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제8차 당대회에서 미국을 '최대의 주적'으로 규정하고, 핵무력 증강을 천명했다. 핵추진 잠수함, 극초음속 무기 등을 개발하고 있는 사실을 공개하면서 대미·대남 군사 위협을 강화했다. 그러면서 미국을 향해 ‘강대강, 선대선’이라는 조건부 관계 개선 입장을 고수해 문턱을 높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한 우리정부가 제안해온 ‘방역 협력’에 대해 비본질적인 문제만 제기한다며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2019년부터 남북 간 미해결 과제로 남아 있던 ‘금강산 시설 철거’ 입장을 재차 강조하면서 향후 남북관계 진전에 장애물도 놓았다.
북한 노동신문은 9일 전날 진행된 4일차 당대회 사업총화보고를 보도하면서 김위원장이 “대외정치활동을 최대의 주적인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는데 초점을 맞추고 지향시켜나가야 한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미국에서 누가 집권하든 미국이라는 실체와 대조선 정책의 본심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며 “새로운 조미관계 수립의 열쇠는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 철회에 있다. 앞으로도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핵 기술을 더욱 고도화하겠다. 핵무기의 소형경량화, 전술무기화를 보다 발전시켜 전술핵무기들을 개발하고 초대형 핵탄두 생산도 지속적으로 밀고나가겠다”면서 “1만5000㎞ 사정권 안 대상들을 정확히 타격 소멸하는 명중률을 더욱 제고해 핵 선제 및 보복 타격 능력을 고도화할 데 대한 목표가 제시됐다”고 말했다.
또 “가까운 기간 내 극초음속 활공 비행전투부를 개발 도입할 데 대한 과업, 수중 및 지상고체 발동기 대륙간탄도로케트개발사업을 계획대로 추진시키며 핵 장거리 타격 능력을 제고하기 위해 핵잠수함과 수중 발사 핵전략무기를 보유할 데 대한 과업이 상정됐다”고 밝혔다.
북한에서 지난 5일부터 제8차 노동당대회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9일 보도한 사진에서 눈 내린 평양 거리 곳곳에 '노동당 기'가 펄럭이는 모습을 보도했다. 20201.1.9/평양 노동신문=뉴스1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사실상 업그레이드된 ‘경제‧핵건설 병진노선 2.0’ ‘3년 전으로 회귀한 당대회’로 평가했다. 미국, 중국, 러시아의 핵군비 경쟁 속에서 자신의 핵무력 증강 명분을 찾고 미국과의 핵군축 협상 프레임을 설정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란 분석도 나왔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경제보다 어쩌면 국방력 강화에 더 방점이 찍혀있다”며 “특히 군사 분야에서 더 독해지고, 더 위협적이고 공세적인 국가방위력 강화 입장과 대응 방안이 표명됐다”고 평가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정세 불확실성 앞에서 ‘고슴도치형’으로 원칙적이고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면서, 대미와 대남에 대한 요구조건 ‘문턱’을 최대한 올려 협상 지렛대를 높여 놓겠다는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대미 입장은 ‘대북적대시정책 철회’ 전 대화가 힘들다는 기존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으나, 핵무력 증강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은 향후 미국의 반응에 따라 북미 대치가 강경하게 흐를 수 있는 원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대남 정책과 관련해선 “남조선 태도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가까운 시일 안에 북남관계가 다시 3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한미연합훈련 중단’ ‘첨단군사장비 반입 중단’을 시험대에 올려놓았다.
북한은 이번에 남한에 대해선 상대방에 대한 적대 행위 일체 중지, 남북선언 성실한 이행을 강조했다. 또 자신들의 핵무기 개발에 대해선 상관하지 말라면서도 남한의 한미군사훈련 및 전략무기 도입을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북한에서 지난 5일 개막한 제8차 노동당대회에 대해 노동신문이 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사업총화 보고 내용을 공개했다. 2021.1.9./평양 노동신문=뉴스1
김 위원장은 "현재 남조선 당국은 방역 협력, 인도주의적 협력, 개별관광에 대해 "비본질적인 문제들을 꺼내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우리의 정정당당한 자주권에 속하는 각종 상용무기개발사업에 대해서는 '도발'이라고 걸고들면서 무력 현대화에 더욱 광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첨단군사장비 반입과 미국과의 합동군사연습을 중지해야 한다는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를 계속 외면하면서 북남합의 이행에 역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김 위원장은 "금강산 지구를 우리 식의 현대적인 문화관광지로 변화시키겠다”면서 “고성항 부두에 있는 해금강호텔을 비롯한 시설물들을 모두 들어내겠다. 고성항 해안관광지구와 비로봉 등산관광지구, 해금강 해안공원지구와 체육문화지구들을 꾸리겠다”고 제시했다.
김 위원장이 밝힌 당대회 보고 내용은 지난 5년간 대내·외 정책에 대한 평가와 향후 5개년 정책 방향을 발표한 것이다. 현재 한반도 주변 정세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올해 안이라도 정세가 바뀌면 북한 대외정책도 바뀔 수 있다. 다만 북한이 현재 교체되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 남한정부에 대해 더욱 강경해진 압박 기조를 세운 것은 분명하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미국 윌슨센터 연구위원)은 “북한 사업총화보고에서 ‘핵무력’이란 단어가 11번이나 등장한다”며 “남북관계 개선은 북한 비핵화라는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 목표보다 북핵 능력의 단계적 감축과 평화체제 구축, 북한의 대외관계 정상화, 대북제재 완화 등에 대한 큰 그림을 갖고 미국, 중국과 함께 북한을 설득할 때에야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북한은 미국의 어느 행정부가 들어서든 먼저 양보할 입장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선언한 것으로 보인다. 도발을 예고하면서 미국이나 한국 정부의 전향적 입장을 기대하고 있다”면서 “미국도 북한의 핵보유 의도와 도발 기도에는 밀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화 재개는 여건의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 합의를 이루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 센터장은 이어 “북한이 문재인정부도 한국 정부인만큼 행보에 한계가 있음을 알면서도 지나친 요구를 한 것이다. 오히려 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에 부담만 줬다”며 “북한의 입장이 새로운 것이 아닌데도 자꾸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 있을 듯한 태도로 일관한 정부의 대북 접근의 한계를 잘 보여줫ㄹ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