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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풍토 조성만이 진정한 '교육백년지대계'

2014-12-21 07:24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자유경제원에서는 2014년 산적한 교육쟁점들을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교육쟁점 연속토론회를 개최했다. 총 열 두 차례에 걸친 토론의 장을 통해 자사고 폐지와 혁신학교 추진의 문제점, 교육내용의 좌편향, 학생인권 조례의 문제 등 구체적인 교육현장의 문제들을 짚고자 했다. 자유경제원은 연속토론회를 마무리하면서, 관련 전문가와 시민운동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토론하는 <2014 자유경제원 교육대토론회- 흔들리는 교육,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를 9일 전경련 컨퍼런스센터에서 개최했다. 아래 글은 패널로 참석한 이근미 소설가의 토론문 전문이다.

 

   
▲ 이근미 소설가(미래한국 편집위원)

쉬고, 뛰고, 읽는 학교를 기대한다

대한민국 교육 현장은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여러 차례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고, 그때마다 우리 국민들은 난감해했다. 『무엇이 이 나라 학생들을 똑똑하게 만드는가』라는 책에 보면 오바마 대통령의 칭찬에 좀 수긍이 가기도 한다.

『TIME』에 교육관련 글을 기고하는 언론인이자 뉴아메리카재단 선임연구원인 아만다 리플리가 쓴 이 책에서 우리나라는 핀란드, 폴란드와 함께 주요 연구 대상 국가 중의 하나이다.

리플리 연구원이 우리나라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0년 봄 전 세계 43개국 33만명 청소년들이 응시한 피사(PISA, 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이 최상위권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피사는 기존 학력평가와 다른, 생각을 요하는 문제들로 구성되었다.

물건을 사려면 동전을 몇 개 내야하나, 이런 단순한 문제가 아닌 답안지에 동전을 디자인하라는 식의 문제로 OECD 산하 싱크탱크에서 출제했다. 이후 3년 마다 계속 되는 이 시험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은 계속 최상위권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이전의 단순한 국제시험과 질적으로 차이나는 피사에서도 우리나라 학생들은 최고 점수를 올리자 세계가 놀라고 있다. 리플리는 학생을 직접 한국학교에 파견하여 교실에서 체험하게 하고 몇 달 동안 한국의 교육부장관, 학교 교사, 최고의 학원 강사까지 두루 만나는 와이드 취재를 하여 한국의 교육을 파악했는데, 우리가 대개 알고 있는 내용들을 재확인해준 부분이 많았지만, 우리 교육 시스템을 재해석해주는 부분들도 있었다.

   
▲ '2014 자유경제원 교육대토론회- 흔들리는 교육,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토론회의 전경 

피사 뿐만 아니라 반세기 넘는 기간 동안 세계 각국에서 실시된 18개 시험의 데이터를 재산출하여 만들 도표(2P)를 보면 현재 2위지만 오랜 기간 동안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력수준이 세계 1위였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성적도 뛰어날 뿐더러 고등학교 졸업 비율도 최상위이다. 미국의 경우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이는 뉴욕시의 환경미화원 자리도 얻을 수 없고 공군에 입대하는 것도불가능하지만 4분의 1이 고등학교를 중도에서 그만둔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자살률이 높다고 걱정이지만 실제로 OECD국가 학생들과 비교해 볼 때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다만 성인의 자살률이 최상위권이다.

리플리가 파견한 미국 소년이 부산의 고등학교 교실에서 체험한 내용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실로 얼굴이 뜨거워지는 내용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교실 붕괴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들어와도 뒤쪽의 아이들은 떠들고, 수업이 시작되자 3분의 1이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잔다.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은 깨어나서 10분 동안 수다를 떨거나 문자를 주고받는다. 다음 수업이 시작되면 똑같은 일이 되풀이 된다. 이렇게 자면서 한국 아이들이 세계 최정상의 성적을 낸다는 걸 미국 소년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 18년간 국제시험 성적을 합산한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력수준 

이방인이 본 건 우리나라 아이들이 점심시간에 음식을 급하게 먹은 후 얼마 남지 않은 자유시간에 흙으로 된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모습이었다. 수업을 마친 후 학교에서 ‘야자’를 하고 밤 9시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원으로 가서 밤 11시까지 수업을 듣고 다음날 아침 8시까지 등교하는 이 경이(?)로운 레이스를 접한 미국 소년은 “어떻게 십대 청소년들이 공부 외에 진짜 다른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살 수 있단 말인가”라며 경악한다.

리플리는 날마다 학교를 두 번 가는 것, 이것이 피사 점수를 높이는 ‘우울한 이유’라고 설명한다. 최고로 꼽히는 3개 대학에 상위 2퍼센트만 들어가기 위해 압력밥솥식 교육에 대해 놀라며 비판하지만 어느 면으로 보면 ‘한국 교육이 미국의 학교들보다 훨씬 실력위주의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운동을 잘 해서, 혹은 부모가 그 학교 졸업생이어서 입학이 허락되는 학생은 없다는 걸로 예로 들었다.

한국 학교를 경험한 미국 소년은 “한국은 어쩐지 공부를 더 하도록 내모는 열정이 있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방향성과 추진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수능 당일 온 나라가 스톱되다시피 한 것에 대해 영국 언론은 이상한 나라라고 비판했지만 리플리는 “교육은 나라의 보물이라는 메시지, 교육은 증권 거래나 비행기 이착륙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메시지, 그리고 부모에서 교사, 경찰관까지 모두가 교육을 위해 해야 하는 역할이 있다는 걸 한국에서 자라나는 아이라면 간과할 수 없는 너무나 강한 메시지”라고 분석한다.

이 책에서는 전국 1등을 강요한 어머니를 살해한 아이의 사례, “학생은 고객”이라고 말하며 일 년에 수십억을 버는 학원 강사까지 다양하게 취재한다. 부정적인 면도 많지만 흙먼지 나는 운동장, IT 강국이면서 첨단 장비가 거의 없는 한국의 교실 상황 등을 보면서 엄청난 돈을 투자하고도 미국의 교육이 바닥을 기고 있는 걸 오히려 비판한다. 피사의 결과를 통해 봤을 때 교육에 대한 재정적 투자와 성적이 비례하는 건 아니라고 결론낸다. 같은 재원을 가지고도 ‘교사, 부모, 학생’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 올해의 수능 시험에서는 수십명의 수능 만점자가 속출헸다. 강상진 채점위원장이 12월 2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브리핑룸에서 2015학년도 수능 채점 결과에 대한 브리핑을 하던 중 안경을 만지고 있다. 

교사, 부모, 학생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을 통해 너무나 간단한 해법이 떠올랐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내용이다.

첫째, 학교에서만 공부하고 학원에서 보충하지 않아도 될 환경.
둘째, 아이들이 학교 공부를 마친 뒤 충분히 뛰어놀 게 만들어 주는 것.

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아이들이 독서를 많이 하는 일’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각종 세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낸다고 우리나라 교육이 선진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환경 속에서도 우리나라 학생들이 좋은 성적을 내는 것만큼은 높이 평가할 일이다. 교육에 성공한 나라들의 비결은 교육비 지출이나 교육 자치 혹은 커리큘럼이 아니라 ‘근본적인 차이는 심리적인 것’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세계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은 부모들의 ‘동기’가 크게 작용한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공부가 자녀에게 가장 큰 무기라는 판단에서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베풀어야겠다는 각오로 불타고 있다. 부모들의 각오 혹은 욕심이 청소년들을 공부로 내모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만 공부하고 나머지 시간에 운동과 독서를 즐길 수 있다면 더 이상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최근 몇몇 학교가 학생들에게 마음껏 운동을 하게 하자 오히려 성적이 향상되었고, 이 시스템이 다른 학교로 번져나가는 중이다.

성적을 올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독서

독서야 말로 성적을 올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편이다. 수능에서 지문을 제대로 읽는 것에서 점수가 좌우된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사고력을 키우는 것이 시험점수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제대로 읽고 이해한다면 사회과학 관련 문제도 쉽게 풀수 있게 된다. 이 모든 것의 해법은 독서에 달려있다.

피사 점수를 분석해본 결과 부모가 매일 혹은 매주 읽어주는 책 내용을 들으며 자란 아이는 15세가 되면 25점 높게 나온다고 한다. 같은 사회경제학 계층에 속한 가정 중에서도 부모가 책을 읽어준 가정의 자녀들은 피사에서 14점 더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는 통계도 있다. 부모가 장난감을 갖고 아이들과 정기적으로 놀아줄 경우 성적이 올라가는 효과는 없었다고 한다.

부모가 집에서 취미로 독서를 하면 아이들이 독서를 즐길 확률이 높다고 한다. 이는 나라 배경과 가정의 소득 격차와 상관없이 일관적으로 같은 패턴을 보였다.

현재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 아래에서는 아이들은 책을 읽을 시간이 없고, 시험에 나오지 않는 책은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학교 수업과 학원 수업, 하루에 두 번의 공부를 해야 하는 아이들은 전혀 책을 읽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도서관에 와서 책을 읽거나 책을 빌려가는 학생이 거의 없어 도서 구입에 배정되는 돈을 어쩔 수 없이 다른 데 사용하는 학교도 있을 정도이다. 예전에는 인기 있는 책의 경우 몇 십 권을 주문했으나, 이제는 책을 읽지 않기 때문에 10권을 사는 경우도 드문 상황이다. 학생들의 관심을 끄는 책은 야한 그림이 있는 것, 인터넷에서 인기 있었던 연재물 정도이다.

독서하지 않는 학생들이 책을 읽을 때는 시험과 관련이 있거나, 독후감 대회 등 상이 걸려있을 때이다. 작년 용인외국어고등학교 입시문제에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각의 계절과 관련된 인상깊은 책 제목을 쓰고 그 이유를 설명하라.”는 문제가 출제되었다. 포괄적으로 독서를 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문제여서 앞으로 외고 준비를 하는 학생들은 책을 읽을 것이라는 기대의 소리가 있었다. 그런가 하면 어차피 상위 5% 이내에 드는 학생들은 독서를 하기 때문에 독서풍토가 바뀌지 않을 거라는 견해도 있었다.

현재의 대학입시 제도 하에서는 결코 독서풍토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입시에서 논술이 중요했을 때 어린이책이 불티나게 팔렸다. 어릴 때부터 독서를 해야 논술에 대응할 수 있다는 부모들의 발 빠른 판단에서 였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몇 년 전 주요대학에서 논술시험을 없애면서 어린이책 시장이 위축되었다.

과도하게 영어와 수학에 시간을 쏟아야 하는 현재의 입시제도 하에서는 책을 읽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독서가 변별력의 기준이 되는 것이 ‘독서 대한민국’을 위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다. 결국 학생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당근(각종 대회, 권위있는 상)을 제시하는 수밖에 없고 장기적으로는 입시제도를 바꾸어서 책 읽는 대한민국을 조성해야 한다. 책을 읽어야 나라가 강해진다는 건 두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니만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세계가 우리 교육을 연구한다지만 우리나라가 진정한 의미에서 교육강대국이 되려면 아이들을 쉬게 하고, 마음껏 뛰게 하고,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잠깐 놀뿐 학교와 학교에서 무한 학습을 하고 있는 아이들. 학교에서 잠을 보충해야 하는 현실. 이제 창의성을 마음껏 뻗어내야 하는 십대 아이들에게 이제 어른들은 그들만의 시간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교육이 백년지대계이고, 교육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에서 우골탑을 쌓은 우리 부모들의 신념이 우리나라를 강하게 만들었다. 이제 열정을 가진 우수한 아이들이 더욱 창의적으로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쉬고, 뛰고, 읽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근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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