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조한진 기자]재계에서 '차등의결권' 도입의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기업의 지속 성장과 경영권 보호를 위해서 선진 경제 시장과 같은 안정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이유다.
최근 쿠팡은 차등의결권을 통해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방지하고 안정적 경영권 확보를 위해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해외에서는 대표 기업의 해외 상장이 늘자 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바이두, 알리바바 등 중국 대표 IT 기업이 미국 증권시장에 상장한 것을 계기로 상해증권거래소에서는 2019년, 홍콩증권거래소에서는 2018년 차등의결권 도입기업의 상장을 허용했다.
11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글로벌 증권거래소 및 한국 주식시장의 차등의결권 도입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글로벌 5대 증권시장은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기업의 상장을 허용해 적대적 M&A에 대응하고 자국기업의 해외 상장을 방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글로벌 시가총액 1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 간 경영성과를 분석한 결과,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기업이 성장성 등 모든 측면에서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중구 N서울타워에서 바라본 도심 /사진=연합뉴스
차등의결권은 일부 주식에 많은 수의 의결권을 부여해 창업주나 경영자가 경영권 위협 없이 안정적으로 기업을 운영하도록 하기 위한 제도다. 차등의결권을 보유한 기업들은 경영권과 지배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어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는 투자 결정을 과감하게 내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글로벌 5대 증권시장은 모두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기업의 상장을 허용하고 있다. 이 제도를 도입하는 주된 이유는 적대적 M&A에 대응한 기업 경영권 보호 및 자국기업의 해외 증권시장 상장 방지인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증권거래소에서는 1898년 처음으로 차등의결권 도입기업의 상장을 허용했으나, 많은 기업들이 채택하며 주주에 대한 차별 논란이 일자 1940년 차등의결권을 금지했다. 하지만 1980년대 적대적 M&A가 성행하고, 혁신기업들이 잇따라 나스닥에 상장하며 1994년부터 다시 차등의결권 도입기업의 상장을 허용했다. 나스닥에는 구글, 페이스북 등 혁신기업들이 차등의결권을 도입해 상장했고, 도쿄증권거래소에서는 단원주 제도를 도입해 차등의결권과 동일한 효과를 얻고 있다.
실제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기업들은 미도입 기업과 성장성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2014년 대비 2019년의 성장성을 분석한 결과 차등의결권 도입 기업의 총매출은 54.4%, 고용은 32.3% 증가했다. 이에 비해 차등의결권 미도입기업의 총매출 증가율과 고용증가율은 각각 13.3%, 14.9%로 나타났다.
특히 차등의결권 도입기업의 연구개발(R&D) 투자는 190.8%, 설비투자는 74.0% 증가했으나 미도입기업의 R&D투자 증가율은 49.1%에 그쳤고, 설비투자는 0.7% 감소했다.
국내에서는 상법, 한국거래소 상장규정 모두 차등의결권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최근 쿠팡이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을 결정하자 차등의결권 도입논의가 촉발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추진 중인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은 증권시장에 상장되지 않은 벤처기업만을 대상으로 하고, 상장 후에는 3년 이내에만 차등의결권이 유효하기 때문에 반쪽짜리 제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차등의결권은 적대적 M&A 등에 맞서 기업의 경영권과 지배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해 경영성과의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차등의결권 제도는 글로벌 5대 증권시장에서 도입하고 있는 글로벌 스탠다드로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자국기업의 해외 증권시장 상장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유환익 전경련 기업정책실장은 “자본시장이 완전 개방된 상태에서 자칫하면 국내 유수기업들이 잇따라 해외에 직상장할 위험성이 매우 높다”며 “차등의결권제를 전면 허용하여 개별기업의 경영권을 보호하고 더 나아가서는 자본시장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조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