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48)-그리스 예술의 극치, ‘고귀한 단순, 위대한 고요’
빈켈만(1717~1768)의 <그리스 미술모방론>
▲ 박경귀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
그가 탐색하여 명명한 ‘고귀한 단순, 위대한 고요(edle Einfalt, stille Groesse)‘라는 고대 그리스 예술의 개념적 특징은 서양 예술의 고전적 이상으로 제시되어 서구 예술 창작에 지대한 영감을 주었다. 고대 그리스 예술에 대한 그의 지극한 심취와 찬탄은 당시 많은 예술가들과 전문가들의 공감을 받으며 그리스 예술에 대한 관심을 극대화시켰다.
▲ 빈켈만의 초상, Anton von Maron(1733~1808) 작품, Weimarer Stadtschloss 소장. |
빈켈만은 고대 그리스의 조각 작품과 회화를 집요하게 관찰하고 탐색함으로써 그리스 예술품들이 발산하는 오묘한 아름다움의 실체와 본질적 요소를 찾아냈다. 그는 그리스 조각의 탁월성을 만드는 요소를 크게 7가지로 요소로 나누어 심도 있게 분석하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 윤곽, 옷주름, 고귀한 단순과 고요한 위대, 제작 방법, 회화, 우의(寓意)가 그것이다.
그리스 작가들의 자연에 대한 모방 능력은 남달랐다. 근대 조각 작가들이 상업적 모델에서 조각의 심상(心象)을 얻었다면 그리스 작가들은 나체로 운동하는 선수들, 아름다운 육체를 가꾸던 그리스인들의 일상적 삶의 관찰을 통해 자연스럽고도 생생한 조각을 만들어냈다.
특히 그리스 예술가들은 “인물을 닮게 그리되 동시에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것”을 최고의 예술 규칙으로 삼았다. 이를 통해 물결무늬 옷주름의 부드러운 곡선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들의 작품은 “근대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육체처럼 이상하거나 육체에서 분리된 것처럼 보이는 뚜렷한 주름을 만들지 않”았던 것이다.
▲ 빈켈만이 찬탄한 물결무늬 옷주름의 아름다움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아크로폴리스 에렉테이온 신전의 기둥 카리아티드(caryatid)이다. 여인의 입상을 기둥으로 조각했다. 옷주름의 유려하고 아름다운 조각이 일품인 걸작이다. 기원전 4세기 초에 완성된 작품이다. 아테네 신아크로폴리스 박물관 ⓒ박경귀 |
빈켈만은 완벽한 자연을 그대로 모방하되 “지혜롭게 절제된 형태로 부드럽게 나타”낼 줄 알았던 그리스 작가들의 탁월한 능력을 근대 작가들이 배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스 거장의 작품에는 “전체 구조의 통일, 부분들의 고귀한 결합, 꽉 차 있으면서도 한도를 넘지 않는 절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빈켈만이 그리스 미술을 전범(典範)으로 삼아 모방하도록 권면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스 조각가들의 정확한 윤곽 표현 능력 또한 찬미의 대상이다. 빈켈만은 근대 예술가 중 그리스인의 윤곽 묘사를 제대로 모방해낸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루벤스도 결코 그리스인의 윤곽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빈켈만이 언급하는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조각가들, 페이디아스, 프락시탈레스, 파라시오스, 에우프라노르, 테우크로스 등이 만들어낸 숭고한 작품들은 인류 최고의 예술품들이다.
이들 위대한 작가들이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던 시기에 창작해 냈던 전체 작품 가운데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작품들은 극소수이다. 아테네 국립고고학 박물관이나 신아크로폴리스 박물관, 올림피아 고고학 박물관 등에 가면 이들의 몇몇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 소수의 작품만으로도 빈켈만이 찬탄한 그리스 조각 작품의 위대함을 느끼기에 부족하지 않다.
필자가 올림피아 고고학 박물관에서 마주한 그리스 조각의 아름다움에서 받은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스 올림피아 성역에 봉헌된 현존하는 작품 가운데 최고의 걸작은 역시 승리의 여신 니케 상과 헤르메스 상이다. 올림피아 고고학 박물관은 이 두 작품을 특별 전시실 중앙에 위치시키고 조명의 초점을 맞추는 등 특별한 배려를 하고 있다.
이 니케 상은 BC 421년에 메세니아인과 나우팍티아인이 스파르타와 싸워 승리한 후 제우스신전에 바친 대리석 조각상이다. 고대 그리스의 조각가 가운데 최고의 장인으로 페이디아스와 쌍벽을 이루던 파이오니오스(paeonios, BC 450?~BC 400?)의 작품이다.
상체의 날개는 소실되었지만, 바람에 날리며 하반신에 착 휘감긴 옷자락의 묘사는 너무나 아름다워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발목을 휘감는 옷 주름을 보라. 숨이 막힐 지경이다. 특별 전시실 중앙에 위치한 이 니케 상 둘레에는 늘 관람객이 붐빈다. 정면과 좌우의 어느 쪽에서 바라보아도 새로운 감흥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이 니케 상은 그리스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니케 상의 전범(典範) 이라고 할 만큼 후세의 조각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현존하는 작품 중 니케 상으로 가장 유명한 BC 220년에서 BC 190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모트라케의 니케 상(NIKE of Samothrace)도 이 작품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 승리의 여신 니케(Nike) 상의 세부이다. 발목을 휘감는 옷 주름의 묘사에 숨이 막힌다. 올림피아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
또 하나의 걸작은 헤르메스 신상이다. 헤르메스 상은 헤라 신전에 봉헌되었던 작품이다. 1877년에 이 작품이 발굴되었을 때 예술가들의 탄성이 대단했을 것이다. 이 헤르메스 상은 현존하는 헤르메스 상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그리스가 낳은 최고의 조각가 프락시탈레스(Praxiteles)가 BC 340~BC 330년경에 만든 작품이다. 프락시탈레스는 인체의 아름다운 S라인을 조각 작품에 최초로 구현한 거장이다.
어린 디오니소스를 어르고 있는 헤르메스의 나신(裸身)은 완벽한 육체미를 보여주고 있다. 군살 없는 육체를 매혹적으로 표현했다. 그의 오른손에는 디오니소스의 상징물인 포도송이가 들려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고 품질의 대리석으로 반들반들하게 다듬어진 이 작품은 23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아직까지 생동감이 넘친다. 대리석 표면을 부드럽고 우아하게 다듬는 프락시탈레스 작품의 특징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특별전시실에 홀로 안치된 이 작품 앞에서 관람객들이 떠날 줄 모른다.
▲ 헤르메스 상, 올림피아 고고학 박물관 ⓒ박경귀 |
근대 조각가 중 빈켈만이 고대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인정한 유일한 사람은 미켈란젤로뿐이다. 하지만 그 역시 영웅의 육체 묘사에서만 고대의 경지에 이르렀을 뿐, “섬세한 소년상이나 여성상에서는 그에 미치지 못했다. 심지어 여성상은 그의 손에서는 전부 아마존족이 되어버린다”고 안타까워한다. 근대 예술가들이 넘을 수 없는 벽이 너무나 높았던 것이다.
▲ 빈켈만이 극찬한 작품 ‘라오콘의 군상’, 바티칸 미술관 ⓒ박경귀 |
그리스 예술가들이 이토록 위대했던 이유는 뭘까? 빙켈만은 그리스 예술가들이 조각가인 동시에 철학자적 역량까지 가졌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지혜가 예술에 손을 뻗어 조상(彫像)에 평범한 영혼 이상의 것을 불어넣”기 때문에 걸작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라고 보았다.
빈켈만은 “그리스 조상(彫像)들은 휘몰아치는 격정 속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위대한 영혼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들의 작품의 특징을 “고귀한 단순, 고요한 위대”로 규정하는 이유다. 이 말은 고대 그리스 예술품의 탁월한 요체를 압축적으로 묘사한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빈켈만은 “예술가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사색의 양식(糧食)이 되는 것을 남겨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예술가가 “자신의 사상에 우의(寓意)의 옷을 입히는 법을 체득했을 때에만 이런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빈켈만은 고대의 위대한 조각과 회화를 근대 예술가들이 제대로 모방해 낼 수 있기를 희구했다. 그가 근대 예술가들의 작품에 혹독한 비판과 질책을 하는 이유는 고대 그리스 거장들의 표현 양식과 혼을 불어넣는 열정, 섬세한 관찰력을 모방하고 계승함으로써 근대 예술의 새로운 활로를 열어보고자 했던 열망 때문이었다.
빈켈만의 <그리스 미술 모방론>은 유럽 문화계에 엄청난 충격을 추었다. 그의 저작은 당시 폴란드 왕까지 겸하고 있던 강력한 군주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대공에게 헌정되었다. 그의 고대 예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열정은 당시 독일 예술가를 자극하여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드레스덴을 중심으로 형성된 색채주의 미술가들의 일부 반발이 있었지만 대다수 미술가들의 찬탄을 받았다. 빈켈만도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초고보다 출판본에서 독일 회화의 우수성을 어느 정도 평가해 주고 있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빈켈만이 일으킨 고대 그리스 예술을 찬미하는 분위기는 압도적이었다. 이미 그리스 예술의 가치를 알고 많은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던 이탈리아의 예술 애호가들의 찬탄을 받고 있었다. 빈켈만은 이를 계기로 이탈리아로 초대되어 고대 미술 연구자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빈켈만의 학식과 열정은 당대의 예술품 수집가, 지식인, 장서가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고대 그리스 예술품들이 수집되어 있던 이탈리아 각지를 여행하기도 했다. 또 그의 강력한 후원자였던 알바니의 저택에서 생활하면서 예술품의 수집과 전시, 감정 등에 관해 미술 고문 역할을 했다.
빈켈만은 “고대 정신의 사도, 그리스 미의 발견자”라는 칭호를 얻게 된다. 그의 고대 그리스 예술론은 후일 괴테와 헤겔의 미학 연구에도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괴테는 <예술론>에서 빈켈만이 새롭게 조명한 고대 그리스 예술품의 가치에 매료되어 그 역시 그리스 작품들을 수집하고 예술성을 규명하는데 심취했다. 빈켈만의 재발견이 아니었더라도 고대 그리스 예술품을 접하는 누구라도 무언가 말할 수 없는 감동과 찬탄의 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물며 현재 남아있는 수많은 로마 시대의 그리스 복제 조각에서도 우리는 오래도록 기억될 가슴 뛰는 감동을 받는다.
만약 우리가 고대 그리스 시대의 진품 예술품을 마주할 수 있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사진으로 보는 것과 직접 눈으로 보는 감동의 차이는 천양지차(天壤之差)다. 예술품은 분석 대상이 아니라 그저 느끼면 된다. 빙켈만은 고대 그리스 예술의 가치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오랫동안 느껴왔던 예술적 감흥의 본질을 명료하게 재인식시켜 준 것 뿐이다.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 ☞추천도서: <그리스 미술 모방론>, 요한 요아힘 빈켈만 지음, 민주식 옮김, 이론과 실천(2012, 3쇄). 263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