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조성완 기자]더불어민주당은 이낙연 대표가 신년벽두에 꺼내든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특별사면 요청'에 대해 “당사자 사과가 먼저”라면서 일단 유보 자세로 돌아섰다. 당분간 여론 추이를 지켜보며 본격 추진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의미다. 이 대표 역시 ‘국민 통합을 위해 사면이 필요하다’는 뜻까지 접은 것은 아니다.
두 전직 대통령의 특별사면 논의에 불을 지핀 것은 이 대표로서도 부담감이 큰 패다. 당장 당 내에서는 물론 핵심 지지층에서도 반발이 제기됐다. 결국 민주당 최고위원회는 지난 3일 “국민 공감대와 반성이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앞으로 국민과 당원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며 입장을 정리했다.
이 대표가 반발을 예상하면서도 ‘사면’이라는 초강력 패를 꺼내 든 것은 결국 차기 대권을 위한 포석이라는 시각이 강하다. 그 핵심은 청와대와의 사전 교감 여부다. 이 대표의 본격적인 자기 정치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고,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낼 길을 열어주기 위한 총대 메기에 그칠 수도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일 국립현충원을 방문했다./사진=더불어민주당 제공
여권 내에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은 ‘금기어’에 가까웠다. 그만큼 핵심 지지층의 반감이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이고, 집권여당의 대표이자 문재인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였던 이 대표가 사면론을 제기한 것은 ‘국민통합’을 키워드로 대권가도에 승부수를 띄운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 대표는 현재 이재명 경기도지사, 윤석열 검찰총장과 함께 차기 대권주자 지지율에서 3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지지율로 보면 꾸준한 하락세를 그리고 있다. 반전이 필요한 시점이지만 ‘개혁 입법’이 얼추 마무리되면서 사실상 입법으로 분위기를 전환하기는 힘들다.
이런 가운데 국민통합이라는 어젠다는 이 대표에게 있어서 현직 검찰총장으로 정치 행보가 제한적인 윤 총장이나 강성 이미지의 이 지사와 분명히 구분되는 차별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종신형’에 가까운 두 전직 대통령의 형량을 두고 보수·중도층에서 일부 동정 여론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중도층 지지를 가져오는 결과도 기대할 수 있다.
더구나 취임 후 줄곧 ‘문파’로 불리는 강성 지지층에 휩쓸린다는 비판을 받아온 이 대표가 슬슬 제 목소리를 내겠다는 신호로 볼 수도 있다. 2020년 마지막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오만한 점은 없었는지 스스로 돌아보겠다”며 입법 독주에 대한 회의감을 드러내기도 했던 만큼 본인이 강조한 우분투(ubuntu) 협치를 전면에 내세울 가능성도 크다.
당내 한 관계자는 “집권여당 대표로서 이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이 거의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면서 “당 안팎의 거센 반발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이 대표의 리더십이 드러날 것이다. 결과에 따라 최고와 최악의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청와대와 사전 교감 여부와 관계없이 결국 선택은 본인이 하는 것”이라면서 “여권에서 금기시됐던 사면론을 먼저 주장한 그 자체로 ‘이낙연 정치’의 신호탄을 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평소 신중한 성격의 이 대표가 본인만의 결단으로 사면론을 제기할 가능성은 낮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 대표 스스로는 청와대와 사전 교감 여부에 대해 “그런 일 없다”고 부인했지만, 지난달에만 문 대통령과 두 번의 독대를 가졌다는 점에서 모종의 교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사면론 자체가 이 대표의 대선 승부수를 넘어서 문재인 정부의 임기 후반부 국정 동력 확보용 포석이라는 것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일 중앙당사에서 열린 2021년 온텍트 신년 인사회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사진=더불어민주당
문 대통령은 지난 2019년 5월 취임 2주년 KBS 특집 대담에서 “아직 재판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그런 상황 속에서 사면을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라면서도 “두 분의 전임 대통령들이 처해 있는 상황이 정말 가슴이 아프다. 내 전임자이기 때문에 내가 가장 가슴도 아프고 부담도 크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먼저 건의의 형태로 전직 대통령 사면을 띄우면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정치적 부담을 덜 수 있다. 더구나 문 대통령의 발언은 ‘법률적 상태 등을 고려한 적절한 시기가 오면 사면을 건의하겠다’는 이 대표의 발언과 부합한다.
이 대표로서도 본인의 건의를 대통령이 수용하는 형태로 진행되면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위상이 높아진다. 당내 경쟁상대인 이 지사가 ‘박근혜 사면 금지’를 천명한 점을 감안하면 ‘국민통합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우위를 점할 수도 있다. 문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친문 핵심 지지층의 반발도 자연스레 사그러들 가능성이 크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사면 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치명상을 입는다. 사전 교감 없이 결정하는게 오히려 더 이상하지 않겠는가”라면서 “사면이 이뤄지면 대통령은 부담을 덜게 되고 이 대표는 차기 대권에서 크게 앞서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원내 관계자는 “결국 문 대통령이 풀어야 할 과제다. 이 대표가 지지자들의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드리려 한 것 같다”면서 “총대 메기라는 비판보다 국민통합을 위한 선구자적 의미로 받아들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조성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