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구태경 기자] 글로벌 자동차업계의 과제가 친환경 미래차 전환으로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핵심기술로 꼽히는 배터리의 새로운 가능성이 국내에서 연구되면서, 지속적인 연구개발(R&D) 지원과 이에 대한 홍보가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과학기술대학원(KAIST) 화학과 변혜령·김우연 교수 공동연구팀이 삼성전자 미래기술육성센터와 한국연구재단,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국가슈퍼컴퓨팅센터의 지원을 받아, 기존의 무기 리튬 전지가 아닌, 유기 분자를 이용한 리튬-유기 하이브리드 전지 개발에 성공했다.
리튬-유기 하이브리드 전지를 개발한 (사진 왼쪽부터)변혜령 교수, 비크람싱아 박사, 김재욱 박사, 김우연 교수./사진=KAIST 제공
21일 변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이번에 개발된 하이브리드 전지는 유기 분자들을 거대 골격체로 만들 때 조절되는 분자 간의 상호작용 및 전자구조를 이용, 화학적 안정성·불용성·전도성을 향상시키고, 6분에 한 번씩 충전·방전하는 빠른 속도에서도 약 1000 사이클 이상 구동이 가능하다.
기존 무기 산화물 기반의 전극을 대체할 유연하고 가벼운 혁신적인 배터리 개발에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 변 교수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번 연구개발(R&D) 성과가 상용화로 이어지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상용화를 위한 실증 및 연구에는 아직 더 많은 시간과 지원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산업통상자원부는 '알키미스트 프로젝트'와 중장기 원천기술 공급기지 구축을 위해 소재ㆍ부품ㆍ인공지능(AI) 등 3개 분야서 산업기술거점센터 시범사업을 개시했고, 157개 과제의 R&D 지원을 통한 기술개발 기간 단축 등의 성과를 거둔 바 있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18일에는 알키미스트 프로젝트 시범사업 2단계 사업을 추진과 동시에, 지난달 예비타당성 조사평가를 통과함으로써, 내년부터 오는 2031년까지 총 4142억 원 규모로 진행될 ‘중장기 기술 비(非)지정형 도전혁신 R&D 사업’을 신규 추진할 계획을 밝혔다.
즉 어떤 기술에 대한 연구를 할지, 무엇을 만들지 정하지 않고 ‘일단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기술’을 만드는 R&D에 투자한다는 내용으로, 이번 ‘리튬-유기 하이브리드 전지’ 개발에 매우 맞아떨어지는 사업이다.
변 교수는 “이렇게 좋은 정부의 R&D 지원사업이 있는 줄 몰랐다”면서 “이 같은 정부 지원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다면, 좀 더 깊은 연구와 실증을 통해 상용화로의 길이 단축될 수 있지 않겠냐”고 반색했다.
정부가 범부처 차원에서 머리를 맞대, 수립한 여러 R&D 지원사업들이, 홍보 부족으로 인해 적시적소(適時適所)에 재원이 투입되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아쉬움이 나오는 대목이다.
얼마 전에 일단락된 SK와 LG의 배터리 분쟁, 애플과 현대자동차의 협상 중단, 한국을 배터리 파트너로 선택했던 폭스바겐이 ‘배터리 자립’을 선언하는 등, 최근 글로벌 완성차 제조사들에게 국산 배터리의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K-배터리 위기설’이 나돌았다.
이에 더해 중국 배터리 기업 CATL 등 배터리 제조기업이 공격적인 확장에 나서면서, K-배터리가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상황과 맞물려, 토요타(Toyota)가 리튬이온 배터리가 아닌 전고체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올해 안에 공개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삼성전자와 일본연구소가 공동으로 연구한 '전고체전지' 기술 관련 인포그래픽./사진=삼성전자 제공
전고체 배터리는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 대비 충전 속도가 3배 이상 빨라, 10분의 충전으로 500km를 주행할 수 있어 성능이 탁월하고, 작은 부피와 내구성 및 안전성을 갖춰, ‘꿈의 배터리’로 불린다.
문제는 전 세계 전고체 배터리 특허의 40%를 토요타가 갖고 있어, 토요타의 특허를 회피하면서 전고체 배터리를 국내서 개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하지만 전고체 배터리의 단점으로 꼽히는 높은 생산 단가로 인해, 토요타 역시 양산에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 속 개발된 이번 하이브리드 전지가 자동차 산업뿐만 아니라, 전산업분야에서 한국이 글로벌 우위를 가질 수 있는 ‘촉매’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변 교수는 전고체 배터리를 대체 가능 여부 질문에 “전기차 배터리로 사용하기에는 미래에 가능할 수는 있겠지만 아직은 조심스러운 측면이 많다”면서 “유기물 기반의 여러 가지 장점이 있지만, 아직은 자동차용 배터리 팩으로 만드는 테스트를 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어 “실험실 내에서도 현존 배터리와 비교해 성능의 우위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고 있고, 실제 실험을 해보지 못해, 전고체 배터리와의 성능 비교는 아직 이르다”고 언급하면서도 “현재 해외를 비롯 관련 학회에선 전유기전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만큼, 미래에는 ‘전고체’처럼 ‘전유기전지’가 사람들 입에 오르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변 교수는 “유기물의 장점은 가볍고 잘 휘어지며, 재료가 비싸지 않은 점인 만큼, 이에 맞는 분야에 적용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며 “향후 개발정도에 따라, 휴대폰이나 드론 등에 이용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놨다.
이번 하이브리드 전지 개발이 가까운 미래는 아닐지라도, 전고체 배터리에 대항할 ‘미래의 배터리’가 될 가능성을 갖고 있는 만큼, 정부와 기업들은 이 같은 신기술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정부의 발굴 노력이 재원과 연계될 때, 비로소 맞춤형 지원이 될 수 있다.
한편, 변 교수 공동연구팀의 이번 리튬-유기 하이브리드 전지는 국내에 특허 출원됐으며, 국외 특허는 현재 추진 중에 있다.
[미디어펜=구태경 기자]