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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의 민주주의 수호와 통진당의 민주주의 단어 뒤집기

2014-12-25 20:03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헌법재판소의 민주주의 파괴세력 해산 결정>

   
▲ 박종운 미디어펜 논설위원
헌법재판소가 12월 19일 대한민국의 민주질서를 수호하기 위하여, 민주주의 파괴세력인 통합진보당에 대해 해산결정을 내렸다. 자유를 파괴할 자유는 용납할 수 없다는 선언이었다.

하태경 국회의원도 ‘활동가를 위한 실전운동론’이라는 통합진보당 핵심활동가를 위한 비밀 교재를 입수하여 폭로한 바 있는데, 그에 따르면 변혁운동의 사상, 변혁운동의 이론, 변혁운동의 조직 순서로 되어 있으며, 또한 사상 부분도 북한의 주체사상과 토씨하나 틀리지 않다고 한다. 헌법재판소 관계자도 이 부분을 확인해주었다.

즉, “8명이나 되는 재판관이 통진당 해산 쪽으로 결심을 굳힌 건 통진당의 교육위원과 당원 교육자료였다. … 통진당이 방심을 했는지 교육자료에는 어떤 방식으로 자신들의 전략을 위장하고 세력을 넓혀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론이 상세히 기록돼있다. … 독일 헌법재판소가 공산당을 해산할 때에는 우리보다 훨씬 추상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해산을 결정했지만, 우리는 확실한 근거와 물증을 토대로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조선일보.2014.12.24. 보도)

이러한 저간의 사정이 알려지면서, 국민 대다수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하여 헌법재판소가 내린 결정을 지지하였다.

그런데 유사시에 국가 중요시설물들을 타격하기로 결의했던 그룹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나아가 이석기 사건이 드러났을 때조차도 그것을 옹호했고 전 당적으로 변호에도 나섰던 통합진보당에서 난데없이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졌으며, 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고 한다. 이런 것을 무어라고 할까? 도둑이 도리어 경찰을 잡겠다고 덤벼드는 적반하장(賊反荷杖) 격이라고나 할까?

<단어의 뜻 뒤집기로 판단 불능상태로 만들기>

일찍이 사회주의의 멸망을 예언했었고 사회주의의 실현 불가능성을 논증까지 했던, 자유주의 경제학자 미제스는 사회주의자들이 단어의 뜻 뒤집기를 전술로 삼았다고 했다. 그는 “전체주의 옹호자들은 다른 전술을 선택했다. 그들은 명령에 복종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어떤 권리도 갖지 못하는 체제 아래 있는 개인들의 조건을 진정한 혹은 순수한 자유라고 부른다”(미제스, 인간행동, p.570)고 했다.

이러한 단어의 뜻 뒤집기의 전형적인 예가 지금 이 땅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에 다시 또 적용되고 있다.

민주주의란 원래는 말 그대로 세금을 내는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사상이다. 따라서 민주주의 하에서는, 마치 시장에서 소비자가 돈으로 하는 투표를 통해서 좋은 것들(goods)을 사기도 하고 사지 않기도 함으로써 공급자인 기업가들의 흥망을 좌우하듯이,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통해서 위임 대표들을 뽑기도 하고 언제든지 갈아치울 수도 있다.

   
▲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가 24일 오전 서울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뉴시스
그래서 시장경제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시장에서의 일상적 선택의 경험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정치에서도 2년 혹은 4년마다 오는 선택의 기회에 자신들의 위임 대표들을 선택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체질화되어 있다. 대한민국이 시장경제의 발달에 따라서 독재체제라는 낡은 옷을 과감하게 벗어던질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일상적 시장 민주주의의 경험이 경제발전 속에서 체질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과 달리, 북한에서는 어떤가? 거기에서는 명령경제가 지속되었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좋은 것들(goods)을 자기 마음대로 선택해본 경험이 없다. 일상 생활용품도 줄 서서 배급을 받는 것 외에는 선택이라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

심지어 정치에서도 투표는 ‘연대(連帶)’라는 이름으로 하나로 만들어져 제시된 후보단에 대해 오직 찬반 표시만, 그것도 흑백함에 나누어 넣는 공개투표만 했을 뿐이다. 정치적 선택 경험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대한민국에서는 대통령이 벌써 여러 명이 바뀌었건만, 북한에서는 오직 김일성 일가의 3대 세습만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엉뚱하게도 국호에는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란 말을 버젓이 명기하고 있다.

앞에서 본 헌법재판소의 판결과 하태경 의원의 폭로를 보아도, 통합진보당의 정체(正體)는 북한 김일성 3대세습독재의 추종이다. 따라서 통진당 잔당과 전 대표 이정희가 말하는 민주주의는 바로 북한식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다. 그들이 ‘민주주의가 위기다’라고 이야기할 때는 그 말의 본 뜻은 ‘북한식 민주주의의 전국화가 위기에 봉착했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들식 ‘민주주의’ 정확하게 말하면 북한식 3대세습독재를 원할까?

<단어의 뜻 뒤집기의 원조는 마르크스와 레닌>

1800년대에 독일에서 보통선거 도입을 둘러싸고 독일노동총동맹 의장인 라쌀레와 자본론의 저자 마르크스 사이에 이견이 있었다. 라쌀레가 다수 노동자가 자신의 뜻대로 정부를 세우는 길은 보통선거권을 쟁취해서 투표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했던 반면, 마르크스는 보통선거에 참여해도 집권을 할 수 없고 오직 폭력혁명을 통해서 정권을 탈취해야 한다고 하였기 때문에 의견대립이 일어났다. 이것은 후에 베른슈타인과 마르크스의 논쟁, 그리고 카우츠키와 레닌의 논쟁으로 이어졌다.

라쌀레, 베른슈타인, (후기의) 카우츠키로 이어지는 사회주의 노선을 노동자 농민의 투표를 통한 집권이라는 민주주의 방식의 사회주의라 하여 사회민주주의 혹은 민주 사회주의라고 한다. 반면 마르크스 레닌의 경우에는 노동자 농민의 이익을 ‘자칭’ 대변하는 공산당이 집권하는 것을 민주주의라고 했다.

그들은 이것이 민주주의에 대한 상식과 어긋난다는 것을 알고, 의미론적으로 진짜 민주주의라고 강변하였다. 물론 레닌은 실제 행동에서는 1917년 10월 러시아 국회인 두마 선거에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다수를 차지하자 그들을 폭력을 동원해서 몰아내고 볼셰비키 독재를 세웠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민주주의의 실체였다.

스탈린이 코민테른을 지휘하여 혁명을 수출할 때 다시 등장한 것이 민주주의 개념이었다. 이때 스탈린은 약간 모습을 달리하여 민주주의를 내세운 통일전선(혹은 연합전선)을 만들었고, 그것을 통해 집권하는 전략을 세웠다. 물론 내실은 공산당이 장악하고, 외양만 민주주의 연합전선의 모양을 띠는 것이었다. 집권 후에는 반대파는 해산시키고, 연합전선의 단일 후보자명부로 국민들의 선택권은 박탈되었다. 그 전형적인 모습이 소련이 점령지 사회주의화를 추구하였던 북한식 민주주의의 흑백함 투표의 모습이었다.

명령경제체제를 추구했던 민족‘사회주의자’ 히틀러도 스탈린의 전술을 모방했다. 나찌당도 연합전선을 만들어 ‘수권법’을 따냈다. 그리고 반대파들을 제거하였다. 공교롭게도 이때 나찌당과 스탈린의 공산당은 서로 패권경쟁을 벌였기 때문에 (훗날의 중소분쟁처럼) 서로에 대해 으르렁거리는 관계였지만, 서로 불가침조약을 맺을 정도로 가깝게 지내기도 했다. (일본군국주의도 스탈린과 불가침조약을 맺었다.) 이처럼 스탈린과 히틀러가 추구했던 민주주의 연합전선은 반대파의 제거로 이어졌었고, 국민의 선택권을 없애는 것으로 이어졌었다.

우리가 통합진보당이 2012년 총선에서 당시 통합민주당과 ‘야권연대’ 연합전선을 펼쳤던 것에 대해 우려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과거의 역사적 맥락에서도, 그리고 휴전선 이북의 모습에서도 정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2012년 당시 정황을 돌아보면 통합민주당이 통합진보당에게 끌려다녔음을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2012년 대선에서도 비록 문재인 안철수 연대에 급급해서 그렇긴 했고, 연대 비판 여론 앞에서 무릎을 꿇긴 했지만, 후보사퇴전술을 통한 연대 비슷한 것까지 갔던 것도 기억하고 있다. ‘야권연대’가 공식적으로 집권을 했다면, 민주주의 파괴세력인 통진당은 과연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첫째 대표를 잘 뽑아서 국정을 잘 운영하게 하는 일, 둘째 민주주의 파괴세력을 단호하게 배제하는 일 이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민주주의 파괴세력과의 연대로 집권의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집권이라는 목전의 사익을 위해서 국민들의 자유민주주의적 번영이라는 그릇을 깨는 짓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을 과연 알고 있을까?

새민련이 이제라도 통진당 세력이 말하는 ‘민주주의의 위기’란 말이 ‘북한식 민주주의의 위기’란 것임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단어뒤집기에 더 이상 현혹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 첫 발걸음은 바로 민주주의 파괴세력과의 연대를 반성하는 것이고, 독립적으로 국민적 지지를 받으려는 결의를 세우는 것이다. /박종운 미디어펜 논설위원, 시민정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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