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온라인뉴스팀]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는 9일 고(故) 이한동 전 총리 빈소를 찾아 "IMF 국난 시기에 김대중 전 대통령을 도와 민심을 수습하고 큰 역할을 해주셨다"며 명복을 빌었다.
김 후보자는 이날 오후 서울 광진구 건국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 전 총리의 빈소를 찾은 후 '여야를 넘나드는 통합의 정치인이었던 고인이 주는 메시지'를 묻는 기자들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김 후보자는 이 전 총리에 대해 "(통합의 상징인) DJP 연합 총리셨다. 제가 초선 의원을 할 때 고인이 총리를 하고 계셨다"며 "당시 상임위가 정무위라 총리실 업무에 여러가지 까탈스러운 질문도 많이 하고 따지기도 많이 했는데도 불구하고 후배의 여러가지 까탈스러운 요구에도 성심성의껏 들어주셨다"고 회고했다.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가 9일 오후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한동 전 국무총리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사진=사진공동취재단
김 후보자는 "대정부질문 때도 당시 IMF 직후라 여러 어려운 사회 문제를 질문드리면 성심성의껏 답변해주신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가 행안부에 있을 때 전직 선배 장관들을 모셔서 식사대접을 하는 자리에도 직접 나오셨는데 갑작스럽게 가셨다고 들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 전 총리는 전날 낮 12시30분쯤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7세다.
이 전 총리는 경기도 포천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후 서울지법 판사와 서울지검 검사를 거친 뒤 전두환 정권 출범 직후인 1981년 11대 총선에서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당선됐다. 이후 16대까지 내리 6선을 지냈다.
노태우 정부에서는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부에서 각각 한 차례씩 모두 세 차례 원내총무(원내대표)를 맡았다. 대화와 타협을 존중해 여야 의원들로부터 '이한동 총무학'이란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대권과는 연이 닿지 않았다. 1997년 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회창·이인제 후보 등과 맞붙었으나 이회창 대세론을 넘어서지 못했다. 대선 후 탈당해 김종필(JP) 전 총리 중심의 자민련 총재로 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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