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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딩 한국해운④]K-선박금융의 길, ‘금융-해운-조선’ 상생 패키지 마련해야

2021-05-20 17:55 | 류준현 기자 | jhryu@mediapen.com
세계 해운시장이 코로나19에도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가운데, HMM을 주축으로 정부의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017년 한진해운 파산 이후 정부의 강화된 공적금융이 국가 해운경쟁력을 신장한 모습이다. 이에 미디어펜은 우리나라 선박금융의 현주소를 돌이켜보고, 미래 정책금융이 나아갈 길을 4회(➀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해운물류시장…“수출 포기할 판” ➁집행률 ‘1.5%’…산은 기안기금 안 쓰나, 못 쓰나 ➂HMM, 국적 중소선사보다 141배 금융수혜…격차 배경은? ➃K-선박금융의 길, ‘금융-해운-조선’ 상생 패키지 마련해야)에 걸쳐 되짚어본다. [편집자주]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최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국내 19개 은행의 1분기 순이익 자료가 세간의 화제다. 

20일 금감원에 따르면 은행들은 이 기간 순이익으로 5조 5000억원을 거둬, 지난해 1분기 3조 2000억원 대비 2조 3000억원을 추가로 벌어들었다. 증가율로 따지면 71.9%에 달한다. 

13일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개최된 'HMM Hanbada(에이치엠엠 한바다)호' 명명식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HMM 제공



순이익 증가 배경에는 국책은행인 한국산업은행의 몫이 컸는데, 산은 홀로 1조 4000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산은이 관리 중인 국적 원양선사 HMM과 대우조선해양 등이 업황회복에 힘입어 평가이익이 급증하면서, 산은의 순이익도 덩달아 증가한 덕분이다. 

특히 산은이 보유한 HMM 전환사채의 평가이익이 크게 뛰면서 비이자이익만 9000억원을 거뒀다. 최근 세계적인 해운호황에 힘입어 HMM의 주가가 폭등하면서 산은도 덩달아 수혜를 보게 된 것이다. 대규모 공적자금 수혈과 한국해양진흥공사(해진공)의 초대형 선발 발주 지원 덕분이다. 

산은을 제외한 18개 은행의 순이익은 4조 10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5000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반짝 호실적으로 산은의 운이 좋았다는 평가도 있지만, 해운‧조선 등 국가기간산업에 매력을 못 느꼈던 민간 금융권이 곱씹어 볼만한 실적이다.

국내은행의 1분기 당기순이익 현황 / 자료=금융감독원 제공



국가 지원으로 폭발 성장하는 HMM과 달리, 민간 국적선사들은 재무구조를 우려해 체급 불리기에 신중한 모습이다. 

최근의 반짝 호황을 고려해 선박과 컨테이너박스 투자를 감행했다가, 불황기가 도래하면 대규모 적자가 불가피하기 때문. 모든 리스크를 경영진이 짊어져야 하다 보니, 대승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해진공 관계자는 “선박금융은 아파트 분양처럼 통상적으로 선사들이 선박을 발주하면, 10%의 계약금을 내고 (인도할 때) 나머지를 내는 구조다. 그동안 국적선사들이 너무 어려웠고 미래 시황을 모르다보니, (2~3년이 소요되는) 신조 선박 발주를 꺼리는 모습이다”고 말했다. 

해운업계로선 상대적으로 리스크 부담이 덜한 차터(용선)시장에 눈을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이마저도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실제 선사들의 핵심 자산인 선박의 경우, 중국의 차터 수요 폭발로 임차비용이 매회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날 해진공에 따르면, 컨테이너선 일일용선료는 5000TEU급(2005년 이후 건조, 3개월 리스조건)이 4만 5000달러로 직전 성약 대비 1만 9000달러 올랐고, 2200TEU급(동일조건)은 2만 2000달러로 직전 성약 대비 9000달러 올랐다. 

한 국적선사 관계자는 “유휴 선박이 중국과 동남아 위주로 편성되면서 용선료가 엄청 올랐는데, 국내 해운업계는 향후 운임이 하락할 것을 우려, 추가 리스를 안 하려는 분위기다”며 “특히 1000TEU급 선박은 용선료가 4500달러에서 1만 2000달러로 치솟았다”고 말했다. 

덧붙여 “컨테이너 부족을 문제로 컨테이너리스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는데, 대체로 1년간 계약해야 한다. 시황 탓에 역시 투자하기 어렵다”며 “국내 화주들이 선복난에 힘들다지만, 선사로선 보유 자산으로 운임이 높은 중국‧동남아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책금융의 수혜를 못 누리는 민간업계로선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국내보다 해외 화주를 챙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부산신항 항공사진 / 사진=부산항만공사 제공



최근 해운호황이 금융권에 알려지면서, 국내 은행들이 선박금융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소 개선됐다는 의견도 나온다. 다만 단기적인 수익만을 좇는 습성이 있어, 지속적인 투자로 이어질지 두고 봐야 한다는 의견이다. 

전준수 서강대 경영학부 석좌교수는 “과거 국내 시중은행들은 해운업이나 신조선 발주에 관심조차 없었다. 고금리로 자금을 지원하다 보니 선사들의 재무구조는 자연스레 악화됐다”면서도 “그나마 요즘은 해운 호황에 힘입어, 시중은행들이 국내 선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단기적으로 장사가 잘된다 하면 관심을 가지고 자금을 빌려주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해운업계는 지난 2017년 한진해운 사태 이후 출범한 해진공을 비롯, 국가 선박금융을 전담하는 정책 금융기관이 늘어난 점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현재 대표적인 정책 금융기관으로는 산은과 해진공을 비롯해 한국수출입은행‧해양금융종합센터‧신용보증기금 등이 있다. 

특히 해진공과 비교되는 해양금융종합센터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센터는 산은 수은 무역보험공사가 각자 멤버로 참여해 만든 선박금융 연합체로, 주로 외국을 기항지로 하는 선사들이 선박을 발주할 때 대출과 펀드 형식으로 지원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산은‧수은‧해진공 등 금융지원 풀이 많아진 점은 긍정적이다. 다만 해진공 역할이 커지면서 기존 플레이어들의 지원이 줄어들까 우려되는 건 있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해운업이 불황일 때에는 선박금융기관이 하나라도 더 있는 게 낫다고 본다. 여기저기 끌어들이면 지원규모가 늘어나지 않겠느냐”고 평가했다.

HMM 초대형 컨테이너선 / 사진=HMM제공



선박금융을 선진화하려는 노력도 나오고 있다. 

최근 해양금융종합센터의 멤버로 활약 중인 수은 해양금융단은 HMM을 위해 40피트 하이큐빅 컨테이너 1만 7000대 분량에 대한 건조자금 1억달러 중 3000만달러를 선순위 대출 형태로 지원해줬다. 

HMM은 5년 동안 수은(2% 후반대 금리)과 후순위 대출자(5%대)에게 박스를 임차해 분할상환하면, 소유권을 갖게 된다. 

그동안 국내 시중은행들은 해운업이 장기불황이었던 점을 들어, 컨테이너 금융조차 리스크가 큰 사업으로 여겨왔다. 금융지원을 하더라도 자체 담보가치를 인정하기보다, 다른 담보를 잡거나 신용대출 형식으로 지원하는 게 대부분이라는 설명이다.

해양금융단은 ‘동산‧채권 등의 담보에 관한 법률’을 활용, 컨테이너를 담보로 자금을 최초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컨테이너는 전 세계로 이동하는 데다 중고시장이 발달하지 않아, 자체 담보로 대출을 일으키는 사례가 없었다. 

해양금융단 측은 이번 투자에 힘입어, 박스난에 시달리는 나머지 국적선사들이 투자 부담을 덜 수 있도록 힘쓰겠다는 입장이다. 

해양금융단 관계자는 “이번에 처음으로 ‘파일럿 프로젝트’처럼 박스금융을 본격 추진하게 됐다”며 “통상적인 박스 사용연한이 약 12년 전후로 길고 이후 중고매매로 넘어가도 매입가 대비 50% 이상 유지돼, 선사로선 박스투자가 손해보는 게 아니다”고 평가했다. 

정책 금융기관의 대대적인 노력에도 민간 해운물류시장에서는 여전히 기간산업 투자가 부족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특히 선복과 컨테이너 부족이 약 1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고통을 호소하는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HMM 알헤시라스호 / 사진=HMM제공



업계 일각에서는 다양한 컨테이너 선대(보유 선박)를 갖춘 건실한 국적선사 일부가 모여, 덩치를 키워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대표적으로 일본에서는 장기불황을 타파하기 위해 MOL 케이라인 NYK 3사가 컨테이너부문을 떼어내 ONE라는 통합 컨테이너선사를 출범시켰다. 중국에서는 정부 주도로 국영선사인 코스코가 2대 선사였던 차이나쉬핑을 인수한 데 이어, 홍콩 OOCL까지 집어 삼키며 세계 4위 선사로 발돋움했다. 

한 물류기업 관계자는 “각자 움직이는 국적 근해선사들을 정부가 주도적으로 합쳐서라도, 원양항로 활성화에 힘써야 한다”며 “헤쳐모여로 결집한 일본 ONE는 한진해운 사태를 교훈삼아 신속하게 통합하면서, 점유율도 늘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중국 국영선사 코스코는 최대 수출국인 미국을 상대로 장사해야 하다 보니, 국가가 조단위로 투자해 선사를 인수하고 있다”며 “우리도 (규모의 경제를 위해) 선사를 통합시키거나 국영선사를 만들어, HMM과 함께 원양항로 스케줄을 요일별로 다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형 선박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해진공을 통해 HMM이 겨우 글로벌 선사와 견주게 됐지만, 매년 성수기를 앞두고 선복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선박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현재 호황을 두고 대만 에버그린과 독일 하파크로이트 등은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에서 초대형 선박을 대거 발주한 상태다. 1위 머스크라인은 발주 소식을 내지 않고 있다. 

전 교수에 따르면 현재 신조 선박 발주는 6년래 최고치로, 신조 선박 건조량은 올해 94만 5000TEU, 내년에는 63만 1000TEU를 기록할 전망이다. 컨테이너 신조 발주량도 2015년 4분기 이후 최고 수준인 약 170만TEU에 이를 전망이다. 

한 물류기업 관계자는 “정부가 세계 최강의 조선소를 갖추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어, 너무 답답하다. HMM이 초대형선 20척을 기가 막히게 인도하면서, 최근 호황으로 이어진 점을 상기해야 한다”며 “수출중심 국가로서 국적선사에 대한 선박투자는 대대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외국적 선사 관계자는 “수요가 많으면 배가 없고, 배가 많으면 수요가 부진했던 게 그동안의 사이클이었다. (신조 발주 여파로) 공급과잉에 선박을 싱가포르 공해에 놀릴 가능성도 있다”며 “내년에는 불확실한 상황이지만, 선박을 발주한 곳들은 호황을 염두에 두고 결정했을 거로 본다”고 말했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사진=삼성중공업 제공



업계와 학계는 인접국인 중국과 일본 사례를 들어 조선소 위주로 이뤄지는 선박금융도 선사를 대상으로 비중을 꾸준히 늘려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금융이 국적선사를 지원해주면, 선사들이 국내 조선소에 선박을 발주하는 상생형 모델이 대표적이다. 

그동안 수은과 산은 등 국책은행들은 국내 조선소의 선박건조 계약을 위한 금융지원을 펼치면서도, 국적선사를 대상으로 하는 지원에는 인색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조선업에서 벌어들이는 외화가 상당했고, 관련 기자재 및 하청기업 등에서 고용창출효과가 컸기 때문이다. 

또 조선업 침체를 막기 위해 국책은행들이 공적자금을 대거 수혈한 탓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으로 지원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조선소와 선사에 대한 금융지원 비중은 과거 8대 2 수준으로 차이를 보였지만, 최근에는 6대 4 수준으로 좁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평가에 대해 해진공 관계자는 "기간산업을 좀 더 지원하자는 건 아무도 이견이 없다"면서도 "우리가 배를 직접 지어서 동일한 조건으로 빌려달라는 선사도 일부 있는데, 조율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주장은 다소 무리가 있다"며 "1등 선사와 하위권 선사가 같은 수준의 금리로 자금을 빌린다면, 신용도를 왜 따지겠느냐"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최근 선사를 대상으로 하는 선박금융이 꽤 개선된 편이라고 평가하면서도, 1등 머스크라인을 빗대어 우리도 리더처럼 사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초대형선 시대를 연 1등 머스크가 신조 선박 발주에 뜸하다. 우리도 1등을 따라갈 게 아니라 리더처럼 고민해야 한다”며 “적정 규모의 환경 친화적이고 완전 자동을 목표로 하는 차세대 컨테이너선을 (국내에서) 건조‧운항한다면, 우리도 추종자에서 선도자로 변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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