자회사 에어코리아(AK)와 합병하게 된다면 구조조정 우려로 더 불안해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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