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이 운항 중인 세계 최대 규모(2만3964TEU급)의 친환경 컨테이너선 알헤시라스호. /사진=부산항만공사 제공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국내 최대 원양 국적선사 HMM이 코로나19로 때 아닌 특수를 누리고 있는 가운데, 컨테이너선 운항을 책임지는 해기사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집단 파업을 시사하고 있다.
HMM 해기사들로 구성된 HMM해원연합노동조합은 최근 집단파업을 내걸고 사측에 이어 실질적 주인인 채권단 산업은행에게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채권단의 보호 아래 있는 사측이 임금 협상 테이블에서 미온적 태도를 보이는 만큼, 이동걸 산은 회장이 협상장에 적극 나서라는 주장이다.
31일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노사 간 마지막 임금협상인 2차 조정회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노조는 공식적인 파업까지 불사하고 있어 ‘물류대란’ 우려가 제기된다.
6년째 임금동결한 노조 “생존권 보장하라”
31일 노조는 성명자료에서 “정부 주도로 재정을 투입하고도 일자리 창출은커녕 기존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포기하는 지경”이라며 “사측이 채권단 눈치만 보는 만큼 실질적 권한자인 이동걸 산은 회장이 결자해지 하라”라고 밝혔다.
산은이 국민세금으로 HMM을 살려놓은 만큼 해기사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차원에서 ‘결자해지’를 언급한 것으로 해석된다.
노조는 지난 26일 전체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재적 369명, 찬성 324표로 쟁의행위에 찬성했다. HMM 처우가 국내 주요 중견선사보다 열악한 데다, 배재훈 사장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데 대한 실망이 컸다는 입장이다.
HMM 해기사들은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연봉을 동결했고, 업무량 증가에 걸맞은 인원 증원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힌 상태다.
HMM이 노조와 채권단 사이에서 뚜렷한 방향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가운데, 노조는 “뒤에서 팔짱을 낀 채권단이 전면에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를 두고 산은은 특별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지난 17일 산은이 내놓은 발표대로 노사협상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산은은 당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노사가 합심해서 해결방안을 찾으라고 방관적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산은 관계자는 “지난 17일 (내놓은 입장) 이후 별도로 달라진 입장은 없다”고 말을 아꼈다.
HMM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 최선 다할 것”
노조의 움직임에 대해 HMM은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HMM 관계자는 “임금 인상은 내부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돼 있으나, 인상률에 대해선 의견차가 있다. 회사에서는 점진적으로 늘려가자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특히 31일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서 2차조정협의를 가지는 만큼, 이 조정협의에 따라 사측도 공식적인 의견을 밝힐 것이라고 전했다. 해운업계는 상황이 중대한 걸 고려해 이날 중노위 협의에 배재훈 사장이 사측 대표로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노조는 중노위에 조정신청을 낸 상태이며, 이날 조정신청이 원만히 해결되지 않으면 중재신청 쟁의신청 등의 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노조가 파업을 강행하면 국내에서 작업 중인 선박은 운항을 중단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최대 국적 원양선사가 운항을 멈추면 물류대란으로 이어질 거란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벼랑끝전술 이해하지만…파업은 곧 동반자멸의 길”
HMM을 이용하는 국내 물류업계는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를 공감하면서도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이 시기를 악용해선 안 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세계 해운시장은 2016년 한진해운 사태 이후 지난해까지 미중 무역분쟁으로 일시적 호황을 맛봤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수급 불균형이 심화되면서 역대급 호황을 누리는 상황이다. 올해 얼라이언스(해운동맹)를 맺게 된 HMM도 해운호황에 힘입어 5년만에 영업이익을 시현했다. 일부 증권가에서는 HMM이 올해 4분기 8000억원에 육박하는 영업이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HMM이 여전히 산은의 보호를 받고 있고, 국민세금으로 연명한다는 점에서 물류업계는 노조의 파업을 공감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물류기업 관계자는 “(원양) 국적선사가 하나밖에 없으니 화주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국적선사를 이용하는 상황에서 노조가 이런 상황을 악용해선 안 된다”며 “HMM이 노조 요구를 들어주면 (파업에 동참하지 않은) 육상노조도 쟁의에 나서지 않겠느냐”라고 비판했다.
수출입화주들의 화물운송을 대행해주는 물류업계는 올해 역대급 운임폭등, 선복(선박 내 컨테이너 적재공간)‧컨테이너장비 부족 등 삼중고에 신음하고 있다. 당장 핵심 수출노선인 북미항로가 꾸준한 운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컨테이너 운임의 바로미터인 상하이해운거래소(SCFI)에 따르면, 12월25일자 중국 상하이발 북미서안행 운임은 40피트 컨테이너(1FEU=12m 컨테이너 1개)당 4080달러로 전주보다 180달러 인상됐고, 북미동안행 운임은 전주와 비슷한 수준인 4876달러를 기록했다. 양 노선 모두 역대 최고치다.
한국발 운임도 초강세다. 31일 해운물류업계에 따르면, 부산-북미서안행 운임은 FEU당 4000달러 초반대, 북미동안행 운임은 5000달러 초반대를 각각 기록하고 있다. 선사들은 설날과 중국의 춘절을 앞두고 1월 중순에도 운임을 약 500달러씩 추가 인상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북유럽과 동남아 등지에서도 선복난과 컨테이너 확보 탓에 운임이 폭등하고 있다.
제조업계와 물류업계가 삼중고에 치이다보니 노조 파업에 대해선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한 물류기업 관계자는 “HMM으로부터 (파업과 관련해) 특별한 공지를 받은 게 없다. 노조 파업보다 선복과 장비확보가 더 시급한 상황”이라며 “벼랑 끝 전술을 펼치는 것 같은데, (사태가 장기화된다면) 우리로선 외국계 선사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여론 지지를 받아도 모지랄 판에 HMM이 자멸하는 행위다”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노조가 할 일은 다 마무리하고 회사가 안정될 때 시위를 해야 여론도 노조의 입장에 공감하지 않겠느냐”며 “HMM 대신 세계적인 규모의 일본‧대만‧중국계 선사를 써도 상관없다는 점을 (노조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