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태우 기자]현대자동차그룹이 비상장 건설사 현대엔지니어링이 유가증권시장(코스피) 기업공개(IPO)를 공식화하며 한동안 멈춰 있던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속도가 붙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현대차그룹과 현대엔지니어링 측은 회사의 미래성장 기반마련과 기업 투명성 제고차원이라고 밝혔지만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공정거래위원회가 현대차그룹을 대표하는 총수(동일인)를 정의선 회장으로 바꿔 지정할 예정이어서 일각에서는 시기적으로도 적기라고 보고 있다.
1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 13일 국내외 주요 증권사에 코스피 상장을 위한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발송했다.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 KB증권 등 국내 주요 증권사와 크레딧스위스(CS)증권 등 외국계 증권사에 입찰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엔지니어링 측은 "글로벌 시장에서 신인도 제고와 자금조달 유연성 확보 등을 위해 IPO를 검토 중이다"며 "최적의 시기에 법규와 절차에 따라 IPO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통상 REP 접수 후 6개월 안에 상장이 이뤄지는 점을 고려하면 연내 코스피 상장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분 11.72%를 보유하고 있고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도 4.68%의 지분이 있어 IPO를 계기로 정의선 회장과 정몽구 명예회장이 실탄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이에 현대엔지니어링 상장 후 보유 지분을 매각해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실탄 확보에 나서는 시나리오가 부각되며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속도가 날지도 주목된다.
현대엔지니어링의 비상장 주식 시세는 주당 100만원 안팎에 형성돼 있어 현재 장외 시가총액이 7조5000억원을 수준으로 추산된다. 상장 후 기업 가치가 10조원에 달한다고 가정하면 정 회장의 지분 가치는 약 1조2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현재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21.4%)→현대차(33.9%)→기아(17.3%)→현대모비스 △기아(17.3%)→현대제철(5.8%)→현대모비스(21.4%)→현대차(33.9%)→기아 △현대차(4.9%)→현대글로비스(0.7%)→현대모비스(21.4%)→현대차 △현대차(6.9%)→현대제철(5.8%)→현대모비스(21.4%)→현대차 등 4개의 순환출자 구조를 가지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앞서 2018년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지배구조를 간소화하려고 했지만 미국의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의 공격과 시장의 차가운 반응에 백기를 들고 자진 철회했다.
당시 지배구조 개편안의 핵심은 현대모비스를 핵심부품 사업과 모듈·AS부품 사업으로 나눈 뒤 모듈·AS 부품 부문을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고 정의선 회장과 정몽구 명예회장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주식을 팔아 현대모비스의 주식을 사들이는 것이었다.
시장에서는 지난해 말 정의선 회장의 취임과 맞물려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할 여건은 이미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일단 엘리엇이 지난 2019년 말 현대차와 기아, 현대모비스 보유지분을 모두 매각하고 빠져나간 것도 호재다.
이와 함께 공정위가 이달 말 정몽구 명예회장에서 정의선 회장으로 21년만에 현대차그룹 총수를 변경할 예정이어서 시기적으로도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기에 적기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의선 회장이 공정위로부터 동일인으로 지정된 만큼 국내 5대 그룹 중 유일하게 순환 출자 구조를 가진 것에 부담을 느끼고 이 같은 구조의 해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또 개정된 공정거래법도 이 같은 전망에 힘을 보탠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따라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이 올해 말부터 총수일가 지분율 20% 이상 상장사·비상장사와 이들 회사가 지분 50%를 초과해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로 확대되기 때문이다.
현대글로비스의 총수 일가 지분율은 29.99%로, 일감 몰아주기 제재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에 과징금을 피하려면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매각해 20% 미만으로 낮춰야 한다.
앞서 정의선 회장과 정몽구 명예회장은 지난 2015년 공정거래법 시행에 따라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하려고 당시 각각 31.88%, 11.51%였던 지분을 30% 이하로 낮추려고 둘을 합쳐 13.39%에 해당하는 500만주 이상을 시간외대량매매(블록딜)로 처분했다. 이 결과 정의선 회장은 약 7000억원의 현금을 확보했다.
이번에도 현대글로비스 지분 10% 가량을 매각해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고 동시에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현금 실탄을 확보할 수 있다.
여기에 현대엔지니어링 상장 이후 지분 매각으로 추가 현금을 확보하면 현재 지분율 0.32%에 불과한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추가로 매입해 영향력을 늘리거나 정몽구 명예회장의 지분 상속을 위한 재원도 마련할 수 있을 전망이다.
정의선 회장이 지배구조 정점에 오르려면 지주사 역할을 하는 현대모비스의 지분 확보가 필수다. 시장에서는 일단 지난 2018년 추진했던 개편안을 보완하는 방안이 가장 유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모비스 전체 기업 가치의 60∼70%를 차지하는 AS부문을 분할하고 상장한 뒤 이를 글로비스와 합병하는 시나리오 등이 제기되고 있다. 이후 존속 현대모비스가 합병 글로비스에 대해 공개 매수에 나서고 대주주가 이에 참여하는 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경우 대주주 일가→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로 지배구조를 단순화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를 각각 존속과 사업회사로 분할한 뒤 존속회사는 존속회사끼리, 사업회사는 사업회사끼리 합병하는 방안, 대주주 일가가 기아차(17.2%)와 현대제철(5.8%)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해 순환출자 구조를 끊는 방안 등도 언급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으로서는 지배구조개편을 위해 현금이 필요한 상황이고 현대엔지니어링이 그 신호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번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은 지난 2018년의 개편안을 얼마나 정교하게 보완해 시장의 공감을 얻어내는지가 관건"이라고 전했다.
[미디어펜=김태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