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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한국 정부는 ‘반도체 감수성’ 부족?

2021-05-14 17:07 | 구태경 차장 | roy1129@mediapen.com
[미디어펜=구태경 기자] 정부는 13일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서 종합 반도체 강국 실현을 위해 510조 원의 ‘민간’투자로 K-반도체 벨트를 구축하겠다는 ‘K-반도체 전략’을 발표했다.

제조업계는 반도체 부품 공급난에 허덕이며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는 만큼 반색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주요 반도체 생산 기업들의 부담이 가중된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는 세계 최대의 반도체 벨트를 구축하겠다며 이번 전략을 발표했지만, 정작 내용을 살펴보면 그 비용의 감당은 민간 기업이 떠안고 정부는 이에 대한 지원을 맡으면서, 보조하는 그림이 나오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단지 3라인 건설현장에서 열린 'K-반도체 전략 보고' 발언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사진=청와대



‘K-반도체 전략’은 ▲연구개발(R&D)·시설투자 세액공제 확대 ▲1조 원 이상의 반도체 등 설비투자 특별자금 신설 ▲10년간 1500명의 반도체 인력 양성 ▲차세대 전력 반도체, 인공지능(AI) 반도체 개발 등에 1조 5000억 원 이상 투입 ▲‘반도체 특별법’ 제정을 위한 입법 논의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또한 ▲현대자동차-삼성전자를 위시한 차량용 반도체 수요·공급기업 간 연대 협약 ▲교육부와 함께 반도체 고급 인력양성을 위한 기업 간 투자 협약 ▲극자외선(EUV) 장비 독점공급 기업인 네덜란드의 ASML이나 반도체 웨이퍼 제조 업체인 미국의 램리서치 등의 투자유치 등의 성과는 이번 전략의 내실을 반증하기에 충분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날 발표한 ‘K-반도체 전략’에서 이러한 세액공제 등 간접적 지원 및 업무협약(MOU) 외에, 정부가 밝힌 정부 직접 투자는 2조 5000억 원에 그쳤다.

게다가 2조 5000억 원 중, 1조 원은 지난해부터 계속 사업으로 진행해 온 것으로, 신규 투자는 차세대 반도체 개발 등의 1조 5000억 원인 셈이다.

이외에도 정부의 K-반도체 전략에는 용인, 평택 등 반도체 단지의 10년 치 용수물량 확보 및 소부장 특화단지 송전선로 정부·한국전력공사 50% 공동 분담 등, 인프라 지원과 관련한 내용도 담았다. 

그러나 삼성전자 평택공장 송전선 문제는 정부의 무관심으로 5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고, 결국 삼성전자는 수 백억원의 송전탑 건설비용을 직접 부담했다.

이를 두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으로 인한 정부의 재정악화 문제로 인해, 직접투자보다 간접투자 및 지원이 주가 된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타 예산을 들여다보면 쉽게 수긍할 수 없어 보인다.  

대표적으로 양성평등기본법과 국가재정법에 따라, 지난 2010년에 도입된 성인지 예산이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발간한 ‘2021년도 예산안 성인지 예산서 분석’에 따르면, 올해 성인지 예산은 총 34조 9311억 원으로 전년보다 3조 2000억 원이나 늘었다.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공급망 구축이 국가 경제성장의 핵심과제가 된 현 시점에서 반도체 산업에 대한 투자를 성인지 예산보다 열 배 이상 적게 잡은 것이다.

정부의 타 예산과 비교해볼 것도 없이 주요 반도체 생산국가와 대조해보면, 이번 반도체 전략에서의 직접적인 투자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반도체를 둘러싸고 가장 치열한 패권 다툼을 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은, 정부 주도하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미국은 앞선 1월 반도체 생산시설에 약 56조 원 규모의 지원을 밝혔고, 중국 역시 10년간 약 175조 원의 투자를 현재 진행 중에 있으며, 유럽연합(EU)도 약 68조 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반도체 패권을 두고 세계 각국이 정부 주도하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반도체 산업에 대한 투자는 주요 선진국에 비해 한 발짝 늦은 감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민간 기업에 밀린 숙제를 떠넘기고 있는 모양새다.

국내 기업들은 범세계적인 탄소중립 이행 요구와 환경·사회·지배구조(ESG)경영 등, 이미 많은 숙제를 안고 있다.

정부가 반도체의 중요성과 긴급함을 깊이 인지했다면, 이제부터라도 그 어느 분야보다 과감하고 가시적인 투자를 감행해, 기업의 짐을 덜어줘야 할 때다. 

[미디어펜=구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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