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누구나 교실 창문을 가로막고 있는 창살을 보며 감옥을 연상했지만 이를 탈출하겠다고 생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것이 ‘평범하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터. 오히려 창살을 빠져나간 아이들을 이단아로 몰아가는 시선이 많았다.
교실 맨 뒷자리에서 답답해하던 소년 강홍석은 남들과 달리 해방구를 찾았다. 수업으로 노래와 춤을 배울 수 있는 곳, 자유로운 나를 뿜어낼 수 있는 곳이었다. 서두르지 않고 한발씩 차근차근 나아갔다. 그런 그에게 어느덧 무대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 가장 사랑하는 공간이 됐다.
DJ DOC의 노래로 만든 ‘스트릿 라이프’로 데뷔한 강홍석은 4년 만에 첫 주연을 따냈다. ‘대극장 주연’은 이제 아이돌에게는 어렵지 않게 되어버렸지만, 반면 오롯이 한곳만 쳐다보는 이들에게는 쉽게 열리지 않는 문과 같다. 그래서 무대에 올라 온 힘을 쏟아내고 있는 그를 보며 주연을 꿈꾸는 뮤지컬 배우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이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다”고.
▲ 뮤지컬 '킹키부츠'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롤라' 역의 오만석(좌)과 강홍석(우) / 사진=뉴시스 |
Q. 일반고에서 예고로 전학간 특이한 케이스라고.
미술시간에 그림을 그리는데 문득 창가에 쇠창살이 보이더군요. ‘내가 감옥에서 공부하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루 종일 재미없다고 생각하며 집에 오는데 버스에서 만난 중학교 동창이 ‘우리는 노래수업도 있고, 재즈댄스 봉산탈춤 수업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야 그런 학교가 있냐’ 했죠. 그리고 며칠 뒤에 편입 시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게 발단이었고 정말 재미있는 학창시절을 보내게 됐죠.
Q. 대학은 또 연극과, 뮤지컬이랑은 가깝지만 조금 멀게 느껴지는데.
계원예고 학생시절 김달중 선생님께서는 자주 ‘뮤지컬의 세상이 온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조승우, 홍광호 같은 출중한 배우들이 많이 나오지 않았나 싶어요. 저는 뮤지컬과는 안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대학에서도 잘생긴 사람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했죠. 특히 클래식 음악이랑 관련이 깊으니까 더더욱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사실 음반은 준비한적 있었어요. 그러다 (정)원영이 형의 주선으로 ‘스트릿 라이프’를 통해 제대로 맛을 보게 됐죠. 무대에서 열기를 온 몸으로 느끼며 ‘이게 진짜 매력적인 장르구나’를 느꼈던 것 같아요. 특히 ‘스트릿 라이프’ 첫 공연의 짜릿함은 말로 표현 못하죠.
Q. 강홍석 하면 정원영을 떼어놓을 수 없다.
대학시절부터 선후배가 아닌 그냥 제 형이었어요. 늘 해피바이러스를 뿌리고 다니는 사람이죠. 그런 모습과 배우로 살아가는 방식, 철학이 너무 훌륭한 사람이에요. 인터뷰 할 때마다 이야기하는데 지금 제 모습이 있기까지 원영이 형이 늘 이끌어줬다고 생각해요. 언제나 함께 하고 싶고, 같이 무대에서 시너지를 뿜을 수 있는 작품을 빨리 다시 만났으면 좋겠어요.
▲ 뮤지컬 '킹키부츠' 공연장면 / 사진=CJ E&M |
Q. ‘킹키부츠’ 준비 중 별다른 활동이 없었는데. 친구들 도움이 큰 힘이 됐다고.
이것만 바라본 거에요. 지난해 2월 말부터 작품활동을 안했죠. 사실 아르바이트도 하고 친구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어요. 지금은 어떻게든 다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죠.
얼마 전에 포장마차 하나를 빌려서 술을 샀어요. 반신반의 하던 친구들의 표정이 막상 공연이 올라가니까 충격과 행복한 표정으로 바뀌더라고요. 저는 그 모습이 한편으로는 ‘홍석이도 꿈을 이뤘으니 나도 이제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로 들렸어요.
며칠 전에는 한 후배가 새벽 3시 반에 ‘형 공연영상을 100번 넘게 봤는데 나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해주세요’라는 메시지를 보냈어요. 아침에 그걸 보는데 하…. 뭉클해지기도 하고 정말 고맙더라고요. 그 친구에게도 너무 고맙고, 이들 덕분에 내가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Q. 처음 주연으로 무대에 오른걸 바라본 가족 반응은.
어머니께서 흥이 많으셔요. 첫 주말 공연에 오셔서 커튼콜에 두 손을 들고 흔들며 ‘아하’ 하시는데 좋으면서도 부끄럽더라고요. 공연 후에 아버지께서는 ‘아들아 네가 하고싶은걸 해서 너무 보기 좋고 앞으로도 하고 싶은 대로 네 꿈을 펼쳤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어요. 두분 모두 ‘돈을 많이 벌든 아니든 건강하게 네 길을 가라’ 하시는데 참 좋은 부모님을 둔 복받은 자식이구나 라는 생각에 울컥했죠.
Q. 필모그래피가 대부분 쇼뮤지컬이라는 점은 아쉽다.
우연찮게 쇼뮤지컬 위주로 작품활동을 했지만 어두운 작품이라고 주저하지는 않아요. 잘 안됐거나 시기가 안맞았을 뿐이죠. 배우는 캐릭터에 맞춰 숨 쉬어야 하잖아요. 지금은 어떤 작품이든지 계속 도전해보고 싶어요.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와 같은 작품도 어둡고 종교적인 면이 많지만 한번쯤 꼭 해보고 싶고, 캐릭터를 한 곳에만 집중시키고 싶지는 않아요.
▲ 뮤지컬 '킹키부츠' 공연장면 / 사진=CJ E&M |
Q. 배우 강홍석을 대표하는건 늘 ‘흥’이었다. 언젠가 위기를 맞을 수도 있을텐데.
흥이 충만한 어머니를 보면서 지치는 순간이 오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반면 제가 계속 지금과 같이 밝고 필이 충만한 모습만 보여드리면 관객 분들이 지치는 순간이 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내 자신에게 지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아직은 에너지가 넘쳐흘러서 계속 도전해보고 싶어요. ‘내가 이걸(공연) 떠난다’라…. 너무 힘들고 상상하기도 싫은데.
Q. 공연이 끝나면 직접 브로드웨이의 ‘롤라’ 빌리 포터를 만날 계획이라고. 만나면 무슨 말을 해주고 싶나.
말은 모르겠고 고맙다는 인사부터 하고 싶어요. 그분의 음악으로 10년간 노래 연습을 했고, 그분의 앨범들로 너무 행복했거든요. ‘킹키부츠’의 롤라를 멋지게 소화하고, 덕분에 저도 이렇게 해낼 수 있었기에 무엇보다 격하게 안아드릴 것 같아요. “10년 전부터 당신 팬이었고, 당신은 정말 멋진 사람”이라고 하면서요. [미디어펜=최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