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정의용 신임 외교부 장관이 9일 ‘쿼드’(Quad)와 관련해 “투명하고, 개방적이고, 포용적이고, 또 국제규범을 준수한다면 어떤 지역협력체 또는 구상에도 적극 협력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수용 가능성을 열었다.
미국이 주도하고 일본, 호주, 인도가 참여하는 ‘4자 안보협의체’(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인 쿼드는 사실상 중국 견제를 위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한국 등을 염두에 둔 ‘쿼드 플러스’ 구상도 나온 바 있어 한국정부가 쿼드에 대한 원칙을 세울 필요성이 커졌다.
따라서 정 장관의 이날 발언은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이 최근 “다른 국가의 이익을 자동으로 배제하는 어떤 것도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다”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것에 비해 외교적으로 대응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비록 ‘투명·개방·포용·국제규범 준수’라는 4가지 조건을 달아 ‘조건부 수용’이라는 해석이 있고, 동시에 사실상 중국을 배제 또는 견제하는 쿼드엔 참여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는 해석도 나와 평가가 엇갈리는 것도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정 장관의 발언이 쿼드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는 질문에 “그건 아닐 것이다. 투명성 등 4개 기본원칙을 제시했고 그에 부합하면 협력할 의사, 의지가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일단 아직까지 쿼드의 성격과 역할이 구체화되지 않았고, 이에 따라 조직력도 약한데다 향후 미국이 과연 쿼드 플러스를 추진할지도 아직 알 수 없는 상황이란 점에 주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정 장관의 쿼드 관련 발언은 ‘참여’ 쪽에 방점을 찍으면서도 국제 기준에 맞는 원칙을 제시해 이전보다 훨씬 구체화된 외교적 수사로 국가이익에 맞는 원칙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왼쪽부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박은주 제작 사진합성 일러스트·장현정 제작 일러스트./사진=연합뉴스
왕선택 여시재 정책위원은 “한국이 ‘쿼드 플러스’ 참여 여부에 대해 원칙적인 입장을 제시하고, 향후 미국의 구체적인 제안이 온다면 다양한 검토가 가능한 상황을 만든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그런 면에서 정의용 장관 발언은 지금 상황에서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왕 위원은 이어 “동시에 쿼드 플러스 참여 문제를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서기를 고민하는 구도로 인식하는 접근법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해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쿼드 플러스 참여 문제가 미중 갈등 구도에서 한국이 압박을 받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을 적극 설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병곤 통일연구원 부원장은 “쿼드는 미국의 중국 견제용이지만 구체적인 조치나 행동은 아직 안 나타나 있다”면서도 “동맹을 중시하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맞아 우리정부도 쿼드 문제를 계속 외면할 수 없으므로 국가이익에 맞춰서 관련 원칙을 세워둘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전 부원장은 “우리정부가 염두에 둘 국가이익에는 경제적 실리도 챙겨야 하지만 한반도 평화도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김흥규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미중정책연구소장)는 “최근 미국과 일본이 쿼드의 성격과 관련된 표현을 놓고 조율이 있었던 일을 주목해야 한다”면서 앞으로 쿼드의 조직력이나 확대 여부는 미국에 달렸다고 지적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바이든 당시 대통령 당선인과 스가 총리 간 전화회담이 있은 뒤 미국 측 발표문에 ‘번영하고, 안전한(prosperous and secure) 인도·태평양’이라는 새로운 표현이 등장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1월 28일 바이든 대통령과 스가 총리 간 취임축하 정상통화 이후엔 백악관은 다시 기존의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FOIP, Free and Open Indo-Pacific)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이와 관련해 일본 언론은 “바이든 정부 내에서 트럼프 정권이 자주 사용한 표현을 계승하는 것에 대한 반대가 전화회담 직전까지 있었다”면서 “미일 양국 정상이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이념을 공유한 의의가 크다”고 보도한 바 있다.
김 교수는 “일본을 비롯해 인도와 호주 역시 바이든 정부의 ‘번영하고, 안전한’ 이념을 쉽게 수용하기 어렵고, 그 이념의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려할 것”이라며 “앞으로 쿼드 추진까지 미국이 해결할 문제들이 남아 있는 것으로 그 이전에 우리정부가 섣불리 관련 입장을 밝히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바이든 정부가 추진하는 쿼드의 구체적인 내용이 드러나기까지 현재 쿼드 참여국들과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며 “현재 우리정부가 ‘투명하고, 개방적이고, 포용적이고, 또 국제규범을 준수한다’는 국제질서를 존중하는 원칙을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