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우석 문화평론가 |
▲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회 김문수 위원장은 경기지사 시절 펴낸 책에서 경기도 전체를 '규제 감옥'이라고 했다. 그래서 책 제목도 '나는 꿈꾼다, 규제 감옥 경기도에서'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수도권 성장을 틀어막는 게 우리나라라고 지적하고 있다. /뉴시스 |
당초 ‘기업 프렌들리’를 내걸었던 이명박 정부도 그러지 않았던가? 인수위 시절 규제의 전봇대를 뽑기로 약속했었으나 끝내 실패했다. 이명박 정부가 나가 떨어지자, 규제 풀리길 기다리던 기업들이 일제히 등을 돌렸다. 그때 중국 베트남 등으로 탈출했던 기업-공장만 74곳이라는 보고가 있다.
수도권 규제, 이게 얼마나 고약한지를 체감했던 사람이 정치인 김문수 의원이다. 그는 경기도지사 시절 펴낸 책에서 경기도 전체를 '규제 감옥'이라고 했다. 그래서 책 제목도 <나는 꿈꾼다, 규제 감옥 경기도에서>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수도권 성장을 틀어막는 게 우리나라다.
시골의 엔간한 헛간보다 약간 큰 규모가 건축면적 500평방미터인데, 그 이상의 공장은 신설도, 증설도 혹은 이전도 못 한다. 당연히 업종 변경은 꿈도 못 꾼다. 기업만이 아니라 대학의 신설도 안 되고, 공공청사 신설도 모두 제한된다. 이는 외국인 투자에도 적용되니 가히 수도권 고사 작전인 셈이다.
이 모든 게 정의사회 구현이란 헛공약을 앞세웠던 5공의 수도권정비계획법(1982년) 때문이다. 아니 지금도 우리 모두의 마음에선 '평등주의 미신'이 맹렬하게 작동한다. 수도권을 막으면 지방이 재미 볼 것이라는 섣부른 이념 말이다. 그래서 지역균형발전협의체처럼 상생을 달달 외우고, 이른바 갑(甲)질을 저주한다. 그 통에 이 작은 나라는 자기 발등 찍기에 여념 없으며, 우리 모두가 죽이는데 합세했던 경제를 되살리자고 허둥지둥댄다.
"(수도권인) 서울 경기 인천을 모두 합쳐도 북경시 면적의 70%밖에 안 되잖습니까. 서해 너머로 마주보고 있는 산둥성 인구만도 1억 명입니다. 산둥성의 경제성장률이 2006년 당시 우리보다 3배 이상인 16.5%였습니다. 거의 달리는 공룡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수도권이 발전하면 지방이 어려워진다는 미신에 사로 잡혀서 하향평준화의 길로 내달리는 겁니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보다 더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가 되어버렸으니 참…." (김문수-조갑제 대화록 <나는 일류국가에 목마르다>)
좌승희 경제학이 빛나는 건 이 대목이다. 지금 한국경제 재도약이냐, 아니냐를 앞둔 이 상황에서 가장 너른 시야를 열어보여주는 게 그인데, 그에 따르면 지금 우리는 평등주의의 또 다른 이름인 경제민주화에 사로 잡혀있다. 그는 경제민주화를 괴상한 게임 룰을 적용한 축구경기에 비유한 바 있다.
경제민주화란 이름의 '앉은뱅이 축구' 게임 룰
▲ 좌승희 박사는"경제는 민주화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경제문제를 다수결의 원칙(평등주의)에 의해 결정할 경우 시장의 차별화 기능이 작동을 멈추게 되고, 기업에게 성장유인을 주지 못하는 결과를 빚는다.
1980년대 이전 개발연대에는 공을 잘 차고 멀리 길게 찰 수록 평가를 받았다. 칼 같은 신상필벌과 인센티브가 작동됐다. 성장유인을 준 것이다. 그 결과 대기업이 하나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중소기업을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을 대기업으로 빵빵하게 키워냈다. 이 과정에서 농촌이 소도시로, 소도시가 대도시로 커졌다.
대부분의 좌파 바보들은 박정희가 대기업 친화적이고, 도시에 특혜를 줬다고 하고, 이 과정에서 중소기업과 지방이 소외됐다고 말하는데 죄다 헛소리고, 거짓말이다. 명백한 건 모든 기업과 지역이 동시에, 사이좋게 발전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좌파들은 그 잠깐을 못 참았다.
더 바보는 좌파의 이런 마타도어에 동조하는 얼치기 지식인과 정치인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경제민주화란 이름의 '앉은뱅이 축구' 룰을 선호한다. 공을 길게 잘 차는 선수들에겐 반칙을 주고 퇴장명령을 내리며, 못 하는 선수들은 기회균등을 모토로 똑 같은 출전기회를 보장한다. 어리석다고? 개발연대 이후 누구나 그렇게 한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평등주의 이념에 따라 정치인은 그걸로 표를 얻고, 어리석은 대중은 그냥 헤벌쭉한다.
개발연대는 "흥하는 이웃이 있어야 나도 흥한다"는 경제관이 지배했지만, 지금은 정반대다. 흥하는 이웃의 상징인 서울대-삼성-강남이라면 부르르 떨었던 노무현의 등장 이전부터 그랬다. 김영삼만 해도 "앞으로는 가진 사람들이 고통 받을 것"이라고 했다. 누구를 손가락질하자는 게 아니다. 그들은 우리의 분신이자 또 다른 모습이 아니던가.
박근혜, 상생-분배 헛공약 대신 국민의 인내부터 요구해야
이런 와중에 좌승희 박사는 말한다. "경제는 민주화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한국적 정서 속에서는 거의 용인 불가능한 명제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만큼 진실이 담긴 게 없다. 이 명제는 말이 어려운 게 아니라 균형 잡힌 시민의식의 회복 없이는 결코 이해 못한다. 경제문제를 다수결의 원칙(평등주의)에 의해 결정할 경우 시장의 차별화 기능이 작동을 멈추게 되고, 기업에게 성장유인을 주지 못하는 결과를 빚으니까 말이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수정자본주의, 사회민주주의 모두가 그렇지만, 한국사회는 포퓰리즘의 덫, 평등주의의 덫에 빠져 40년 가까이 허우적대고 있는 게 아닌가? 그게 바로 지난 회 언급했던 87년 체제의 문제다. 그리고 이 체제의 상징이 수도권 규제다.
때문에 이 정부가 수도권 규제라는 암덩어리를 혁파하고, 경제 살리기에 성공하려면 냉정한 상황 인식이 우선이다. 상생-분배-균형발전 따위의 헛공약과 결별한 채 국민들에게 인내와 자중자애부터 요구해야 한다. 그런 게 진정한 소통일 것이다.
그리고 불평등을 발전의 메카니즘으로 삼았던 앞 시대의 놀라운 정치적 돌파에서 영감을 받아야 한다. 그때의 돌파란 달리 말해 '정치의 경제화'였다. 지금 우리 모두가 매달리는 '경제의 정치화'에 매달리는데, 이 어리석은 짓을 그만 둘 때가 지금이다. 이것이 주류 경제학계의 소수의견, 그러나 너무도 중요한 성찰을 보여주는 좌승희 경제학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조우석 미디어펜 논설위원,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