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태우 기자]배터리 기반 전기차의 개발 초기부터 수소연료전지차를 꾸준히 준비하고 육성해 온 현대자동차그룹의 투트랙 전략이 빛을 발하고 있다.
한 때 시장에 큰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수소차 사업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강해지며 사업을 접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들이 수소차사업에 뛰어들며 꾸준히 노력해 온 현대차그룹의 전략이 재평가 되고 있다.
수출을 위해 울산항에서 이동중인 현대자동차 수소전기차 넥쏘. /사진=현대차
2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세계 주요 완성차 업체들은 트럭과 버스 등 상용차 파워트레인을 위해 수소차 사업 진출에 나서고 있다. 전기모터와 배터리로는 큰 차를 움직이기 위한 출력이 감당이 안되기 때문이다.
우럽연합(EU) 각국의 강력한 환경 규제에 대응해야 하는 유럽 업체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로 서둘러 수소차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르노그룹은 최근 세계 최대 수소연료전지 업체 중 하나인 플러그파워와 수소차 생산을 위한 합작 법인을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통해 프랑스에 수소연료전지 시스템과 최첨단 수소차 생산라인을 구축해 유럽 내 연료전지 기반 중소형 상용차 시장을 30% 이상 점유한다는 게 르노그룹의 계획이다. 플러그파워는 SK가 최대 주주인 회사이기도 하다.
업계에서는 르노가 플러그파워와 함께 수소 상용차 시장에 진입한 뒤 개인용 차량인 픽업트럭과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등으로 수소차 라인업을 확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임러도 지난해 6월 상용차 강자인 스웨덴 볼보트럭과 수소전기트럭의 연료전지 시스템 개발을 위한 합작사를 출범했다. 양사는 2023년 시범 운행과 2025년 판매를 목표로 첫 수소전기트럭 콘셉트카인 '젠H2'(GenH2)를 선보이기도 했다.
일본 토요타도 유럽 수소버스 시장을 겨냥해 지난달 포르투갈 버스 제조업체 카에타노 버스의 지분을 인수했다. 이와 함께 유럽에 글로벌 수소연료전지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신설 법인 '퓨얼 셀 비즈니스 그룹'을 신설해 수소차 판매 뿐 아니라 각국 정부·기관과 협업할 계획이다.
북미 시장을 겨냥해서는 상용차 자회사인 히노를 통해 미국 상용차 업체인 켄워스와 협력해 수소전기트럭을 개발 중이다.
이런 모습은 현대차그룹이 여론의 질타를 받으면서도 수소차 분야에 대한 노력을 꾸준히 해온 선견지명 때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수소차 넥쏘를 통해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넥쏘를 통해 전세계 수소차 시장의 최다판매량기록도 세웠다. 지난 2013년 세계 최초로 수소전기차 양산에 성공한 데 이어 2018년에는 '5분 충전으로 590km 주행' 성능을 갖춘 두 번째 수소전기차가 '넥쏘'다.
지난해에는 세계 최초로 양산한 수소전기 대형트럭 '엑시언트 수소전기트럭' 10대를 스위스로 수출했으며, 이를 시작으로 2025년까지 스위스에 1600대 규모의 대형 수소트럭을 공급할 예정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수소전기버스 '일렉시티 FCEV'를 수출하기도 했다.
장기적으로는 2030년까지 엑시언트 수소트럭을 유럽에 2만5000대, 미국에 1만2000대, 중국에 2만7000대 수출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국내에서는 서울과 울산 등 주요 도시에 수소버스를 투입해 시범 운행하고 있으며, 오는 2028년까지 경찰버스 802대 모두를 수소버스로 교체할 계획이다. 오는 7월에는 국내 사양으로 개발한 수소전기트럭을 CJ대한통운과 쿠팡, 현대글로비스와 협업해 물류 사업에 시범 투입할 예정이다.
외부로부터 수소연료전지를 공급받아 수소차 사업에 새로 진출하는 해외 경쟁사들과 달리 현대차는 이미 자체 생산한 수소연료전지를 양산차에 적용해 오랜 기간 판매한 경험이 있는 만큼 앞으로 수소차 시장에서도 월등한 경쟁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자동차는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한 제품이기 때문에 새로운 개념의 파워트레인을 양산차에 적용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면서 "외부로부터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을 공급받는다 하더라도 장기간 운행 테스트를 통해 안전성과 신뢰성을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대차그룹은 수소차와 전기차를 공동 육성한다는 전략에 따라 전기차 분야에서도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말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Electric-Global Modular Platform)'를 공개한 데 이어 올해를 전기차 도약의 원년으로 삼고 전용 전기차 모델들을 잇달아 내놓을 예정이다.
현대차는 전용 전기차 및 파생 전기차를 포함해 2025년까지 12개 이상의 모델을 선보임으로써 연 56만 대의 전기차를 판매할 계획이다.
기아도 올해 1분기 크로스오버 디자인의 'CV'(프로젝트명)를 시작으로 2027년까지 승용부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다목적차량(MPV) 등 다양한 차급에 걸쳐 7개의 전용 전기차를 순차적으로 출시한다. 제네시스도 전용 전기차 모델 'JW'(프로젝트명)를 개발하고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한때는 무모한 도전이라고 평가됐지만 빨라진 자동차 분야의 친환경시대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현대차그룹의 저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며 "당분간 이같은 현대차그룹의 선전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미디어펜=김태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