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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딩 한국해운③]HMM, 국적 중소선사보다 141배 금융수혜…격차 배경은?

2021-05-19 14:21 | 류준현 기자 | jhryu@mediapen.com
세계 해운시장이 코로나19에도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가운데, HMM을 주축으로 정부의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017년 한진해운 파산 이후 정부의 강화된 공적금융이 국가 해운경쟁력을 신장한 모습이다. 이에 미디어펜은 우리나라 선박금융의 현주소를 돌이켜보고, 미래 정책금융이 나아갈 길을 4회(➀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해운물류시장…“수출 포기할 판” ➁집행률 ‘1.5%’…산은 기안기금 안 쓰나, 못 쓰나 ➂HMM, 국적 중소선사보다 141배 금융수혜…격차 배경은? ➃K-선박금융의 길, ‘금융-해운-조선’ 상생 패키지 마련해야)에 걸쳐 되짚어본다. [편집자주]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141대 1.” 국적선사들의 금융지원을 전담하기 위해 출범한 한국해양진흥공사(해진공)가 국적 원양선사인 HMM에 지원한 금액 4조 1000억원이 중소선사의 평균 지원금액 293억원에 견줘 141배에 달한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정감사 자리에서 밝힌 내용이다. 

지난해 4월23일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열린 2만 4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HMM 알헤시라스호'의 명명식에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황호선 해양진흥공사 사장 등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 사진=해양진흥공사 제공


해진공이 같은 해 9월 말 누계 82개 기업에 대한 총 지원액이 6조 5040억원인데 HMM이 홀로 4조 1280억원을 수혜받은 것이다. 해진공의 재원은 HMM의 회사채 매입으로 2조 2038억원, 선박투자 및 보증 1조 2510억원, 컨테이너박스 리스 3729억원, 친환경선박 797억원, 항만터미널 투자 700억원 등에 쓰였다. 그 외 국적선사 81개사는 총 2조 3760억을 지원받은 데 그쳤다. 비율로는 63대 27이다. 

당시 최 의원은 “해진공이 HMM 1개 기업에 전체 지원금액의 63%를 지원하고, 중소선사 평균 대비 141배를 지원하는 건 너무 과도하다”며 “코로나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선사들을 위한 지원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해진공은 문재인 정부가 해운재건 5개년 계획과 함께 지난 2018년 7월 세워진 선박금융 전문 공기업이다. 기재부 41.3% 해수부 11.9% 등 정부지분이 53.1%, 산업은행 22.3% 수출입은행 18.8%, 캠코 3.6%, 민간선사 2.2% 등의 지분을 각각 갖추고 있다.

왜 해진공은 HMM에 ‘몰빵 투자’를 택했을까. 해운업계에서는 핵심 항로인 동서항로(아시아-북미‧아시아-유럽) 등 전 세계를 누비는 원양선사가 HMM이 유일하다는 점을 정부가 고려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2017년 HMM의 선복공유협정은 선복을 차터(임차)하는 방식의 ‘전략적 협력’에 불과해 ‘얼라이언스’로 격상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얼라이언스는 동맹과 공평하게 선복을 나눠가질 수 있어 국내 화주들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더 많은 선복을 제공할 수 있다. 

과거 ‘G6’ 얼라이언스의 멤버였던 HMM은 같은 해 동맹 편입에 실패했고, 머스크‧MSC로 구성된 2M에서 ‘셋방살이’를 택해야만 했다. 글로벌 선사들이 합종연횡을 거치면서 덩치가 불어난 반면, HMM의 선복량은 현상유지 수준에 그쳤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 7위 선사였던 한진해운을 정부가 파산한 직후인 터라 한국해운이 신뢰를 잃은 상황이었다. 세계 해운시장에서 기간산업체인 선사를 파산한 건 우리나라가 최초였다. 

HMM의 초대형 컨테이너선 / 사진=HMM 제공


이러한 배경 탓에 HMM의 동맹 편입은 순탄치 않았다. 우리나라로선 세계 해운시장에 ‘HMM은 건재하다’는 시그널을 던져야 했고, 문재인 정부가 대승적인 결정으로 산은의 보호를 받던 HMM을 해진공을 통해 집중 육성한 것이다. 

HMM은 기존 선대(보유 선박)에 2만 4000TEU급 선박 12척과 1만 6000TEU급 선박 8척을 추가 발주하겠다고 밝히면서 동맹 ‘디얼라이언스’에 승선할 수 있었다. 해진공으로선 HMM에 선박투자와 재무구조 안정화를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해진공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황이 급격히 좋아지면서 지원액으로 추산되던 4조 1280억원은 같은 해 연말 3조 5012억원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전준수 서강대 경영학부 석좌교수는 “최근의 HMM 흥행을 경영진 덕분으로 보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며 “경영진이 산은과 싸우고 해진공이 대규모 초대형 선박 발주를 밀어붙이면서 동맹에 가입한 덕분이다. 사실상 해진공의 작품이라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반대로 HMM을 제외한 민간 국적선사들은 장기불황 여파로 선박 투자에 뜸할 수밖에 없었다는 후문이다. HMM과 SM상선을 제외한 국적선사들은 한일‧한중‧동남아 등 아시아역내항로만 오가고 있다. 

국적선사들의 오랜 텃밭인 이들 시장은 외국적 선사들이 수년 전부터 활개치면서 적자가 불가피했다. 특히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외국적 선사들은 초대형 선박으로 ‘덤핑영업’을 펼치는 한편, 다른 항로에 투입되던 중소형 유휴선박을 대거 캐스케이딩(선박의 전환배치)하면서 치킨게임을 부추겼다. 역마진을 방불케 하는 운임까지 나왔다. 운임이 높은 지역으로 컨테이너를 회전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시장운임은 자연스레 곤두박질쳤다. 국적선사들의 체질이 크게 악화된 배경이다.

최근 코로나19에도 중국과 동남아를 중심으로 수요가 폭발하고 있고, 용선 수요도 급증하면서 아시아역내항로 운임이 폭등했지만 불과 1년 전 만해도 운임은 '바닥' 수준이었다. 공급과잉으로 채산성이 크게 악화된 국적선사들이 HMM처럼 2018년에 신조 선박을 발주하는 것 자체가 곧 ‘자멸의 길’이라는 설명이다. 

해양진흥공사 선박 S&LB 사업모델 / 자료=해양진흥공사 홈페이지 캡처


해진공은 HMM을 제외한 국적선사에게 선박금융 목적으로 세일앤드리스백(S&LB) 18개사‧25척‧1990억원, 후순위투자 2개사‧3척‧417억원을 지원했다. 대체로 폐선을 앞둔 노후선박을 신형으로 교체하거나,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규제에 발맞춰 친환경 선박 및 환경설비를 갖추기 위해 금융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대 확장을 위한 투자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S&LB는 해진공이 선박을 매입한 후 선사에게 빌려주는 리스방식이다. 자금이 부족한 선사들이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선박을 매각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마련됐다. 

해진공 관계자는 “연근해선사는 재무구조 영향이 있었던 만큼 투자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생존문제에 시달렸다”며 “당시 시황을 고려할 때 선박 투자를 감행할 수 있는 용기있는 선사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최근 선복난이 심하다보니 우리에게 선박을 지어서 달라거나, 신조 선박 건조에 대한 금융지원을 해달라는 등 선사별로 금융지원에 대한 니즈가 제각각이다”며 “마땅한 발주계획이나 투자계획이 없이 선사들이 리스크를 해진공에 넘기다보니 금융지원이 곤란할 때가 많다”고 말헀다.

해양진흥공사 선박구매지원 사업모델 / 자료=해양진흥공사 홈페이지 캡처


해운업계는 최근 시황이 크게 개선된 건 고무적인 일이라고 평하면서도, 신조 선박이나 컨테이너를 발주하는 건 무모할 수 있다며 해진공의 입장과 궤를 같이했다. 한 국적선사 관계자는 “최근 용선료가 폭등하면서 아시아역내항로 운임이 전반적으로 역대급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면서도 “신조 선박을 발주하더라도 2~3년은 기다려야 하는데 미래 시황은 아무도 모른다. 수년 동안 침체를 겪었는데 반짝 좋아졌다고 리스크를 홀로 짊어지고 투자하는 건 무모하다”고 말했다.

해진공의 'HMM 몰빵 투자'는 한때 특혜시비를 불러일으켰지만 최근 해운호황에 힘입어 큰 성과를 보이고 있다. 해진공의 영업이익은 지난 2019년 -1200억원에서 이듬해 3조 4119억원으로 흑자 전환했고, 순이익도 -1674억원에서 2조 6045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부채비율도 2019년 말 90.4%에서 12.5%포인트(p) 개선된 77.9%를 기록했다. 

HMM 주가가 지난 2019년 말 3550원에서 1년 뒤 1만3950원으로 폭등하면서 해진공이 가진 영구채 평가이익이 대거 반영된 덕분이다. 올 연말까지 해운호황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주가가 추가 급등하면 해진공의 재무구조도 대폭 개선될 전망이다. 

해진공이 신용보증기금(신보)과 추진 중인 유동화회사 보증(P-CBO) 사업은 올해 규모가 늘어난다. 지난해 P-CBO 보증으로 4개사 905억원을 지원한 해진공은 올해 4020억원의 보증액을 배정했다. 

P-CBO는 코로나19로 매출액이 일시적으로 감소한 중소기업 등에 대해 신보가 보증을 섬으로써 기업들이 민간에서 금융을 조달하기 위해 마련됐다. 해진공은 공사법상 일반 운용자금에 대해서는 보증을 할 수 없도록 돼 있고, 신보는 해운업에 대한 지원이 없었기 때문에 두 기관이 업무협약을 맺었다는 설명이다.

황호선 해양진흥공사 사장은 지난해 2월5일 목포시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산업은행과 '연안여객·화물선박 현대화 지원방안'을 발표하고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식에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 은성수 금융위원장 및 지역소재 중소 조선·해운사 대표들이 참여했다. / 사진=해양진흥공사 제공



한편 해진공은 올해도 대규모 투자에 나설 계획이다. 우선 해운산업 금융지원으로 선박투자 1350억원, 항만물류시설투자 100억원 등 1450억원을 편성했다. 그 외 보증지원 2000억원, 유동성지원(S&LB지원) 1400억원, 연근해선사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선박확보, S&LB지원 등) 3000억원, 환경규제에 대응한 지원금 1060억원(폐선보조금 191억원, 친환경설비 보증 869억원), 코로나19 대응 지원사업 6819억원 등이다.

특히 HMM의 경영정상화를 지원하기 위해 산은과 함께하던 경영관리는 내년부터 해진공이 단독으로 맡는다. 해진공은 산은과 HMM을 공동으로 관리해 부족자금을 지원하는 한편, 필수 영업자산을 확보하는 명목으로 자금을 지원했다. 지난 2019년부터 공동관리를 맡아온 두 기관은 올해 코로나19 등에 따른 불확실성을 고려해 연말까지 관리기간을 연장한 상태다. 

해진공의 계획은 두 기관이 공동으로 맡던 자금지원에 따른 관리감독 업무를 해진공이 전담해 감독인력을 단독으로 파견하는 것이다. 현재 HMM 관리감독 인력은 해진공과 산은이 각 3명을 투입하고 있으며, 최근 산은의 역할을 해진공이 인계하고 있다.

해진공 관계자는 “해진공이 출범한 지 얼마 안 됐고 산은이 과거부터 관리 경험이 많았던 걸 고려해 절반씩 공동관리를 하기로 돼 있다”면서도 “산은은 다른 업종도 많고 우리는 해운업이 주력이다 보니 내년부터 경영‧자금‧영업관리 등 주주로서의 관리감독기능을 우리가 대신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다만 연내 제3의 인수자에게 지분과 채권잔액을 매각하는 식으로 민영화를 밟게 되면 해진공의 관리는 무산될 전망이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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